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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번째 /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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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10-15 ㅣ No.133192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열여섯번째(2019.10.15)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에페2.11-22)

11 그러므로 이민족으로 태어난 여러분은 한때, 사람 손으로 몸에다 행하는 이른바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2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3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15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17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18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아멘

 

새해가 되면 가장 호황을 누리는 곳이 점집입니다 또 다시 어김없이 찾아오는 한해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가 될 것인가에 관한 궁금함과 대박인생을 향한 옹골찬 기대 심리가 합해져서 토정비결이나 사주 관상등을 봐주는 사람들을 찾게 되는 거에요

만일 누군가가 예수님에 사주를 봤다면 어떤 사주팔자가 나왔을까 사주라는 건 뭔지 알죠 네가지 기둥 그래서 연월일시 사주 그게 십간 십이지로 두자씩이니까 여덟자 팔자입니다 그래서 그건 바꿀수가 없어요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이미 그분의 인생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거기에 대답을 할 수 있죠 예수님의 사주에는 애정운도 없었고 재물운도 없었고 관운도 없었어요 사주용어로 그분의 삶을 자미두수로 이야기 하자면 자미두수라는 것은 토정비결과 달리 삶의 전체에 특징을 이야기하는거 에요 토정비결은 1년의 운세지만 그분의 삶은 매일 매일이 삼재였구요 매일 매일이 원진살에 시달리는 날이였으며 겁살 재살 천살이 풍성한 삶이였어요 이 세상에 자기 인생이 그렇게 암울하게 풀릴 것이다라는 그런 사주풀이를 듣고 기분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생을 마감하고 싶어하겠죠 그런데 바로 그러한 삶이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머리이신 예수님의 삶이였단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오실때 이미 그 운명을 갖고 내려오셨단 말이에요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러한 삶을 사시면서 늘 평안과 기쁨을 담고 사셨다라고 하셨어요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 위해 내려오신 분이 평안과 기쁨을 담고 사셨데요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기 바로 전에도 내안에 있는 평안과 기쁨을 내가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분은 우리 교회에 첫 열매에요 첫 열매라는건 그분이 첫번째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구원받았다라는 말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하느님이 구원을 받는다? 구원이라는 말은 죄를 지은 자의 죄를 용서해주어서 그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걸 구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구원이라는건 하느님의 피조물 혹은 하느님의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서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그 상태를 구원이라 그래요

예수님께서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고 주관자세요 그런데 그분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 내려오셔서 목적을 이루시고 다시 하느님 나라의 왕으로 복귀를 하셨잖아요 그것을 구원이라 그래요 우리가 그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왕으로 함께 올라가서 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걸 구원이라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을 첫번째 구원받은 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시죠 그래서 그분은 첫열매에요 그 말은 우리 성도들도 바로 그러한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살다가 가게 된다라는 말씀인 거에요

따라서 성도의 삶은 사주팔자의 좋고 나쁨에 의해 즉 재화의 있고 없음이나 명성과 인기에 유무 꿈과 소원의 성취나 실패등에 의해서 평안과 기쁨을 얻고 잃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으로의 특정 받음과 하느님과의 동행이라는 그 사실로 늘 평안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는 삶이어야 하는 거에요 예수님은 그런 운명을 갖고도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사셨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러한 우리의 팔자에 관심을 두고 그것에 의해서 일희 일비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 거에요

쉬운말로 교회는 예수 믿고 예수에 도움을 받아서 팔자 한번 멋지게 고쳐 보겠다는 그런 마음은 어서 버리고 예수의 삶을 살면서 예수의 십자가와 수난의 삶을 함께 살면서 예수에 평안과 예수의 기쁨을 가질 수 있는 자로 성숙되어지는것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이 땅을 잠시 살면서 세상적 명성과 부를 쌓아서 세상적인 즐거움과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과 하느님에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경험하며 배우고 가는 거에요 따라서 이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100% 모든 것은 왜 이것들로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는 가를 배우라고 주어지는 것이지 그것들로 만족하며 행복하게 한번 살아보라고 주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사는 훈련을 하는 거에요 천국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전부다 풍족하게 구비되어 있는 곳이여서 좋은 곳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하느님과 함께 있는 곳이여서 좋은 거에요 바로 그러한 천국에 현실을 이 땅에서 우리가 한번 살아보는 것입니다 진짜 너 너를 사랑하는 하느님 만으로 천국을 누릴 수 있어? 그게 진짜 니 천국이 되 내가 니가 가진거 한번 다 뺏어 볼까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 천상에 존재하고 있는 천국을 살고 있는 교회가 이 땅에서도 똑같이 하느님 만으로 좋고 행복한 천국에 삶을 사는 거에요 교회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은 평생을 하느님 아버지와 동행을 하셨어요 예수님은 수시로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다라고 말씀하심으로 해서 당신은 늘 하느님과 동행하고 계심을 말씀하셨어요 성도도 마찬가지에요 성도는 이땅에서 모진 환경과 어려운 현실을 통과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함께 하심으로 난 행복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자로 지어져 가고 양육되어져 가는 거에요

그래서 때로 여러분의 팔자가 그렇게 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거에요 그때마다 어떻게 하셨어요 무슨 놈의 팔자가 이 모양이냐 나는 왜 그때 잠깐의 선택에서 실수를 하여 평생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혹시 그러지 않으셨어요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그 상황속으로 밀어넣으셨고 그런데도 너 나로 말미암아 진짜 천국을 살수 있니라고 한번 우리에게 물어보시는 거에요

좋은 곳은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와 함께 있는 곳이고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는 이가 나와 함께 있는 곳을 좋은 곳이라 하는 거에요 아무리 화려한 곳이라 할지라도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가 24시간 함께 붙어 있어야 하는 곳이라면 그곳은 곧 지옥에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는 인생을 통하여 그것을 배우고 가는 거에요 그 어떤 것도 하느님에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삶을 통하여 배우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먼저 그 삶을 살다 가신 거고 우리가 그와 똑같은 삶을 경험하며 하느님의 아들로 완성이 되는 거에요

성경이 왜 교회를 예수님을 머리로 한 하나의 지체 유기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교회는 예수와 한몸인 하느님의 장자들임을 말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뗄레야 뗄수 없는 하나의 존재로서 예수의 삶을 그대로 살게 됨을 아울러 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손이 아프면 내가 아프지 손만 아프지 않아요 내 머리가 아프면 내가 아프지 머리만 아프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이 궁금해 하시는 사주 팔자 대신에 올 한해 여러분이 살게 될 여러분의 앞날을 지금 이 자리에서 명확하게 예언해 드릴 수가 있어요 여러분은 올 한해에도 예수님의 삶을 쫓아서 세상사람들에게 핍박당하고 왕따당하고 수난을 당할 것이며 세상과 의사소통도 잘 안될거고 많이 외로우실 것이고 매일 매일 작은 십자가를 져내며 하므님만이 여러분의 행복에 근원이라는 것을 또 한수 배우시게 될거에요 올 한해 그러니까 다른거 궁금해 하지 마세요

~성도는 이렇게 하느님 나라 백성들의 삶의 본질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를 하고 무한경쟁과 전쟁과 다툼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평화의 사람 섬김의 사람 기쁨의 전달자로 구별되어지고 지어져가고 완성이 되어져야 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 일이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집합적이고 집단적이며 유기적으로 일어나게 되요 그래서 교회인 거에요 에클레시아 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내용은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公會)와 모든 성인(성도)의 통공(交通)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이에요 바로 그 고백이 교회의 존재 앙태와 지향점에 관한 고백이에요 우리 한글 사도신경은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公會)와 모든 성인(聖徒)의 통공을 하게 된데는 건지 뭘 믿는다는 건지 잘 분간이 안가게 번역을 해놨는데 정확히 번역을 하면 나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성도가 서로 통공(交通)함을 믿습니다 라는 거에요

먼저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믿는 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지 한번 보자구요 거룩한 보편된 교회는 홀리 카톨릭 처치에요 여기에서 카톨릭이라는 단어를 잘 이해하셔야 됩니다 그 말은  로마카톨릭(천주교회)을 지칭하는게 아니에요 카톨릭 처치는 말 그대로 유니버설 처치 보편적 교회 우주적 교회를 이야기 하는 거에요

따라서 거룩한 보편된 교회를 믿는다라는 말은 각 지역에 가시적으로 산재해 있는 그 가시적 로컬 처치 그 지교회를 모두 아우르는 전체로서의 불가시적 인비저블 처치 불가시적 천상의 교회가 존재한다라는 것을 믿는 다는 말인 거에요 그게 홀릭 카캐톨릭 쳐치를 믿는다라는 말이에요

하느님의 교회는 이 역사속에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확대되어지고 확장되어지는 것처럼 보이죠 아담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붙여지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러나 이미 천상의 교회는 창세전부터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 하나로 결정이 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홀리 카톨릭 쳐치가 보편적 교회가 있다라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이미 나는 그렇게 영원속에서 창세전에 홀리 카톨릭 처치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라는 것을 고백하는 거에요

그 천상의 교회가 이 역사속으로 각기 시간과 공간을 달리 하며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거에요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내려왔다 올라가는게 아니라 여러분은 영원속에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영원속에서 이미 천상의 교회 인비저블 처치 보편적 교회로 존재하고 있어요 그런데 차원을 달리한 이곳에서 여러분이 저주받은 육신 하느님에 그 말씀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타락을 하고 저주받은 육신 이 제한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시간과 공간속으로 잠시 내려와서 하느님 나라에서 필요한 뭔가를 잠시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근데 이미 천상에도 존재를 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이미 거기에 하느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데 우리가 그 안에 들어있단 말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보편된 교회, 하느님의 보편적 교회를 믿는다라는 고백은 하느님에 豫定作定을 인정하지 않고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고백인 거에요 그 거룩한 보편된 교회 안에는 아담도 들어있고 아벨도 들어있고 노아도 들어있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세 엘리아 바오로 다 들어있어요 그리고 여러분과 저도 들어있습니다 그 거룩한 하느님에 보편적 교회로 창세전에 부름을 받은 거고 시간과 공간을 달리 하여 이 땅에 잠시 내려와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인격과 이성을 간직한채 배우고 가는 거에요 그걸 믿는 것이 거룩한 공회 즉 보편적 교회 우주적 교회가 있다라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안에 함의되어 있는 내용인 거에요

 

히브리서 1222-24절 보세요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잘 보시면 히브리서 記者가 성도들이 이른 것 교회가 이른 것을 나열하는데 그곳이 장자들의 總會인 교회라고 이야기를 해요 장자들의 총회에 너희가 이미 이르렀다 들어와 있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하느님의 장자들인 성도가 이미 총회로 모여있다라는 거에요 그리고 그게 교회라는 거에요 하나의 전체로서 이미 존재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고 축하객으로 천만 천사들이 줄지어져있고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이 있는 곳이래요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가 교회를 가리켜 하늘의 예루살렘 이라고도 부르죠 성도는 이미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러 있다라는 거에요 그 안에 들어가 있대요 그런데 하늘의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을 우리가 요한묵시록에서 본 적이 있어요

묵시록 212절 보세요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대요 그러니까 그 신부는 누구에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를 이야기 하는 거죠 새하늘과 새땅 그리고 그 안에 하느님의 신부로 완성이 된 하느님의 교회를 새 예루살렘이라 그런단 말이에요 그 새예루살렘이 나중에 내려오게 되는데 근데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그 새 예루살렘에 당도해 있대요 이르러 있대요 이미. 그러니까 우리가 바오로신학의 얼레디 낫엣 이미와 아직의 교리를 잘 알지 못하면 그러한 것들은 하나도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는 이미 하늘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있으며 그곳에서 의롭게 된 영들과 함께 존재하는 무리에요 그게 거룩한 公會 보편적 교회입니다

자꾸 여러분이 이 삼차원의 세계 안에서 성경을 이해할려고 하시면 안되요 묵시문학은 차원을 넘어서서 비욘드 히스토리 차원을 넘어서서 자꾸 이해하는 버릇 시간 밖에서 이해하는 이 습관을 드리셔야 된다 말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새하늘과 새땅이며 동시에 교회를 지칭합니다 그런데 그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를 새 예루살렘에 이미 당도해 있는 자라고 이야기를 해요 하느님께서 영원속에서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 무언가를 계획하셨다라는 건 이미 완성된거다 그렇죠? 시간과 공간에 구별이 없는 곳에서 그런 제한을 받지 않는 곳에서 하느님이 뭐든지 할 수 있는 하느님이 뭐든지 아시는 하느님이 어떤걸 계획하셨단 말입니다 그럼 거기서 그건 이루어 진거란 말이죠 그게 영원이라는 곳이에요 거기에 우리 천상의 교회가 유니버설 처치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라는 거에요 그렇게 하느님은 창세 전에 하느님에 교회를 천상에 완성하셨어요

 

성경을 보다 보면 도대체 그 새 예루살렘이 교회인지 예수님인지 도대체가 헷갈릴때가 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경은 교회와 예수를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던 것을 기억하시죠 그러나 하느님은 잉태치 못하던 사라를 통하서 기여코 약속의 자녀인 이사악을 주세요 그 이사악은 누구를 통칭하여 상징하는 거죠 도저희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어떤 이들을 하느님께서 은혜의 약속으로 건져 내시는 거죠 그러니까 교회를 통칭하여 상징하고 있는 거에요

이사악은 인간측의 노력과 꾀를 상징하는 이스마엘과 대비되어서 오직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게 되는 약속의 백성들인 교회를 뭉뜽그려 상징하고 있는 인물이에요 따라서 그 이사악은 그 자체로 새 예루살렘이에요 그런데 바오로는 그 약속에 자녀인 이사악을 가리켜서요 예루살렘에 아들이라고도 이야기를 해요 예루살렘이 이사악을 낳았다라고도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421-31절 보세요 21 율법 아래 있기를 바라는 여러분, 나에게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율법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까?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24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25 하가르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나이 산을 가리키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이 그 자녀들과 함께 종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2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사악과 같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29 그러나 그때에 육에 따라 태어난 아들이 성령에 따라 태어난 아들을 박해한 것처럼, 지금도 그렇습니다. 30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자식이 자유의 몸인 부인의 아들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다.” 하였습니다.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자유의 여자 즉 예루살렘이 이사악을 낳았는데 그 이삭이 바로 우리 성도의 대표요 상징이였다라고 지금 사도바오로가 이야기 하는 거에요 너희들이 바로 예루살렘이 낳은 그 이사악이 상징하고 있는 교회다 그런데 우리는 새 예루살렘을 교회로 알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교회를 낳은 그 이도 예루살렘이라고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의 예루살렘은 십자가로 교회를 낳은 예수님의 은혜를 가리켜요 그런 바오로가 다른 곳에서는 그 약속의 자녀 이사악과 그로 말미암게 될 아브라함의 후손이 교회를 낳은 그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였다라고도 이야기를 해요 정말 헷갈리죠 그 이사악과 그 이사악의 후손으로 지칭한 그 씨앗 후손이 예수였데요

갈라디아서 316절 보세요 16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뜻하는 후손들에게가 아니라, 한 사람을 뜻하는 너의 후손에게라고 하셨습니다. 이분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곧 그리스도라 여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자손은 이사악과 이사악으로 대표되는 교회를 말해요 그런데 바오로는 그 이사악으로 상징되었던 자손이 예수 그리스도레요 그렇다면 하늘의 예루살렘이 예수를 낳았다라는 소리도 되죠 또 하늘의 예루살렘이 교회를 낳았다라는 소리도 되는데 하늘의 예루살렘이 예수를 낳았다라는 말도 되잖아요 그건 어디서 우리가 확인할수 있습니까 고 그림은 요한묵시록에 나오죠

 

묵시록 123-6절 보세요 3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4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5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6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여인이(교회에요) 천이백육십 일 동안 보살핌을 받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일천이백육십일동안, 일천이백육십일은 한때 두때 반때 .1260.3년 반. 다 뭐에요 인생 우리의 인생이에요 이 역사를 이야기 하는 거에요 1260일 동안 우리가 양육받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기보세요 여기서는 여자가 교회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여자가 예수를 낳아요 예수는 교회에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으므로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 이 땅에 오셨으므로 여자가 예수를 교회가 예수를 낳는다라는 표현을 하는 거에요

그런데 여자인 교회가 예수를 낳는다라는 것에는 또다른 메시지가 있어요. 여자인 교회 그 교회가 해산에 고통을 통하여 예수를 낳는 다는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산의 고통과 같은 고난을 통과하며 온전한 이 순종의 아들인 바로 그 예수 즉 느님의 아들로 완성이 되는걸 내가 해산의 고통을 통과하며 내가 예수를 낳는다 내가 예수로 작은 예수로 완성이 된다라고 이야기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인생인 거에요 따라서 우리는 그 예수에 인생과 합일된 인생을 반드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성도의 탄생을 혼동스러울 정도로 혼용하여 표현을 한단 말이에요 그말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이 세상에서의 삶은 성도의 탄생과 그 삶을 그리고 완성을 그대로 모형화 하여 보여주고 있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우리가 거기에서 끝날 거거던요 그 하느님 나라에서 예수님이 지금 그 나라에 가 계시단 말이에요 머리만 덜렁 있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 붙어 있단 말이에요 한 몸으로 그게 천상의 교회라는 거에요

여러분의 실제 실존은 거기에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여러분은 이 땅에 잠시 배우려고 내려와 있는 거에요 이 몸뚱아리를 입고 그게 나는 보편적 교회 거룩한 공회를 믿습니다라는 거에요 내 눈에는 안 보이지만 나는 믿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므로 따라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생과 사와 부활과 승천은 그대로 성도에게 적용이 되는 거고 그러한 예수님의 삶은 하느님 나라 백성들의 탄생과 성장과 완성을 그대로 교훈하고 있는 거에요 따라서 서두에 말씀드린 예수님의 그 처절한 사주팔자가가 누구꺼다 여러분겁니다.

 

고린도후서 410절 보세요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우리 성도의 삶에 예수가 수난당하고 죽은 그 십자가의 삶이 그대로 언혀저 있다라는 뜻이에요 그 예수의 삶 여러분 패션오브더 크라이스트 이런거 보면서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많이 우셨죠?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 복음이 십자가가 실제화 되어 엑추얼라이징 되어지고 있는 거에요 지금요 여러분 들은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작은 예수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전부 도말하셨다고 하면서 우리가 또 십자가를 져야 된다 말입니까? 여러분 십자가는 그 자체로 우리의 죄를 모두 도말해 버린 우리의 구원에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에요 본 하느님과 본체이신 분이 자기를 다 비워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만 온전히 순종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여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교회를 탄생케 한 것처럼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에요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든 존재가 바로 예수님과 같이 그렇게 살게 된다 말입니다 그래서 거기는 창조가 풍성하게 일어나는 곳이에요 그걸 천국이라 그래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해서 죄사함을 받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게 아니라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 그 삶의 원리를 훈련하고 연습하고 학습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다른 이들이 살아 올라오는 것을 보는 거에요 아울러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과하면서 나는 절대 신이 아니구나 하느님 처럼 되겠다는 아담의 시도는 정말 우매한 발상이였구나 예수 조차도 하느님의 뜻 앞에서는 완전히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인데 내가 뭐라고 내가 하나님 처럼 되보겠다고 이렇게 하느님의 은혜를 떠났던가 안되는거구나 십자가를 지면서 그거 배워보는 거에요

 

고린도전서 1227절 보세요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에요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이지 절대로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어요 몸은 그 자체로 전체적이며 종합적이며 유기적이에요 그래서 떨어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해 계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이미 그곳에 가 게신 분이란 말입니다 그게 여러분의 실존이에요 따라서 주님은 교회에게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라는 말씀을 하셨던 거에요 그 말씀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저주의 기도로 확 묶어 버리면 하늘에서도 묶에고 축복기도로 확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그런 다는 말이 아니에요 하느님 나라의 그 천상의 교회가 하늘의 교회가 이 땅에 내려와서 살고 있다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이 땅에 잠시 내려와서 여전히 하늘의 장자들의 총회에 속한 자들로 무언가 교육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이 교육장에서 여러분의 신분을 망각하고 야 이 교육장 밥맛이 왜이래 이 교육장 난방이 왜 이 모양이야 훈련복이 왜 이 모양이냐 색깔이 왜 이렇게 우중충히 이러고 있다면 그 얼마나 웃긴 이야기에요

여러분 잠시 내려와서 여기서 지금 교육받고 야 하느님의 은혜와 하느님의 사랑과 능력은 이런 거구나 감동하여 거기에서 이제 영원히 타락할 수 없고 영원히 모반할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인제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축복을 누리면서 살 텐데, 고작 요기에 내려와서 하느님이 요 짧은 시간 동안에 맡겨준 역할을 갖고 불평하고 투덜대고 이러고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이 정말 거룩한 보편된교회를 믿는 사람이 맞습니까?

거룩한 보편된교회(공회)와 성도가 서로 통공하는 것과 수천번 암송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 거룩한 공회를 믿는 이들이 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일들로 그렇게 일희 일비 하고 있냐 말이에요 거룩한 보편된교회를 그동안 안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던 거에요 우리는 그렇게 십자가를 통과하며 예수라는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서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고 있는 예수님의 몸이에요 유기체의 특징은 항상 자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는 세가지의 아주 중요한 특성이 있어요

그 첫번째가 교회에 통일성입니다

교회는 이미 창세전에 불림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일세기의 교회나 5세기의 교회나 20세기의 교회나 다 한 교회에요 그게 교회의 통일성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교회나 미국의 교회나 아프리카의 교회 모두 한 교회에요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가시적 지역교회들은 모두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게 교회에 세가지 특성중에 하나인 교회의 통일성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천국에는 장유유서가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창세전에 구원받은 한 몸이며 하나로 부름을 받은 거에요 그런데 하나인 교회는 반드시 어떤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되요 그 하나로서의 교회 그 통일성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교회 이 지역교회 로컬처치는 반드시 어떤 전제를 충족시켜야 되요 올바른 하나의 가르침,

에베소서 413절 보세요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16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의 가르침에 의해서 하나의 고백을 존재해야 고백을 하는 존재들이여야 하는 거에요 그 하나의 가르침을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동일하게 가르쳤죠 교회가 무엇을 배워야 되는지 그 하나의 가르침을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이땅에 와서 고 하나의 가르침만 가르치고 갔다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에 터 위에 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노력과 그들의 뭐 시체위에 교회가 선게 아니라 그들에 가르침 위에 선것이 교회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들의 가르침 말고 다른 가르침 위에 선 건 뭐다 친목계다 라는 거에요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거는

예페소서 220절 보세요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런데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은 전부 무엇에 관한 거에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이 뭐죠 성경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사도신경으로 요약되어 있는 신앙의 핵심들이죠 그죠 그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기록한 성경은 전부 누구에 대해 기록된 거다 예수

루가복음 2427절 보세요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모든 성경은 전부 예수에 관해서만 설명하고 있어요 거기에는 긍정의 힘 고지론 이런 거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하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것인가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삶을 살 것인가 이런 내용 성경에 하나도 없어요 아니요 잠언에는 있던대요 아니에요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다 예수 설명하는 거에요 그렇다면 사도바오로가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터 위에 선 것이다라고 아주 그냥 확정지어 이야기 한 거에요

고린도전서 311절 보세요11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와 예언자, 성경은 전부 예수에 관한 거에요 따라서 설교도 전부 예수로 끝나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건 없어요 그러니까 사도와 예언자들이 교회에게 가르친 건 오직 예수만이 행복의 근원이고 오직 예수만이 구원자이며 예수만이 그리스도이고 예수만이 우리의 주인이다 라는 걸 가르치는 거에요 근데 세상 사람들은 어때요 세상 사람들의 주인이 예수입니까 돈입니다 명예에요 자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주인은 예수가 아니에요

우리는 예수만이 주인이고 예수만이 그리스도이며 예수만이 메시아입니다 예수만이 행복의 근원입니다를 배우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라는 베드로와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내가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에 의해 내가 끌려가야 되는 것이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끌고 갈 수 없습니다 그 고백 위에 교회가 서는 것입니다 진리는 단 한분 예수 그리스도 뿐이에요 엉뚱한 진리들을 내어 놓으면서 예수말고도 당신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지천으로 많다. 라고 가르치는 그런 가짜 복음을 내놓는 것은 우리와 하나가 아닙니다 교회는 올바른 가르침 안에서 하나의 통일성을 지녀야 진짜 참다운 보편적 교회 유니버설 처치인 거에요 우리는 예수와 한 몸이기 때문에 예수가 가신 길을 그대로 쫓아서 예수에게 당도해야 한다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우리와 하나로서의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의 올바른 사도적 가르침이 교회에 통일성을 결정짓는 유일한 잣대에요

두번째로 교회에 보편성입니다

교회는 모두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누구하나 자기의 의나 실력이나 노력을 보태서 구원받은 사람이 없어요 우린 모두 창세전에 하느님에 은혜로 한번에 구원받은 거에요 그게 교회에요 아무리 세상적으로 잘나가는 사람도요 하느님에 은혜가 아니였으면 지옥의 땔깜입니다 구원받지 못한거고 아무리 못나 보이는 사람도 하느님의 은혜가 임하여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모두가 다 소중한 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이 있으면 안되요 남녀차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창세전에 하나로 구원을 받은 교회가 이땅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맡아서 잠시 살다가 천상의 교회로 복귀하는 것 뿐이에요 그래서 교회에서는 그 어떤 차이나 차별이나 불공평함이 있으면 안되요

갈라디아서 326-29절 보세요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28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물론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분담은 있어요 그러나 우열이 있는게 아닙니다 그렇게 다 하나에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교회로 한번에 선택된 것이고 한 몸인 유기체로 존재하고 있어요 근데 그걸 아는 이들이 이 땅에 잠시 사는 인생속에서 서로 차별을 하고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즐긴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정말 교회가 뭔지 아는 사람이겠습니까? 자기가 자기 몸을 흉보는 거 아니에요 자기가 자기 몸을 차별하는거 아닙니까

세번째 교회의 특성은 거룩성이에요

교회는 하느님에 의해 구별되고 선택된 무리라는 의미에서 거룩하다라고 하는 거에요 거룩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착하게 사는 건 거룩이라고 하지 않아요 거룩이라는 말 자체가 세퍼레이트입니다 구별된거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어지고 너희들은 구별된 존재야 이게 거룩이에요 거룩이 바로 교회의 지향점입니다 달라야 되는 거에요

착하게 성숙하게 너희들을 업그레이드 시켜라가 거룩에 도달해라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너희들은 다른 삶의 원리로 살아야 된다가 거룩인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은 이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이 땅에서 고립이 되어가고 외로워지게 되고 나그네취급을 받게 되야 맞아요 거룩이라는 말 자체가 고립입니다 세퍼레이트 되어서 고립되어져 버리는 거에요 세상에서요 그래서 점점 외로워져야 되요 여러분은 하늘에 있는 장자들에 총회지 이 땅에서 세상의 장자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점점 이 땅에서 대화도 안통하고 세상 사람들과 세상적으로도 어울릴 수도 없는 그런 어정정한 사람들이 되어가야 맞아요

왜 예수 믿고 친구가 다 떨어졌지 맞는 거에요 왜 예수 믿고 나니까 내 그 사랑하는 세상 친구들이 전화를 안할까 여러분이 고립되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대화도 안통해 심지어 식구들끼리도 대화가 안통해 이야기의 주제가 달라요 여러분 주변에 똑같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 사람들과 앉아서 대화를 할때 여러분 대화가 안될때 굉장히 많죠 예수를 같이 믿는데 왜 저 사람이 믿는 예수와 내가 믿는 예수가 다를까 그들과 여러분은 하나가 아닙니다 통일성 안에 들어있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거에요 그래서 거기에는 반드시 올바른 가르침이 있어요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4-16절 보세요 14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15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삶의 원리와 다른 삶의 원리를 갖고 사시는 분이세요 하느님은 자기를 비워서 왠수들을 살려내는 십자가의 삶의 원리로 사시는 분이에요 그게 세상과 세퍼레이트 된 거룩한 하느님이에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들도 그렇게 거룩하게 살라라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그렇게 내가 만들어 내고 말거라는 거에요 그런데 어떻게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그 똑같은 것들을 원하고 있냐구요 뭐가 잘못된거 아닙니까? 능력의 종 신유의 종 니들이 원하는거 복채만 많이 갖고 오면 다들어준다 다들어 준다 다고쳐준다 이게 다른 삶입니까? 세상과 똑같잖아요 뭐가 달라요 그게 무슨 거룩한 교회입니다 여러분 거룩한 교회는 그 세상과 다른것을 이야기 하는 곳이여야 되는 거에요 다른 삶의 원리를 가르치는 곳이여야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무당 잡교와 똑같은걸 가르치는게 뭔 교회입니까 그게 그들은 우리와 하나가 아닌 거에요

잘 분별하고 예수 믿으셔야 되요 죽도록 죽을때 까지 헌금하고 죽도록 헌신 봉사하다가 지옥갑니다 그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어요 딴 사람들은 먹고 싶은거나 마음대로 먹고 하고 싶은거나 마음대로 하고 그리고 지옥간다고 치는데 죽도록 예수 믿는다고 믿었는데 잘못 믿었어요 우리가 거룩한 그 삶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느님의 말씀을 여러분이 열심히 상고하고 묵상하고 공부하셔야 되요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16절 보세요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거룩하게 된데요 아버지의 말씀인 진리, 진리는 예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꾸 눈을 돌려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추구하고 지향하게 되는데 유일한 길이 하느님의 말씀인 거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여러분 잘 공부하셔야 되요

그렇게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과 거룩성을 잘 배우고 실현해 가는 성도의 모든 삶 속에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는게 성도에 통공이에요 그래서 성도의 통공을 내가 믿습니다라고 하는 거에요 그 통공은 여러분이 잘 아는 코이노니아 교제라 이야기 하는 거에요

성도가 통공을 한다는 건 한 복음을 전해 받은 성도들이 하느님 나라에 백성으로서 한 몸으로써 사귐을 갖는 걸 이야기를 해요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만다라는 것을 성도가 고백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교제도 역시 올바른 가르침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성도의 올바른 교제가 일어날 수가 없어요

요한일서 1장 보세요 1-3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 또 나오죠 코이노니아 통공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성도의 사귐은 3절의 말씀처럼 먼저 생명의 말씀을 전해 들어야 하는거고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사귐이 먼저 전제 되어야 한다라는 거에요 것이 전제되지 않는 교제나 사귐은 친목회나 다름 없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친목회가 우리보다 더 친해요 그러죠? 교회보다 쌈 박질 많이 하는데가 어디있어요 오죽하면은 얘들이 싸우면 할아버지들이 그런다잖아요 야 교회도 아닌데 임마 왜 여기서 싸워 이게 여러분 얼마나 치옥적인 농담입니까 그런건 교제가 아닌 거에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서 이미 그렇게 천상에 교회로 장자들의 총회로 한 몸이 되어 있으며 이땅에서 서로의 것을 비워서 상대방에 유익을 챙기는 그게 한 몸이잖아요 나의 모든 세포들이 날 위해 희생하기에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내 손이 나를 위해 희생을 하기에 원고도 쓰는 거고 내 머리가 날 위해 희생하고 모두가 나를 위해 희생하고 있어요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게 한 몸이란 말입니다 그걸 교제라 그래요 거기에는 반드시 손해와 상함과 내 비움 내 부인이 전제가 되요 그게 교제에요 코이노니아(같은 공간과 시간에 사람들의 그룹)

그렇게 서로의 것을 비워서 상대방의 유익을 챙기는 십자가의 도를 훈련을 해서 하느님 나라로 입성을 하는게 우리 인생의 참 목적임을 아는 교회인 거에요 그래서 교회는 그 올바른 복음 아래에서 서로의 것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어야 되요 성도의 교제가 바로 그런 거에요 제가 지금 구제 단순한 어떤 구제와 나눔을 이야기 하는거 아닙니다 인간은 얼마나 교활한지 이 나이스니스 나의 나이스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굿니스가 선이 전제되지 않은 나이스한 행동들을 막 할 수 있어요 그건 교제아니에요 그건 불교인들도 할 수 있고 아무나 다 할수 있는 거에요 그거는 진짜 교제는요 자기를 비우고 부인하는 이들이 자기 것으로 다른 이의 유익을 구하는 행위로 드러나게 되는 거에요 예수님의 삶이 그들의 삶 속에서 요만큼씩 나오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잘 안되잖아요 그게 잘 안되잖아요 그러나 하느님은 반드시 완성해 내고야 말 것이다가 성도의 통공을 내가 믿습니다라는 고백인 거에요 나는 반드시 그 코이노니아(같은 공간과 시간에 사람들의 그룹) 속으로 들어갈거에요 그게 성도의 통공을 믿습니다에요

잘 주는게 쉬울 것 같애요 잘 받는게 쉬울 것 같애요 인간은요 뭘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린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에 은혜를 받아 그걸 잘 면목없지만 잘 받아서 그 하느님의 은혜 안에서 은혜를 누리는 존재들인거에요 그걸 아는 그 교회의 본질을 아는 이들은 잘 받을 줄을 알아요 받고도 적게 줬다고 삐지고 내가 어떤 사람인데 니가 내가 너한테 도움을 받어 이러면서 도움을 거절하기도 하고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각자의 역할을 통해서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어떻게 받아야 되며 그리고 어떻게 자기것을 비워야 되는 존재인지를 역할속에서 배우는 거에요 그 각자의 역할을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거고 그 역할을 잘 하라고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은사와 소유와 재화를 나눠준거에요 그 역할에 맞게, 그거는 여러분이 자랑할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 할 것도 아니에요 부러워 할 것도 아니고 각자의 역할 속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교회에 본질을 살아내시면 되는 것입니다

천상의 하나인 교회, 거룩한 교회, 통일성 있는 교회, 보편적 그 교회, 나는 거기서 이렇게 하나로 살거야 우리 것을 다 비워서 다른 이들을 살려 내는 나 이외에 다른 이들이 전부 나를 위해 그렇게 살아주는 곳 얼마나 행복해요 거기가 천국이란 말이에요 그게 반드시 이루어질거야 나는 그 삶을 여기서 조금씩 연습하다가 갈거야 그게 교회의 삶이에요

여러분 극한의 가난에 처해있던 마게도니아 교회가 유대 예루살렘교회가 기근으로 힘들어 할때 어떻게 했습니까 힘에 지나도록 연보(기부금)를 했다 그러죠 거기는 절대 빈곤 절대 가난 그리고 절대 시련이 있던 곳이였어요 마게도니아 교회는 어느 교회보다 시련이 많았던 교회였고 어느 교회보다 가난한 교회였어요 그들은 이미 십자가의 삶을 살고 있었어요 근데 그 삶이 그들을 힘에 지나도록 연보(기부금)를 하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너무 가난하면 못 내놀것 같잖아요 야 내 십자가 지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남의 십자가까지도 걱정하냐 이게 아니라 십자가 지는 삶이 다른 이들에게 내것을 털어주는 그 기부의 삶 자기 부인의 삶 십자가의 삶을 오히려 가능하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 고난 십자가의 삶은 필연적인 거에요

고린도후서 81-2절 보십시오 1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의 여러 교회에 베푸신 은총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2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후한 인심을 넘치도록 한 근거가 두개가 나오는데 뭐에요 넘치는 시련과 극한의 가난 상대적 빈곤도 아니고 절대 빈곤에 있었던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풍성한 기부를 할 수 있게끔 하느님이 그 사람들의 마음을 비워줬어요 십자가의 삶을 통해 야 이 세상의 힘으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는 거구나 그리고 우리는 교회로서 이 세상에 것에 너무 집중하여 살면 안되는구나 이걸 십자가의 삶을 통해 배운 그들이 풍성한 기부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3-5) 3 나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4 그러면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5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도, 먼저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도 자신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풍성한 기부금 이라고 번역이 된 이 단어가 교제입니다 풍성한 교제 성도에 교제가 어떠한 것인지를 헌금이라는 하나의 상징물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거에요 성도의 교제는 그렇게 연보를 내듯 비워 내어 다른 이들을 살려내는 거에요 그게 교제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구제 라는 단어와 헌금이라는 단어와 교제라는 단어를 혼용해서 막 써요

한군데 볼가요 고린도후서 91313 그들은 이 구제 활동을 높이 사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는 여러분의 순종을 보고 또 자기들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과도 함께 나누는 여러분의 후한 인심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이게 풍성한 교제라는 뜻이에요 교제는 이렇게 내것을 털어 내는 거에요 여러분 그게 힘들어요 내것 비워서 남 살리는거 힘듭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지었던 마게도니아 교회가 하느님 안에서 그러한 그 십자가의 삶을 삶으로 큰 기쁨을 누렸단 말입니다 바오로한테 에걸 복걸 했어요 간절히 원했다 그래요 제발 내가 이렇게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제발 박탈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가난하다고 내가 하는 헌금 이거 안가져가면 난 정말 화낼거야 이렇게 간절히 원했다잖아요 힘에 지나도록

여러분 힘에 지나도록 해본거 뭐 있어요 인생을 살아오면서 힘에 지나도록 놀아본적은 있죠, 힘에 지나도록 자기꺼 비워보신적 있으십니까 그게 십자가로만 가능하다는 거에요

자 하느님의 교회는 천상에서 그렇게 교제 코이노니아를 누리면서 살게 될 거에요 나의 것을 비워서 내 몸인 내 형제자매를 위해 힘에 지나도록 섬기는 삶 그 교제의 삶을 완벽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도가 서로 통공하는 것을 내가 믿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 거에요

 

고린도후서 96-11절 보세요 6 요점은 이렇습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11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부유해져 매우 후한 인심을 베풀게 되고, 우리를 통하여 그 인심은 하느님에 대한 감사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이게 헌금을 많이 하면 많이 주고 적게 하면 적게 보상해 준다는 그런 말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태까지 그렇게 들어왔죠 그러면 이 땅에서 헌금을 많이 할 수 있는 부자들은 계속 빈익빈 부익부 더 많아 지겠네요 많이 했으니까 그런데 개뿔도 헌금할게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그냥 계속 가난해야 돼, 적게 냈으니까 적게 줄거 아니에요

여러분 사도바오로가 고린도 교회에게 지금 그런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아니 다섯살짜리 지능만 갖고 있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거라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잖아요

여기에 보시면 적게 뿌리는자 많이 뿌리는자 이 대조가 나오는데 적게 뿌리는자를 뭐라 그러냐면 인색함으로 억지로 하는자 이게 뭐냐면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거와 완전히 반대에요 내가 뭔가를 하느님께 얻어내기 위해서 내가 안내면 하느님 삐질까봐 하느님을 달래기 위해서 내가 하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아까워요 자기 목적이 그건데 그런데 하느님을 달래서 더 많은걸 얻어내기 위해 억지로 내는걸 적게 뿌리는는 거라 하는 거에요 그들은 거둘게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이 뿌리는거 이 많이 뿌린다라는 이 이야기를 마게도니아 교회에 그 예를 들어 놓고 사도바오로가 이야기 한다 말입니다 마게도니아 교회 교인들처럼 별로 낼것도 없는데 그런데 하느님이 기뻐하시고 하느님의 교회인 내 몸을 위해서 그렇게 그냥 전심에서 울어나오는 마음으로 내것을 풀어논것 그걸 많이 뿌리는거 라고 그래요 그들이 많이 거두었는데 그 많이 거둔 거둠이 여기 12절부터 14절까지 나온 거에요 그들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느님의 은혜를 칭송을 하고 하느님께 그게 영광이 되고 하는것 그게 성도가 거두고 싶어 하는 거잖아요 이 땅에서 아닙니까 맞잖아요 그게 하느님께 기쁨이 되고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걸 성도가 거두고 싶어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마게도니아가 그렇게 헌금을 했더니 그런 것들이 많이 거두어 졌단 말입니다 그게 많이 뿌리는 자가 많이 거둔다라는 이야기인 거에요

어떤 왠수는 또 아니 그게 아니라 가진거에 비례해서 퍼센테이지를 많이 내면 많이 준다는 거에요 그래서 과부 두렙돈 바친 과부가 나중에 굉징히 부자가 됐다라는 그런 내용이 성경에 붙어 있나요 그 사람 끝까지 그렇게 살았어요 과부로 그런 얘기 하는거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짜 성도의 그 통공, 성도의 교제안에서 내것을 비워 내어서 다른 이들의 유익을 구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나라가 완전히 완성이 되는 그 일, 그거 하나만 바라보면서 훈련해 보는 거에요 안되면 기도하는 거에요 그리고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고 했으니까 열심히 말씀 공부해 보는 거에요 그래도 안되면 하느님 이래서 예수가 날 위해 죽으실수 밖에 없었군요 이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만을 붙들지 않으면 절대 존재할 수 조차도 없는 그런 자들이군요 배우는 거에요 여러분

하느님이 우리에게 은사와 소유를 왜 주신다 그랬어요? 교회를 올바로 세우게 하기 위해서, 예수의 몸으로 올바로 세우게 하기 위해서, 우리 교회가 예수의 몸으로 올바로 세워진다는게 뭐에요 예수처럼 하느님 앞에 죽기까지 자기 걸 다 비워 순종함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내는게 교회가 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은사와 소유는 여러분이 갖고 여러분을 살찌우라고 주는게 아니에요 거기서 그게 막혀 버리면 동맥경화가 되는 거에요 순환이 되야 되는 거에요

에페소서 47-12절 보세요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8 그래서 성경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데로 오르시어 포로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10 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왜 줬다구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고 준 거에요 그러니까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은혜에 선물을 받은 이들이 그걸 풀어내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곳이지 어떤 것을 내가 반드시 가서 얻어내겠다 라고 혈안이 된 이들이 모여서 나에게 유익이 되는 걸 찾아내는 그리고 나를 감동시켜줘야 되고 나를 항상 감격시켜줘야 되고 나를 존경해 주고 나를 우대해주는 고러한 것들을 바라는 이들이 모인 곳을 교회라 하지 않는다니깐요 교회는 여러분의 것을 풀어 러 오는 거지 무슨 여러분이 뭘 얻어내기 위해 오는 게 아니에요 교회는 성도는 이 로컬처치에 모여서 자기 것을 비워서 진짜 그리스도의 몸이 살아나는가를 서로 서로 시금석이 되어주면서 경험하며 사는 거에요 교회는 교제가 있는 곳이라니깐요 코이노니아가 있는 곳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오셔야 되는 거에요

하느님 나라의 그 천상의 교회 그리고 이 지상의 로컬처치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잘 아시겠죠 여러분 여기서 그 천상에 교회에 그 본 모습으로 잘 지어져 가시면 되는 거에요 그래서 교회를 신자의 어머니다라고 얘기 한 거에요 어머니가 있는 가족 교회에서는 자라남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 자라셔야 되요 야 교회갔더니 맨날 쌈박질만 하고 이 로컬쳐치에 불완전함이 여러분의 성화에 기여한다라는 거 잊지 마세요 여기서는 여러분이 여러분 것을 털어서 천국을 이루어 내는 자로 노력하며 한번 살아보는거에요 언제까지 피흘리기까지, 성경이 우리에게 그걸 요구하고 있단 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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