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모고해가 이렇게 많을까?] (1)
어째서 모고해가 이렇게 많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중요한 원인은 죄를 범한 후에 부끄러워서 바로 고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끄러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마귀에게 입을 틀어 막혀 어떤 죄는 그 범행 실황과 횟수를 발표하지 못하고, 또는 똑똑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귀는 누구에게든지 죄를 저지르도록 부추길 때는 그 사람 옆에 와서 속삭이기를, “이 죄를 범한다 해도 너에게 무슨 해가 있겠는가? 하느님은 무한히 인자하시니까 구태여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너는 고해하면 되지 않느냐? 하느님은 몇 번이고 사해주시지 않느냐? 젊은 때는 이런 죄를 범하기 쉬운 것이다. 이 다음에 나이 들어서 보속을 많이 하면 될 것 아니냐?” 라고 오늘도 내일도 되풀이 한다. 사람들은 결국 마귀의 꾐에 빠져 죄를 범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 번 범한 죄는 거듭 범하기가 쉽다. 이미 한 번 범한 죄이니, 두 번 범하나 세 번 범하나 고해하면 마찬가지 아니냐? 이러한 마귀의 속삭임과 마음의 느슨함이 그 사람의 지혜를 흐리게 하고, 자유의지를 약하게 만들어 버린다. 한 번, 두 번 죄를 범한 뒤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고해하려고 할 때 마귀의 전술은 또 달라진다. “어떻게 네가 이 죄를 남에게 말할 수 있나? 고해 사제가 너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나무랄 것이다. 너를 나쁘게 여길 것이다. 좀처럼 용서도 안해줄 것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차차 기회를 봐서 고해하면 되지 않느냐? 아직 바쁘지 않다. 다음에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것이 아니냐?” 마귀는 이렇게 속삭인다. 큰 죄를 한 번 범한 사람은 흔히 이 속삭임에 속아 입을 다물게 되고, 신부 앞에 가서 바로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하여 마침내 모고해를 하게 된다.
마귀란 놈이 이 술책을 쓰는 것을 피렌체 대주교 성 안토니오에게 솔직하게 고백했다. 어느 날 성인이 고해소 옆에 숨은 마귀를 보시고 꾸짖으며 다음과 같은 문답을 했다. “이놈, 너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 “네, 대답을 하지요.” “무슨 대답이냐? 똑똑히 말해보아라. 바로 말하지 않으면 단단히 혼을 내줄 테다.” “죄를 범할 때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공포심과 수치심을 지금 돌려주려고 여기 서 있습니다.”
성 돈 보스코도 이런 깜찍한 짓을 하는 마귀를 보았다. 어느 날 성인이 토리노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고해를 받고 있었다. 고해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특히 젊은이들이 많았다. 순서대로 들어와 고해를 하는데 한 젊은이가 들어와 고해대에 꿇어 절반쯤 고백하다가 갑자기 입을 닫아버린다. 돈 보스코 성인은 하느님의 특별한 성총의 빛으로 자기 제자들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성인인지라 친절히 말하기를, “계속하시오. 또 다른 고해거리는 없소?” “예, 없습니다. 이뿐입니다.” “이 사람아, 그대는 왜 모고해를 해서 마귀를 기쁘게 하고 우리 주 예수님을 울리려 하는가?” “신부님, 정말입니다. 별로 다른 죄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계시로써 이 불쌍한 젊은이가 어떤 위험에 놓여 있는가를 잘 아시는 성인은 쓸데없는 문답을 그치고 나서, “자, 그대 어깨 뒤에 무엇이 있는가 보라!” 하고 말하였다. 그 젊은이는 신부의 말씀대로 돌아다보고는 갑자기 쓰러지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성인의 목을 끌어안고, “예, 예, 신부님! 저, 저, 또 고해할 죄가 있습니다.” 하고 지금까지 말할 용기를 잃었던 그 죄를 고해했다. 성당 안에서 그 젊은이의 고함을 들었던 친구들이 그가 성당을 나올 때 그를 둘러싸고 이유를 물었다. 젊은이는 아직도 무서움에서 덜 풀려 벌벌 떨면서 미소를 짓고 말하기를, “아니, 참으로 큰일 날 뻔했다. 최후로 고해할 것이 한 가지 꼭 있었는데 도저히 고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만 말문이 콱 막혀버렸지. 신부님이 다른 고해할 것이 없느냐고 물으시기에 없다고 했다. 그러자 신부님이 네 뒤를 돌아다보라 하시기에 돌아다보았더니… 아이구 무서워, 눈동자는 타는 불같고, 원숭이처럼 생긴 마귀가 기다란 발톱으로 나를 움켜잡으려고 하지 않겠어….” 하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을 마친다. 물론 돈 보스코는 성인이시다. 고해 사제가 성인이신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다. 모든 고해 사제가 이 돈 보스코와 같이 다 성인은 아닐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며 또한 한없이 인자하시어 항상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이시다. 그의 대리자인 고해 사제도 예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신다. 그러면 우리는 어째서 그를 신뢰하지 않고 바르게 고해할 것을 꺼리는가? 어째서 우리는 마귀의 꾐은 달게 받고, 인자하신 하느님에게는 부끄러움과 무서움 때문에 거짓말을 할 것인가?
마귀는 항상 이러한 수단을 쓴다. 마치 승냥이가 양을 잡아먹으려면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먼저 양의 목을 졸라매는 것과 같이 사람의 영혼을 그 방법으로 잡는다. 죄를 숨겨 말을 못하도록 그 사람의 목을 졸라매어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한번 마귀에게 속은 사람은 몇 번이고 그 올가미에 걸리게 된다. 참으로 이런 사람이 많다. 모고해를 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매우 불행한 지경에 빠진다. 6계(간음하지 마라)를 범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러한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다. 신덕의 도리를 의심한다든가, 남을 욕했다든가, 원수를 갚았다든가 하는 죄는 고해하기가 쉽지마는, 사음(邪淫)의 죄를 고해하려고 할 때는 그만 부끄러워져서 죄를 둘러대서 범행 사실을 바르게 말하지 않거나, 여러 번 범한 횟수를 바로 대지 않아 모고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 또 그 다음 계속해서 모고해를 거듭하게 된다. 이와 같이 몇 해를 계속할 뿐 아니라 모고해를 한 다음에는 모령성체가 저절로 따라다니게 된다. 소년시절에 범한 어떤 대죄를 숨겨, 늙어 죽을 때까지 모고해를 계속하다가 한 번도 바른 고해를 못한 채 죽은 사람도 있다. 특히 젊은 남녀에게 이 '부끄러움의 약점'이 대단히 강하다.
(영혼의 聖藥 / 가톨릭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