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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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라도 때울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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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06-12 ㅣ No.4994

6월 12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고린토 2서 3장 15--4장 6절

 

"우리가 선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고 우리는 예수를 위해서 일하는 여러분의 종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몸으로라도 때울 각오>

 

오늘 점심 먹고 나니 꽤 많은 비가 내리더군요. 비가 오건 말건 아이들과 빗속에서 신나게 농구시합을 했습니다. 물을 머금은 농구공이나 그라운드나 다 미끄러웠지만 비를 맞으며 뛰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몸을 부딪치며 정신 없이 놀다보니 휴식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과 같이 깔깔대며 보낸 시간이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요즘 자주 제 자신에게 반문합니다. "하느님께서 살레시안인 제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한때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주고 또 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관계 공무원들을 좀 찾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라든지, "아이들을 보다 잘 거두어 먹이기 위해서 좀 더 외부로 뛰어야겠다. 그게 아니라면 팔릴만한 책이라도 몇 권 만들어 조금이나마 살림에 보탬이라도 되어야 하겠다"는 등등의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을 먹든 밥을 먹든 그저 함께 지내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함께 가는 것이 괴로워도 슬퍼도, 일이 꼬여 잘 안풀려도 그냥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나는 위에서 아이들은 밑에서 따로 따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손을 꼭 붙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아이들 옆에 있으면 있을수록 아이들을 향한 측은한 마음과 사랑이 깊어져 간다는 것을 피부로 확인합니다.

 

쓸데없이 목을 길게 빼서 수도원 담장 밖을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시선을 안으로 돌리는 노력이 중요한 듯 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대상자들이나 직무에 대한 항구한 충실성이야말로 복음 선포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자세일 것입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다들 약아빠져서 그런지 순식간에 사람의 정체를 파악합니다. 삶이 뒷받침되는 강론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도 귀신같이 알아냅니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인지 아니면 입에 발린 말인지를 순식간에 파악하지요. 진정한 복음선포자인지 사기꾼인지도 즉시 판별합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나 사제, 수도자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바오로 사도는 말씀을 선포 봉사자들이 지녀할 자세에 대해서 아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로 요약하면 속된 말로 "지 꼬라지 알기"(자신의 정체나 신원에 대한 정확한 인식)와 겸손의 덕입니다. 그런데 "지꼬라지 알기"와 "겸손의 덕"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단어들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안에서 겸손이란 단어의 뜻은 그저 뒤로 빼고, 안 하려고 하고, 수동적인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겸손이란 하느님 앞에 자신이란 존재가 얼마나 작고 나약한 존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느님만이 영원하시고 하느님만이 전지전능하시니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가 겸손입니다. 내가 이토록 부족하고 부끄러우니 능력의 원천이자 절대자이신 예수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일, 그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모두 하느님 앞에 이런 겸손한 고백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는 오직 당신의 부족한 도구일 따름입니다. 제가 부족하기 한이 없지만 조금이나마 세상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제 자신을 내어놓겠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면 몸으로라도 때울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제 시간과 제 하루를, 제 능력과 인생을 모두 내어놓으니 마음껏 쓰십니다. 이 모든 봉헌은 주님 당신 사랑에 대한 너무나도 작은 지극히 작은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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