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꿈속의 전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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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옥 [songdo] 쪽지 캡슐

2001-12-22 ㅣ No.5319

매일 메일(mail) 서비스에서 

[오늘의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도다.>

그 때에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들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루가1,46-56)

[꿈속의 전화벨]

가끔 잠든 사이에 전화벨이 울릴 때가 있다.

막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엔 짜증도 나지만 겁도 난다.

밤늦게 걸려온 전화 중엔 안 좋은 소식도 있으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개는 잘못 걸려온 전화이거나

그리 급하지 않은 안부 전화,

또는 장난 전화인 경우가 많다.

장난 전화인 경우에도 나는 여간해선 짜증을 내지 않는다.

친절하게 응대하다가 적당히 끊어버리곤 한다.

내가 성인 군자에 버금가는 인격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추억 한 토막이 아직까지도

나의 꿈 속에서 가끔 전화벨을 울려대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기다리고 있던

1983년 가을 무렵이었다.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하루는 잔뜩 술에 취해 들어와 막 잠이 들려는 순간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친구는 잠에 빠져드는 내게

아무런 설명 없이 당장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처럼 술에 취했던지 전화기 건너편의 친구 음성은

약간 혀가 꼬부라진 채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몹시 술에 취했던 나는 귀찮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해

 만나고 싶지 않다고 딱 잘라 거절하곤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이번엔 다른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 00인데, 지금 빨리 XX네 집으로 와.

간밤에 XX가 자살했대….”

나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간밤 그 친구는 자살을 하기에 앞서,

그래도 뭔가 미련이 남아 내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마지막 희망이었을지도 모르는 나는

잠시의 귀찮음 때문에

친구의 요청을 매몰차게 뿌리쳐버렸다.

나는 친구를 죽인 거나 다름없었다.

죽이지는 않았더라도 친구의 죽음을 방치한 것은 분명했다.

친구가 간 뒤,

나는 전화벨이 어느 때 울리건,

그게 잠결이건 꿈 속이건 가리지 않고 수화기를 든다.

행여 죽음을 앞두고 울먹이던

친구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하여….

* * *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는

시편에서 영감을 받은 감사의 찬가이며

이스라엘의 '가난한 이들'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이 찬가는,

그들의 애타는 기다림이

성취된 데에 대한 감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이

이 노래의 중심이며

이 '성모의 노래'는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매우 아름다운 기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마리아의 노래는 세상의 셈이 아닌

바로 이 하느님과의 셈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에서 성모님께서는 교만한 사람,

권세있는 사람, 부유한 사람들보다

보잘 것 없고 배고픈 사람이 오히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지요.

즉, 이 세상의 셈에서는 권세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이득을 보겠지만,

하느님의 셈에서는 보잘 것 없고 배고픈 사람들이

더 이득을 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손해보는 삶 속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눈 앞의 조그만 이익 때문에

영원히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주님의 말씀대로 생활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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