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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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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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 [up9080] 쪽지 캡슐

2006-04-07 ㅣ No.177

 

 

자살의 심리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이다. 봄은 뭔가 활기차게 시작해야 할 것 같은 활력의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다. 시작의 설렘으로 가득해야 할 날이 결코 지난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능 속에는 삶에 대한 의지와 더불어 죽음에 대한 의지도 함께 존재하는 것일까?

상황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살 시도에 그친 사람들은 충동적인 성격을, 그리고 실제 자살에 이른 사람들은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다. 특히 '사회로부터 강요된' 완벽주의에 길든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기준을 어떻게 해서라도 충족시키고자 무모한 노력을 한다. 이들은 실패를 자신의 무능력 탓으로 생각하여 무가치함과 절망감을 느끼면서 극단적으로 자살을 감행한다. 또 타인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부분보다 자신에게 부족한, 매우 작거나 일시적일 수 있는 부분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염려한다. 학력이나 사회계층이 높은 사람들의 자살, 사회적 강자라고 여겨지는 남성의 자살, 젊은 층의 자살이 많은 이유를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사회로부터 강요된 완벽주의'는 부모의 지나친 기대, 자신의 실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과도한 염려와 비판에 의해 길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뭐든지 다 잘해야 한다' '이것도 못하면 나는 끝이다' 같은 완벽성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 의해 형성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작은 실패와 약간의 부족함만으로도 낙오자가 되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학교 성적, 취업, 승진, 경제적인 실패감 등의 문제가 개인에게는 목숨을 위협받는 것과 같은 심각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즉 지나친 완벽성을 요구하는 사회가 점차 치열한 경쟁으로 사람들을 몰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스트레스는 사실 다른 사람의 사회적.정서적 지지만으로도 완화될 수 있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사회적 지지가 기억과제 수행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한 집단에는 틀린 반응에 심한 경고음을 주면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즉각 평가하는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게 하고, 다른 집단은 이러한 스트레스 없이 과제를 수행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때 "나도 이 실험에 참여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잘할 수 있을 거예요"와 같은 지지를 받은 집단이 스트레스 수준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과제를 더 잘 수행하고, 불안감도 낮아졌다. 그러나 지지를 받지 못한 집단은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수행이 저조하고 강한 불안을 느꼈다. 이렇듯 지지자와 심리적 후원자가 있다는 생각은 살아가는 데 큰 원동력이 된다.

반대로 지지자와 심리적 후원자의 부재는 인간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자살을 결심하고 나서 죽고 싶다는 의사를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과 좌절을 공감해 달라는 마지막 절규다. 유서를 남기는 심리 또한, 죽어가면서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여전히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자살 사이트에서 자살의 동반자를 찾는 심리에서도 나타난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앞에서도 외로움이 싫고, 자신의 죽음을 같이하고 지지해 줄 그 누군가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완벽성과 절대적 성공은 자살하는 순간에도 동반자를 찾고 있는 나약한 인간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 좀 관대해 보자. 가까이는 자녀와 가족들, 직장 상사와 부하.동료, 그리고 바쁜 일상에 쫓겨 연락 한번 못했던 친구들에게 지나친 완벽보다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지지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관계임을 확인시켜 주는 봄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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