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토)
(백)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정진석 추기경 "대화와 타협으로 평화 이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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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문화홍보국 [commu] 쪽지 캡슐

2009-01-01 ㅣ No.437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세계 평화의 날’ - 정진석 추기경 미사 강론

"대화와 타협으로 평화 이뤄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2009년 새해 첫날인 1일 낮 12시 명동대성당에서 ‘세계 평화의 날·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집전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의무 대축일이다. ‘천주의 성모’라는 말은 초대 교회 때부터 있어 온 칭호로,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공적으로 승인하였다. 비오 11세 교황은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이 되는 1931년부터 모든 교회에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게 하였다. 1970년부터는 모든 교회에서 해마다 1월 1일에 이 대축일을 지내고 있다.

또한 바오로 6세 교황은 1968년부터 이날을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날(세계 평화의 날)로 정하였다. 이후 교황들은 매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을 발표하는데, 여기에는 평화가 단순히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 평등, 화해, 일치, 대화, 연대, 인권, 자유의 모든 개념을 포괄한 의미로 사용되었고, 병들고 가난한 이들과 약한 이들의 옹호를 통해 지구상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뿌리내리는 것을 그 본질로 보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세계 평화의 날(2009. 1. 1)을 맞아 교황담화 ‘빈곤 퇴치와 평화 건설’을 발표한 바 있다(교황담화 전문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www.cbck.or.kr 참조).

정진석 추기경은 이날 ‘세계 평화의 날·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면서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복음 14장 27절)를 주제로 평화, 인권, 공권력 등에 대해서 강론했다(강론 전문 첨부)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은 다음과 같이 ‘평화의 날’ 강론(메시지)을 부연설명 했다.

“‘세계 평화의 날·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에서는 통상적으로 교황님의 메시지를 요약․낭독해왔다. 그런데 오늘 미사에서 정진석 추기경께서 평화와 인권을 강조하며 특별 강론을 하신 것은 요즘의 심각한 시국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으로 안다.

정부에 대해서도 국민과 진정한 소통을 할 것,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책을 펴줄 것을 주문했다. 특별히 지난해 촛불집회 대응에 있어 국제앰네스티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공권력 행사시 과도한 폭력사용의 문제점을 제기한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다고 본다. 또한 폭력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재천명한 것도 지난해 뿐 아니라 새해에도 염려되는 시국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고 볼 수 있다.

폭력과 공권력에 대한 교회 공식적인 기본 입장을 밝히고, 지난해 주교회의의 인권 발표문에 대한 강조와 함께 지난 성탄 메시지에서도 언급한 경제만능주의의 허상을 버리자는 내용을 강조했다. 또한 인권문제에 관해 교회내의 담당 단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인권 보호에 앞장설 것을 주문했다고 본다.”

 

정진석 추기경의 ‘평화의 날’ 강론(메시지) 전문은 다음과 같다.

 

 

 

 

2009년 세계 평화의 날 미사 강론(메시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새해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새해 첫날은 ‘세계 평화의 날’로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하느님께 기원하며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마리아에게 전구하는 날입니다.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매년 1월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정하신후 오늘 교회는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황님께서는 모든 인간 문제의 해결을 폭력이 아닌 대화를 통한 상호 이해와 용서로써 해결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평화는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영원한 희망입니다. 또한 그 평화는 내적인 평화뿐 아니라 세상과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분쟁과 갈등이 없는 외적 평화에 대한 갈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평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전쟁, 분쟁, 억압과 폭력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평화는 인간 존엄성의 바탕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인권은 평화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는 무자비한 전쟁터로 바뀌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이 매일 희생되고 있습니다. 선의의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촌의 평화는 요원해 보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어떠합니까? 또한 우리사회는 인간 생명에 대한 경시풍조는 날로 심각해지고 여러가지 형태의 폭력과 비인간적인 범죄의 증가는 우리 삶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은 더욱 위험에 노출되어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보호해야 할 인권으로 갖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모든 인간은 어느 누구에게도 양도하거나 훼손될 수 없는 생명과 신체의 자유, 최소한의 사회 보장을 받을 권리,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 등 천부적인 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오히려 이러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지난해 인권주일 주교회의의 선언문에서 언급되었지만 우리 사회가 온힘을 기울이고 있는 경제 살리기와 평화로운 사회를 위한 법치주의의 목적도 결국 인간 존엄성의 수호를 위해서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물질이 인간의 가치에 우선하는 가치 전도 현상이 심각하여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더 고통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삶의 문제를 경제논리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유혹과, 경제만 좋아지면 모든 문제가 모두 다 해결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단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대로 먼저 물질이 아니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선택을 해야 하는, 끊임없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채택’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즉 ‘소유에 대한 존재의 우월성, 사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 기준’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생명의 복음 98항).

 

따라서 평화의 건설을 위해 우리 사회의 많은 그늘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에 주목해야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선 실현을 위해서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와 지도자들이 더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우선적으로 펴야할 것입니다. 또한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고 국민을 좀 더 행복하게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국민과 의사소통하는 데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또한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법 경시 현상을 변화시켜서 우리 사회가 진정한 정의사회가 될 수 있도록 국가 지도층에서부터 솔선수범으로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근래 우리 사회 전체가 상하를 막론하고 법률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모습이 개탄스럽습니다. 아울러 국가 공권력의 사용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공권력을 행사할 때 인권을 무시하거나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 61항).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공권력 사용에 문제를 제기한 점을 환기하여, 공권력의 본질이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조정하고 보호하고 증진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사용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입니다. 물론 폭력사용의 절대 금지는 공권력뿐 아니라 시위대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 누구에게도 법을 지키지 않거나 상대에게 폭력을 사용할 자유는 없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며, 이에 대항하는 대항적 폭력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는 반대합니다. 제2차 바티간 공의회는 “평화의 건설을 위해서는 우선 불의부터 뿌리 뽑아야한다”고 강조하면서 폭력의 방종을 억제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83). 따라서 평화의 건설을 위해 우리의 가정, 학교, 사회와 거리에서 폭력이 사라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디지털 문화가 과거에 비해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더불어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의 악성댓글과 인신공격의 글들은 실제적인 폭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글로 살인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방치해 둘 수 는 없는 일입니다.

 

현재 우리의 인권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개선하는 일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인권문제를 담당하는 이들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 제반 문제를 연구 분석하고 인권과 윤리가 유린당하는 일이 없도록 살펴야 할 것이며, 억울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억울한 인권 피해자도 없도록 돌보아주는 것이 바로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광야에 놓아둔 채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루카 15,4) 예수님께의 복음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를 전해주고자 오셨습니다(루카 2,14). 우리는 그분을 맞아들임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참된 평화와 영원한 행복을 유산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평화는 세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요한 14,27). 세상은 힘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힘의 논리만을 앞세워 해결하려 한다면 오히려 불신과 증오만 커져 더욱 평화를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가 희망하는 평화는 진리, 정의, 사랑, 자유와 인내 안에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질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해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평화의 축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시다. 그리고 이 땅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구현되기 위해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합시다. 새해에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께 원하시는 평화가 흘러넘치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새해 첫날, 평화의 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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