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내가 시국미사에 참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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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13-09-27 ㅣ No.158

       내가 시국미사에 참례하는 이유
           민주주의의 심대한 훼손과 과거 회귀 상황을 목도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후보 시절 가장 크게 강조한 말이 있다. ‘국민대통합’이라는 구호였다. 그 구호를 들으면서 야릇한 공포를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국민대통합이라는 것은 애당초 거의 불가능한 것이거나 전체주의 또는 전제주의와 맥이 닿는 발상임을 부인할 길이 없었다.

 
▲ 시국기도회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9월 23일 저녁 서울광장 시국기도회의 한 장면  
ⓒ 전재우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균형과 조화가 통합 이상의 기능을 발휘하면서 자연스럽게 상식과 합리가 도출된다. 그러나 불통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상식과 합리가 차단되면서 외형적인 통합이 쉽게 강제된다. 따라서 통합이란 비민주적인 발상과 가깝고 ‘통제’의 외피를 걸치게 되기 십상이다. 그런 통합에 대(大)자를 붙여 ‘대통합’이라 하니, 나로서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국민대통합’ 구호를 놓고 큰 우려 속에서 비민주적인 발상임을 지적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어쩌면 박 후보가 아버지 시절을 추억하며 아버지가 이루어냈던 ‘대통합’을 꿈꾸는지는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소통과 언로(言路)를 강제하고 온갖 물리력을 동원하여 국민투표 93% 이상의 지지로 유신체제를 출범시키고 또 견고하게 독재체제를 유지했던 것은 외형적으로 볼 때 ‘국민대통합’의 전형일 수도 있다.

박근혜 후보의 ‘국민대통합’ 구호 앞에서 일사불란함이 특징인 군사문화의 잔재를 연상하고 유신독재 시절의 가공할 ‘통제에 의한 통합’을 유추하는 것은 나 같은 특정 부류의 과민성 탓일 수도 있을 테지만, 기실 예리한 통찰력의 소산임을 굳게 믿는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집권 6개월을 넘기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그것의 성격을 여실히 체감한다. 우선은 불통과 공안정국 속에서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양상을 목도한다. 이명박 정권 시절의 불통이 그대로 답습되고 더욱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는 유신의 가신이며 공안의 명수인 김기춘이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에 앉았다. 김기춘의 등장은 야당과 미래지향 세력에 대한 선전포고와도 같다.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은 일약 ‘부통령’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언론 장악의 가공할 위력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족벌언론들이야 생래적인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른바 공영방송이라는 KBS와 MBC 등 방송매체들의 보도태도는 유신시대를 방불케 한다. 물론 그때는 강력한 물리력에 의한 수동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오늘의 행태는 스스로 알아서 기는 형국이다. 저절로 언론통제가 이루어지는 식이다.

방송매체들의 철저한 봉사로 인터넷을 상용화하지 않는 국민대중은 오늘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과 국민주권 유린행위, 경찰의 거짓 수사발표, 검찰의 선거법 위반 기소, 그 문제를 희석시키거나 덮어버리려는 불순한 의도로 감행한 국정원의 국가기밀문서 유출과 공개, 국정원 개혁과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대규모 촛불집회, 천주교의 군종교구를 제외한 15개 모든 교구와 여러 수도회의 연이은 시국선언과 시국미사,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각계각층의 시국선언 등은 철저히 가려지거나 왜곡된 형태로 보도된다. 그런 감추기 보도로 형성되는 ‘여론’은 제대로 된 여론일 수 없다.

 
▲ 시국기도회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9월 23일 저녁 서울광장 시국기도회의 한 장면  
ⓒ 전재우

불통의 습성과 유신시절에 대한 향수를 주요 무기로 삼고 있는 것 같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오도된 여론’이다. 최근 MBC 문화방송은 ‘추석민심’이라는 말로 포장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60% 이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MBC는 여론조사의 응답률을 발표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거의  응답률을 발표하지 않는데, 응답률은 대개 10%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0명 중 대부분이 답변 거부를 하고 겨우 100명만이 응답을 했다면 여론조사 결과는 당연히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방송들이 국민들의 촛불집회를 전혀 보도하지 않으니 청와대 안의 박 대통령도 그것을 전혀 알 수 없다. 또 수만 명의 집회를 수천 명 정도로 축소해서 집계하는 경찰이 청와대 보고도 그렇게 할 테니 대통령이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응답률을 밝히지 않는 여론조사 결과만을 접하니 박 대통령은 자신감을 갖고 불통의 습성을 그대로 발휘하며 유신시대의 재연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과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국정 책임자로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를 박 대통령은 전 정권하에서 일어난 일이니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그 말에 동의하는 국민도 많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단순한 시각이다. 전임 정권이 저지른 일이라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같은 새누리당에서 나왔다.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 또 대통령은 전 정권까지 아우르는 너름새를 지니고 있으며 당연히 그래야 한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후보 시절 가장 크게 내세웠던 ‘국민대통합’의 진정성을 생각한다면 통 크게 사과 한마디 정도는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한국정치에 대체로 유머가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머 능력이 없음을 지적하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유머가 없다는 것은 철학의 빈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고의 유연성과 너름새 속에서 유머도 발현되고 대인정치도 가능해진다.

신기루 같은 ‘창조경제’니 ‘국민행복시대’니 하는 불명확한 언어들이 유희 형태로 통용되고, 후보 시절 간판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도 흐지부지되며 오히려 재벌보호 정책으로 전환되는 상황을 보면서 우선은 민초들이 자각의 문을 열어야 할 텐데 언론장악의 위세로 그것마저 요원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시국기도회 / 9월 23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거행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기도회를 시작하기 위해 제단 앞으로 입장하는 사제들. 200명이 넘는 사제들이 참례했다.  
ⓒ 전재우

하여 나 같은 사람들은 오늘(23일)도 서울광장에 가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기도회’에 참례하며 하늘에 간절히 기원을 드리는 것으로 자신을 위안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심대한 훼손과 과거 회귀 상황을 목도하며 가슴 아파하는 신앙인들과 시민들이 결코 소수가 아님을 확인하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13.09.27 11:03 l 최종 업데이트 13.09.27 11:06 l 지요하(sim-o)
태그 : 유신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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