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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김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 장례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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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문화홍보국 [commu] 쪽지 캡슐

2009-08-22 ㅣ No.523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 장례미사 강론

 

2009년 8월 22일(토) 저녁 7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정진석 추기경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평생을 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 사시다가 우리의 곁을 떠나 하느님의 품안에 잠드신 김대중 토마스 모어 대통령을 기리며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미사중에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김대중 대통령을 당신 품에 받아주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먼저 평생의 반려자를 잃고 큰 슬픔에 빠져있는 이희호 여사님과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훌륭한 지도자를 여의고 허탈해있는 국민들에게도 애도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처럼 훌륭한 분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또 언제 이처럼 훌륭한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분의 선종이 우리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김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화,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해 평생 동안 헌신하셨습니다. 한마디로 한국 현대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은 그은 정치지도자이며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국민들의 큰 어른이었습니다. 

김 대통령은 지난 1956년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故노기남 대주교님 집무실에서, 정치적 스승이었던 故장면 박사를 대부님으로 모시고 김철규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명인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의 불의에 저항하다 순교한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법관이었습니다.

김 대통령은 토마스 모어 성인처럼 민주주의와 교회를 위해 정의를 실천하겠다는 뜻에서 세례명을 선택한 것입니다. 실제로 김 대통령은 평생을 토머스 모어 성인처럼 정의를 실천하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셨습니다.

김 대통령 자신이 늘 말했던 것처럼 목숨을 걸고 싸워야했던 고통과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불의에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싸웠습니다. 김 대통령은 쉽게 살 수 있는 길을 용기있게 물리치고 어렵고 힘든 가시밭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은 억울한 정치적 핍박을 받고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김 대통령도 약한 인간이기에 왜 죽음의 위협 앞에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쉽게 사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수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형선고를 받고도 의연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분이 평생 간직했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때문이라 믿습니다. 

김 대통령은 자신이 말했듯이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회고할 만큼 진정한 신앙인이셨습니다. 그분이 신앙의 진수를 보여주신 것은 오히려 자신을 박해하고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을 불쌍히 여기셨던 예수님의 사랑의 모범을 훌륭하게 실천하셨습니다.

실제로 김 대통령께서는 자신이 여러 번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은 것은 하느님이 자신을 필요한 때에 당신의 도구로 쓰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실제로 평상시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실천하셨습니다.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시간에 쫒기면서도 미사를 거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십자 성호를 긋고 나라의 발전과 민족의 통일 위해 평생 기도를 하고 저녁에는 내외가 함께 저녁기도를 바침으로써 자녀들에게도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병상에 있는 동안에도 늘 봉성체를 하시고 생애 마지막에 병자성사를 받으셨습니다. 충실한 신앙인으로 사셨던 김 대통령의 삶은 그분을 따르는 많은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입니다. 김 대통령께서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숨을 거두시는 행복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그분 생애의 마지막에 필요한 은총을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김 대통령을 만날 때 마다 이분이 참 크신 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무게감을 느꼈습니다. 왜 사람들이 그분을 선생님이라 부르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인간적이고 마음이 부드럽고 가족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따듯한 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 사랑 많은 아버지의 마음이 잘 표현돼 있습니다.

우리는 김 대통령을 가난한 이, 소외된 이, 특히 집 없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려고 노력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분은 국민을 사랑했고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애국자였습니다. 그분은 살면서 한 순간도 국민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도 김 대통령을 이토록 사랑하는 것입니다.

김 대통령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그분의 정신과 삶은 생생하게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우리도 그분이 보여준 삶을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한다면 우리의 허전함, 아픔, 슬픔을 조금이나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대통령은 평생을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만 동시에 보복과 폭력을 거부하고 화해와 용서를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화해와 용서 없이는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자유 민주주의가 활짝 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간, 세대간, 갈등을 치유하고, 나아가 불목한 모든 이들이 화해하고 화합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김 대통령을 기리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 홀로 서 있을 때 인생이 참으로 덧없고 허망하다고 느낍니다. 만약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면 우리의 인생은 너무 불쌍하고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신앙인들은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지닙니다. 죽음 가운데도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 안에서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사셨던 김대중 토마스 모어 대통령을 주님 품안에 맡겨드릴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지상의 삶을 충실히 마치고 선종하신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의 선종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고인의 영혼이 자비하신 하느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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