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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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는 사랑과 같이 운명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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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4-12-23 ㅣ No.93413

성소는 사랑과 같이 운명적인 것

 

   이익에 치우쳐 살다보면

가치의 척도까지 이해관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사 중에 강론말씀을 하실 때

가끔은

참 그리스도적 삶에 대한

강론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말씀과 

자선과 선행을 많이 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얼마나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면 저러실까 하는

부끄러움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성소에 물들려하기보다 

신앙생활과 세속생활을

구분하여 시간과 공간을

갈라 놓고 있지나

않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무상성(無償性)의

하느님 사랑을 믿고 섬기며 

참된 신앙을 가지려하는 것보다

자신의 편한 생각대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향이 많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이해관계는

참된 신앙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들의

개인적 이해관계로 뭉쳐,

전 인류를 

그리스도화 시키고

가는 곳마다

교회가 난무하더라도 

결코 참다운 신앙사회를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기쁘고

 행복할 때만이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신앙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절망 속에서 천국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가운데 주님과 같이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라고 외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성인의

반열에 들 것입니다.

성소의 길은 이해관계적인

조건이 전혀 없는

사랑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날이 갈수록

성소자가 줄어들고

사제와 수도자의 수가 

날로 줄어드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관계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우리들 자신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성소를 심어주지도 못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성소는 거짓 없이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신뢰만이 

성소의 열매를 맺게 하며

’부모에 대한 효도’나

 ’부부간의 애정관계도’

이해타산이 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 따를 때

관계 속에서 진실한 사랑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하느님과 신앙인의 사이도

그렇게 되어야

성소의 꽃이 필 것입니다. 

우리 삶이 하느님의 분명하고도

절대적인 뜻으로 받아들일 때,

성소는 사랑과 같이 운명적으로

우리 안에 머물 것입니다.

-글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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