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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이사49,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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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8-03-14 ㅣ No.118972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이사49,8~15)


그런데 시온은 "주님꼐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14~15)

 

이사야서 47장 8~13절에서는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에 주님의 종 메시야를 통하여 선민들이 보호와 인도를 받게 될 것이 예언되었다.

이제 이사야서 49장 14~26절까지는 바빌론 유배지에 있던 남부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번성할 것을 예언한다. 

바빌론 유배지에 있던 남부 유다 백성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사야서 49장 14~26절에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결코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답을 줌 동시에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후에 그곳이 좁아서 못 살 정도로 인구가 많아지는 축복까지 누리게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약속까지 한다. 

이사야서 49장 14절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라는 의심과 불평은 이사야서 40장 27절에서 나타나는 내용과 유사하다.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채 없어져 버린다."" (이사40,27)


이렇게 불평을 하는 대상으로 언급되는 '시온'바빌론 유배지에 있는 남부 유다 백성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만을 볼 뿐 하느님의 약속을 망각했으며 하느님께서 주실 구원을 내다보는 믿음의 눈이 없는 자들이었다.


본문에서 '나를 버리셨다'에 해당하는 '아자바니'(azabani)원형 '아자브'(azab)'무시하고 저버리다', '남겨두고 떠나다'라는 의미다 (창세28,15; 39,12; 50,8).

그리고 이와 병행을 이루는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라는 표현에서 '나를 잊으셨다'에 해당하는 '셰케하니'(shekehani)의 원형 '샤카'(shaka)는 인지적으로 기억을 하지 못함과 더불어 무시하고 배신함나타내는 표현이다(신명8,11.19).


이러한 이사야서 49장 14절의 표현은 바빌론 유배지 포로로 잡힌 이들의 하느님께 대한 불신앙을 보여준다. 

그들은 장차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단지 계속된 포로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잊고 버리셨다고 불평했던 것이다.


사실 엄격히 말하면, 주님과 주님과의 계약과 율법을 배신하고 무시하며 저버린 남부 유다 백성들은 하느님께 버림을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남부 유다 백성들을 결코 버리시거나 잊지 않으셨으며, 백성들의 불신앙 가운데서도 그분의 구원의 계획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이사49,1~3).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반어적 수사 의문문으로 시작하는 이사야서 49장 15절주 하느님의 당신 백성들에게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강조하여 표현한다.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버리고 잊으셨다는 백성들의 의심과 불평에 대해 주 하느님께서는 자기 태에서 난 젖먹이를 키우는 여인의 비유를 들어서 당신 자신이 당신 백성들을 결코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의 사랑 중 가장 숭고하며 강한 것이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모성적 사랑이다.

하느님께서 바로 어머니의 모성적 사랑을 소재로 하여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계신다.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본문은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문장이다. 사실 젖먹이를 잊고, 태에서 난 아기를 가엾게 여기지 않는 어머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확실한 사실이 부정될 수 있다고 해도 하느님의 사랑만큼은 결코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은 본절에 이어지는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란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원문상 이 문장에서 주 하느님 자신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 '나는'에 해당하는 '아노키'(anoki)는 문장 구성상 없어도 되는 단어이지만, 주어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인칭 대명사이다.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에 해당하는 '웨아노키 로 에쉬카헤크'(weanoki lo eshikaek)에서 드러나듯이 '에쉬카헤크'(will forget you)라는 미완료형 동사와 부정어 '로'(lo; not)가 결합된 형태로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이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 하느님 자신만큼은 절대로 당신 백성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일찌기 깨달은 다윗 시편 29장 10절에서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받아 주시리라' 하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하였다.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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