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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거룩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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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12824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거룩한 분노"

교회 전례력 안에서

성인(聖人)들의

축일은 주로 돌아가신 날

한번만 기억합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수난 축일 뿐만 아니라

 탄생 대축일도 성대하게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그를 각별히 존경하고,

그의 탁월한 신앙 앞에 최고의

예우를 갖추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마지막 대예언자’,

 ‘메시아의 선구자’,

‘구약과 신약의 가교(架橋)’,

‘진리의 증언자’...

 예수님께서도 세례자 요한의

위대함에 대해 공개적으로

인정하신 바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태오 복음 11장 11절)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죽음,

생애와 가치관, 신앙여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가 보인 삶의 방식은

 여러모로 독특했습니다.

 탄생 때부터 유별났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그의 양친은

공기 좋은 요양원에서 마지막

삶을 정리하고 있을 나이의

호호백발 노부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통해 당신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가능이 없음을

만천하에 보여주셨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자식이었던

세례자 요한이었지만,

철이 들자마자

따뜻한 부모의 품을

지체 없이 떠났습니다.

그는 혈혈단신의 홀몸으로 깊은

유다 광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유다 광야에 가보니 참으로

척박하더군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청명한 하늘과 황량한

땅 밖에 없더군요.

그런 제한된 여건 속에서

세례자 요한이

 한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강도 높은

영적생활에 투자했습니다.

눈뜨면 기도했고 눈 감아도

기도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기도하고

땅을 보고 기도했습니다.

 20대 청춘의 끓어오르는

젊은 혈기와 강렬한 에너지

전부를 엉뚱한 데 쓰지 않고,

오로지 오실 주님을

극진히 환대하는

준비 작업에 사용했습니다.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은

틈만 나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완벽하게

예수님의 선구자로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인가?

시뮬레이션 작업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런 세례자 요한의 도움과 희생에

힘입어 마침내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부여하신 지상과제,

인류구원사업을 100%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보여준 극도의

청빈생활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광야로 들어갈 때

그가 지닌 것이라고는

겨우 몸을 가릴 정도의

낙타털옷 한 벌이

전부였습니다.

주머니에는 땡전

한 푼 없었습니다.

척박한 유다 광야에서 얻을

음식물이라고는 메뚜기와

석청 정도였으니 거의 초근목피의

생활이라고 보면 정답입니다.

무일푼이었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주님

섭리의 손길에 자신의 생애

전체를 맡길 수 있었습니다.

자존심 강한 그는 철저하게도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고

부자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금전 문제에 있어 언제나 투명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세례자 요한의

삶은 참으로 강직했고 당당했습니다.

그는 불의 앞에서

절대로 참지 못했습니다.

그의 내면은 ‘거룩한 분노’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그런 태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특히 유다 왕실

앞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직하고 당당했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헤로데 왕의

불륜 앞에서 용감하게 신랄하고

날선 질책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르코 복음 6장 18절)

오늘 우리 앞에 헤로데

못지않게 불의한 자들,

구려 터진 이들이 사사건건

나라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행동 하나 하나 살펴보니

인류 역사 이래 저런 뻔뻔스럽고

후안무치한 정당(政黨)이

다시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리

저속한 막말들을, 그 어떤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은 단체로 똘똘 뭉쳐

끝까지 뉘우치지 않고,

끝까지 국민들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고,

저리도 비열하게 꼼수를

리고 있습니다.

저 사악한 자들을 향한

우리 국민들의 ‘거룩한 분노’

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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