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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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현대사 - 한국혼을 깨우다 - 김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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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5-03-28 ㅣ No.77

 

26년전인 78년 2월 어느날, 4명의 20대 젊은이들이 서울시내 한 소극장에서 북, 장고, 징, 꽹과리 4가지 전통악기를 들고 색다른 형식의 연주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남사당의 마지막 후예들인 김덕수, 김용배, 이광수,그리고 최종실 이들 4명의 천재적인 '잽이'들은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전통가락을 복원하고 여기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시켜 전혀 다른 차원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사물놀이'는 이렇게 탄생했다.

'사물놀이'를 만든 마지막 '잽이'들
남형우,양도일,송순갑,최성구등 마지막 남사당 전문연희자들의 기량을 고스란히 전수 받은 김덕수,김용배,이광수 그리고 경상도 농악가락을 이어 받은 최종실,이들은 78년 의기투합한다.최고의 기량을 전수 받은 이들 천재적인 '잽이'들은 연습실을 마련해 함께 생활하며 중부지방의 웃다리풍물가락, 호남지역 우도가락, 경상도 농악가락등 전국의 전통가락을 복원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형식의 다양한 가락을 만들어 냈다.
당시 이들은 정통 국악계로부터 우리의 전통가락을 훼손시키는 이단아들로 불렸다.그러나 이들 천재적 '잽이'들은 이를 견뎌내며 우리의 전통가락을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훌륭하게 되살려냈다.

'혼'을 깨운 '어울림'의 소리
우리의 전통 풍물가락을 무대 공연이 가능한 연주형태로 바꾼 '사물놀이'에는 수 천년 동안 우리 민족의 심성에서 우러난 원초적인 신명이 고스란히 뭍어 있다.
'사물놀이'는 우리의 전통가락을 사라지게 했던 암울했던 유신시대에 태어났다.집회와 함께 어우러지는 일체의 공연을 금지하던 시대, 풍물가락의 야외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물놀이'가 실내공연 형태로 첫 시작을 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그런데 본래 야외 음악이었던 풍물가락은 실내에서 오히려 더욱 강렬한 신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치 신들린 듯한 '사물놀이'의 연주 가락은 당시 억눌린 사람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녹여내며 하나되는 집단적 '어울림'의 장을 만들어 냈다.
이후 전문적 연주형태로 발전한 '사물놀이'는 다른 음악과의 다양한 만남을 시도하며 새로운 형태의 음악적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서양음악인 재즈와의 만남은 물론, 서양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특히 95년 UN총회장에서 있었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 보여준 '어우러짐'의 무대는 전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물놀이'는 고리타분한 옛 가락이 아닌 현대음악과도 잘 어울어지는 '어울림'의 소리로 거듭났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음악적 장르를 창출해 냈다.
'사물놀이' 가락은 5천년 역사를 통해 한국인의 피에 흐르고 있는 원형질적인 잠자던 유전 인자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이기도 했다.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와 1998년 '윤이상음악회' 에서 남과 북은 오랫동안 단절돼 있었어도 결국 같은 핏줄이라는 인식을 '사물놀이'를 통해 강하게 느끼게 해줬다.
'사물놀이'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지 어느덧 26년, '사물놀이'는 이제 국내외적으로 한국전통음악을 상징하는 대명사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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