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자유게시판

현상 너머의 의미 2

스크랩 인쇄

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4-05-07 ㅣ No.231389

그래비티, 중력은 모든 만유인력의 중심 같은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현상은 이 중력에 의해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성수대교 붕괴사고도,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유용하고 필요한 건축물들을 지을 때 그런 중력과의 관계나 균형을 잡지 못하면 그런 사고들은 언제 어디서든 벌어지는 것이다
부실시공, 인간들의 욕망이 이웃들, 관계 당사자들과 정의롭지 못하고, 서로 간의 양화라는 초점에서 벗어나 탐욕으로 기울고, 사익추구에 혈안이 되었을 때, 건설사들이 입찰과정이나 시공과정에서 저지르게 되는(터무니 없는 입찰가나 공사비) 비리로부터 이미 기획되고 계획되어 저지르게 되는 범죄와 같은 일이다
그 부실시공은 특히 중력과의 관계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 중력을 견디지 못하는 일체의 시공(함양미달의 자재들을 사용하고(원가절감>사익차익의 발생), 건설공기를 축소하며(인건비 등을 절감하느라  무리한 시공일정으로 공사기간을 단축하는>사익차익의 발생), 건설방식을 무리하게 짜맞추며(중장비 등 설비의 사용을 임의대로 조정하며>사익차익의 발생)으로 그 악의로부터 인재는 이미 예고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형재난이 발생하면 경찰들이나 국과수, 소방서에서 그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그것이(당연히), 인재라면 그 책임소재의 추궁과 처벌을 가하는 수순이 진행된다
그 사고원인이란 당연히 중력과의 관계가 올바로 실행되지 않은 부실시공으로 인해(어느 한 지점이나, 여러 균열들로부터 파생된 전체 하중의 붕괴, 곧 중력을 견디지 못하는 구조물) 벌어진 것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듯 지구상에서,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은 자연 현상의 범주에 있는 것이다
그런 현상 너머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습관이자 관습(여러 형태의 공동의, 공동체 차원의 행태와 양태도 있다)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만 들어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복음에도 그런 뉘앙스와 의미를 내포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어느 날, 어느 동네에서 탑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누군가나, 무언가에 의한 사건이 아니다)
당연히 탑 구조물이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탑 바로 아래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 무너진 탑의 잔재들에 깔려 다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런 재난이 발생했고 사상자들이 생겼으며, 그렇게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위의 관점은 현 시대의 관점이자 그 사고에 담겨진 의미들을 이해하는 차원이다
그러나 옛사람들로부터 눈에 보이는 현상,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그 너머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오랜 전통(대체로 종교쪽으로 그 성향이 강한)과도 같이 인류의 습관이자 관습처럼 지금도 그런 이해 방식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 시대의 다른 여러 사람들의 그런 이해는 차치하고라도 그 복음의 주관자이며 당사자인 예수는 어떻게 그 모든 일을 바라 보았을까
이것이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중력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오로지 한 분이신 주님이며 스승이시니 말이다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처럼 멸망할 것이다'
다분히 예언적인 표현이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아서 그렇게 멸망했다라고 사고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문장에 그런 사고에 대한 정의가 내포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
당대의 유다인들은 장애인들이나 나환자들, 병든 이들에 대해, 너희는 너희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그렇게 태어난 것이다-이런 단정은 보통 어느 동양 종교에서 말하는 현상에 대한 이해(현상 너머의 의미 파악)에 가깝다, 그들은 그것을 카르마라고 한다)
라고 말한다는 것을 복음에서도 그들의 입을 통해 언뜻 비친다
예수는 탑이 무너졌고(중력을 견디지 못한 하중의 붕괴는 여러 물리학적 원인(과 이유)가 있다) 그 탑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바로 예수의 입장에서 본 그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그런 현상 너머의 의미는 그 현상에 대한 정의를 내포하고 있다
예수는 그렇게 단도직입적인 현상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너희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하며 보다 주된 복음의 관점, 곧 회개를 촉구하는 양식으로 돌려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이 길을 가다 많은 건축물들을 보며 어느 건물이 무너질 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모든 우연의 접점이 일생일대의 사고발생으로 발발한다면 그것 또한 예사롭지는 않은 것이다
당연히 그런 사고는 중력과의 균형을 상실한 하중의 붕괴로 나타나는 인재나 재해이겠지만 하필 그 때, 그 자리에(다른 이들은 아닌, 그런 이들) 바로 거기 있어서 라는 남모를 필연성이 그 모든 우연에 대한 한가닥 의문점으로 생각해 보게도 하는 것이다
예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무심하고 무위한 일은 없다(최소한 인간사, 그 세상사에 있어서 말이다)는 사실성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인간성이 있고 지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말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6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