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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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성 필립보와 야고보 사도 축일: 요한 14, 6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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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승 [bona24] 쪽지 캡슐

2024-05-02 ㅣ No.172071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14,8)

성서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기에 행복합니다. 부활을 아직 체험하지 않은 제자들의 관점에서는 오늘 우리가 들은 예수님의 토마스에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14,6.7) 하는 말씀을 어찌 이성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 보면, 필립보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14,8)하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믿기 위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또한 끊임없이 이해하기 위해 믿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필립보는 제자들을 대신해서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필립보의 간청은 단지 필립보만의 바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때론 하느님을 뵙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는 표현은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더 바랄 것 없이 그것 하나만, 뵙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199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국민 작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유고 시집의 제목이 「충분하다.」입니다. 어쩌면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충분하다’라는 미완성의 문장은 시인이 자신에게,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마지막 한마디였다고 미루어 생각합니다. 충분하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14,9) 이 몇 마디 단어들로도 우리에겐 충분합니다. 이 몇 마디 단어들로 충분하지 않다면, 이렇게 당신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더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필립보 사도와 달리 우리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얼굴이다, 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시각적인 측면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영성적인 측면에서 아빠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14,9)하는 말씀을 이해합니다. 사순시기를 거쳐 오면서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당신의 정체성을 증언하는 핵심은 바로 나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니 말씀하시고 일(=사람을 살리는 일/구원)하시니 일하신다, 는 말씀입니다. 비록, 자신을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4,11)하고 언급하셨던 것입니다. 이를 믿고 이를 살려고 하는 믿는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덧붙여서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14,12)하고 격려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이미 사도들의 행적으로 입증되었으며, 교회 역사를 통해 수없이 많은 성인 성녀와 순교자들 그리고 지금은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고 이를 증거하려는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4,13)하고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5,8)

성 요한바오로 2세께서는 「새천년기 16항」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 현대인들 또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해 달라’는 요청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그분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분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증언은 지극히 부적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주님의 얼굴 위에 굳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대로 오늘 하루, 사도 필립보와 야고보와 함께 ‘주님의 얼굴 위에 굳게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소서.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리이다.” (영성체송)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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