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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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바라보면 살고 바라보지 않으면 죽습니다. - 김웅열 토마스아퀴나스 신부님 강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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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모 [kanghmo7] 쪽지 캡슐

2015-03-31 ㅣ No.95678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기념성당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신자분들께 질문 드립니다.

 

하느님을 믿습니까?

 

돈을 믿습니까?

 

양심상 더 크게 대답 못하시지요?

 

 

사도신경에 믿는다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옵니다.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이렇게 고백하지요?

 

 

내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갈대와 같이 흔들리고 뿌리가 내리지 않는 신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무엇을 믿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그 믿는 내용의 첫 번째는 하느님은 창조주라는 것을 믿는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을 따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상상하건대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예쁘게 빚으시고, 무릎을 꿇으신 다음

 

손을 뺨을 갖다 대고 코에다가 숨을 불어넣으셨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어쩌다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가 유일하게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모든 정성을 다하여 만든 존재가 인간임을 믿습니다!

 

라는 것이 믿음의 첫 번째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하느님의 거울입니다.

 

 

두 번째 믿음에 대한 내용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자식을 용서하면서도 늘 조건을 붙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서도

 

‘내가 지금은 용서하지만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있을때는~ ’

 

하면서 단서를 붙이지만 하느님은 조건을 붙이신 적이 없습니다.

 

 

간음하던 막달라마리아를 구해 주시고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막달라 마리아야, 내가 내일 이 시간에 나와 보고 사람을 또 꼬시면 가만 안 둘겨~‘

 

이렇게 조건 붙이지 않고 무조건 용서하셨습니다.

 

 

인간의 사랑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너를 사랑한 만큼 나도 사랑받고 싶다~’

 

그런데 그게 돌아옵디까?

 

남편에게 사랑을 주지만 늘 내가 원하는 만큼 기대치가 미치지 않습니다.

 

이래서 상처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느님처럼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인간도 하느님처럼 조건 없는 사랑을 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할 수 있어요.

 

 

몇 가지 예를 들면 부모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소방차가

 

자기집의 불을 끄고 있는 겁니다. 생각해보니 집 안에 아이 둘이 있어요.

 

그때 부모는 무조건 불속에 뛰어들지요.

 

불속에 뛰어들 때 내가 몇도 화상을 입는지~ 조건 붙이지 않습니다.

 

 

또 예를 들자면 옛날 기찻길 옆 판잣집에는 애들이 많았어요.

 

엄마가 일하다 보니 옆에 있던 아이가 없어졌어요.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보니 아이가 철길 한가운데 놀고 있는 겁니다.

 

그때 저 멀리서 기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으면

 

엄마는 맨발로 뛰어가 아이를 밀어내고 차에 깔려죽습니다

 

기차바퀴가 지나갈 때 얼마나 아플지, 내가 죽을지~

 

엄마는 아무런 조건 없이 아이를 밀어냅니다.

 

 

피도 살도 안 섞인 사이에서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가능합니다.

 

제가 교도소 지도 신부할 때, 어느 자매님 외아들이 깡패한테 칼에 맞아 죽었어요.

 

학교 갔다 돌아오던 대학교 1학년 아이를 칼로 수십 번 찔러서 죽였어요.

 

그 아이를 죽인 살인범은 곧 잡혔어요.

 

 

 

그런데 6개월쯤 있다가 자식을 잃은 그 아이 어머니가

 

“신부님, 부탁이 있습니다. 그 아이를 수양아들로 삼고 싶으니 다리를 놓아주세요.”

 

“무슨 말씀이세요? 자매님 외아들을 찔러 죽인 그놈을 정말 수양아들 삼을 자신이 있습니까?

 

“신부님, 만나게만 해 주십시오.”

 

 

살인범에게 그 말을 건넸더니

 

“미친 여자군요, 내가 어떻게 자기 아들을 어떻게 죽였는데 수양아들로 삼다니~ 전 싫습니다.”

 

그 자매는 끝까지 사형수와 다리를 놔 달라고 했고, 마침내 만남이 성사가 되었어요.

 

저는 긴장하면서 그 자매와 사형수 사이에 앉았습니다,

 

자매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놈 머리카락 다 뜯어놓을지 모른다고~

 

 

살인범은 고개도 못 들고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 자매는 손을 내밀어서 떨고 있는 그 살인범의 손을 움켜쥐더니

 

“이 사람아, 오늘부터 자네는 내 아들이야!”

 

그 살인범은 무너져 내렸고, 저도 옆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꼬박 영치금을 넣어주고

 

겨울에는 손수 속옷을 짜서 가져다주며 수양아들에게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 히스토리를 듣지 않으면 진짜 엄마와 자식처럼 보였습니다.

 

 

아들은 진정으로 회개했고, 모범수로 감원이 되어 6년 반 만에 출소했습니다.

 

청주에서는 살기 어려워서 저 아래 지방으로 내려가서

 

지금도 두 모자가 수퍼마켓을 하면서 얼마나 잘 사는지 모릅니다.

 

 

자기 새끼 구하려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 이해할 수 있어요.

 

자기 새끼 구하려고 기차에 뛰어드는 것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 새끼 무참히 죽인 그 원수를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우리 인간도 할 수 있어요.

 

뭐가 있다면?

 

신앙이 있다면~

 

믿음이 있다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저는 믿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두 번째 내용입니다.

 

믿음의 세 번째 내용은 무얼까요?

 

창조주 하느님은 우리를 늘 돌보고 우리를 지켜주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병에 대한 공포, 외로움에 대한 공포, 일에 미래에 대한 공포,

 

죄를 짓고 나면 죄의식에 대한 공포 때문에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처지에 빠졌다 하더라도 주님이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내 가슴에 비수를 꽂은 놈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우리가 하느님께 삿대질을 하고 온갖 욕설을 해도

 

그분께서는 얼굴 싹 돌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 하느님을 쳐다보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느님과 눈을 맞추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에 나온 내용이 불뱀에 물렸을 때

 

구리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구리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치유를 받았듯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치유를 받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치유를 받습니다.

 

 

신약 성서에 베드로사도가 예수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물위를 걸어갑니다.

 

물위를 걸을 때는 예수님과 눈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물밑을 바라볼 때, 물에 퐁당 빠집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을 보는 눈이 세상을 향하게 되면 물에 빠집니다.

 

“살려주십시오!”

 

다시 예수님께 시선을 돌렸을 때 물위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살고, 바라보지 않으면 죽습니다.

 

비록 우리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주님 바라보면 삽니다.

 

부끄럽다고 주님을 외면하면 죽습니다.

 

 

어느 집이든지 주님은 벽에 높이 걸어둡니다.

 

당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계십니다.

 

 

사순절은 내 눈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주님을 제대로 쳐다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기입니다.

 

 

사순절 내내 돈만 쳐다보지 않으셨습니까?

 

사순절 내내 과거의 상처만 끌어안고 징징거리고 사시는 분 없습니까?

 

하느님은 과거의 하느님이 아니라 현재의 하느님입니다.

 

과거에 내가 지은 죄가 진홍색처럼 붉다 해도~

 

죄악이 계곡을 채우고 남는다 해도~

 

주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고 그 분 쳐다보면 살아납니다.

 

 

주님을 쳐다보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주님을 쳐다보면 평화가 충만해집니다.

 

주님을 쳐다보면 사랑이 충만해짐을 믿으셔야 합니다.

 

 

 

믿는 내용이 뭔지도 모를 때는 이거야말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 가지를 믿는다는 것 아셔야 합니다.

 

주님이 이 못난 인간 만드시면서 무릎까지 꿇었다는 것, 믿으십시오.

 

창조주 하느님이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것 믿으십시오.

 

조건 없이 사랑하는 그분의 능력이나 씨앗이 내게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창조주 하느님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 늘 돌보아 주고 있다는 것, 믿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분을 쳐다보아야 산다는 것,

 

눈을 맞추어야 산다는 것, 믿으셔야 됩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십자가 앞에서 억지로 기도를 만들어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쳐다만 보십시오!

 

그냥 쳐다만 보면서 ‘예수님, 예수님!’ 그 말만 하십시오.

 

그분이 우리의 삶을 모르시겠습니까?

 

 

묘하게도 자주 바라보면 바라만 보아도 쳐다보는 대상을 닮아갑니다.

 

내 방의 십자가를 자주 쳐다보면 예수님처럼 변해갑니다.

 

내 방의 성모님을 자꾸 쳐다보면 신비하게도 성모님처럼 닮아갑니다.

 

돌을 자꾸 쳐다보면 돌처럼 닮아갑니다.

 

늘 자기의 시선을 두는 그 대상의 모습을 닮아갈 것입니다.

 

 

천지의 창조주를 믿고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 하느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성당에 들어올 때의 얼굴과

 

미사 끝나고 나갈 때의 얼굴은 천지차이가 나야 됩니다.

 

오늘 이 미사 때 치유와 기쁨으로 충만해서

 

말씀과 사랑으로 오신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도록 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2012. 03. 18 사순 제 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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