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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 강물처럼 흘렸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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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난한 집에 은총이 강물처럼 흘러 내렸다 가늘게 등잔 불빛이 문지방을 통해 스며 나오는 초가집. 그리 따뜻하지 않은 방에서 어머니는 아직도 바느질이시다.밤12시는 족히 넘을 듯하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안 들어 오셨다.우리 형제들은 이불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한지도 벌써 서네 시간은 지났다.그래도 아직 잠들지 않은 것은 저녁을 굶고 아버지를 기다려 만 하기 때문이다.장에서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를,피곤한 어머니는 단 한번도 드러 누어 보지도 않으신 체 기다리고 계신다.아버지가 늦는 날은 잠이 잘 오질 않는다.술에 만취되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고 누군가를 깨워서 새벽이 다되도록 알아듣지 못하는 설교를 하셨다.그래서 대문이 삐그덕 하는 소리가 나는 듯하면 잽싸게 뒤 쪽 쪽문을 통해 아버지가 안 보이는 어디든 달아 나야만 했다.괜히 어 기적 거리며 혹시 오늘은 술에 덜 취해 들어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좀 더 따스한 이불 속에 버티고 있다가 영락없이 아버지에게 잡혀 그날 밤은 꼬박 밤을 새며 혀 꼬부라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반복해서 수도 없이 들어야만 하는 것은 항상 나였다. 내가 태어난 곳은 공주에서 80여 리쯤 떨어진 유구에서도 20여 리를 더 들어가야만 병풍처럼 산으로 삥 둘러 쌓인 산자락 밑의 요골 공소이다.내가 태어날 당시 만 해도 누구나 가난하여 먹고 살기 위해 온 식구가 힘을 합쳐야만 하는 시기였다.가난이야 시대가 그랬으니 응당 한겨울에도 맨발에 찢어진 홑바지를 입고 지냈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누군가 한입 배어먹은 사과 한 조각도 서러 차지 하려고 안달을 했다. 씹던 껌이 있으면 벽에 붙여놓고 한달 이고 두 달이고 다시 씹었다. 가난은 분명 죄이다.나는 그것을 안다.가난한 마을에 살면 온종일 동네가 싸우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그리고 그 싸우는 소리는 응당 가난의 뒤치닥거리 인 셈이다. 막내로 태어나신 아버지는 시골 사람답지 않게 잘 생기시고 훤칠한 키에 항상 양복입고 다니기를 좋아하셨다.그리고 한자에 박식하시고 농사일을 싫어하셨다.왼쪽 다리는 뼈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심하게 앓으셨는데..전혀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아버지가 이장을 하시는 데다가 성격이 쾌활하셔서 유구 읍내에서도 종종 사람들이 찾아 오곤 하였다.놀기를 좋아하셔서 당시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 오신 분은 아버지가 유일한 분이셨다.아버지가 술에 취하지 않은 날에는 너무나 인자하셔서 우리들을 빙 둘러 앉혀놓고 책을 읽어 주시거나 붓 글씨를 가르쳐 주시거나 옛날이야기를 하셨는데..유구 읍내 장에 가지 않는 날에는 글을 쓰시거나 신문을 읽으셨다.그리고 종종 동네 이곳 저곳 마실을 다니시며 장기나 바둑 두시는 것을 무척 좋아 하셨다.주로 고조할아버지때부터 내려오는 우리집 천주교 내력이라던가,요골공소설립 당시 내용, 천주교인들 의 실상들~또는 우리가문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었다.나중에 가짜로 판명 나거나 과장된 면이 많았지만 솔직히 나는 아버지의 그런 내용이 무척 재미있었다.그 중에 한가지만을 소개하자면 이렇다.(아래글은 1986년 대전주보에 실렸었다.)
때는 1865년 을축년 가을 음력 10월이었다. 한양서 삼남으로 가는 대로에는 오가는 인파가 끊일 새 없이 붐빈다. 맑고 맑은 가을 하늘에는 엷은 구름이 간혹 떠 있을 뿐 석양에 아름다운 산천은 단풍이 곱게 물들고 들에는 추수한 집누리와 파릇파릇한 가을 김장과 가을 보리만이 유심히 푸르다. 이 때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땋아내려 갑사댕기를 드리고 가죽신에다 두루마기를 입은 양반 집 도령 하나가 지친 듯 대로를 따라 충청도 직산 땅 ’달터’라는 마을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 마을 앞 정자나무 길가를 점잖은 노인이 정자관을 쓰고 긴 장죽에 뒷짐을 하고서 오고 가는 행인을 살펴 가며 거닐고 있었다. 도령이 노인과 마주치자 노인은 도령에게 "소동은 어디를 가는 길인고?" "예, 소생은 서울에서 충청도 공주 땅 화란이라 하는 곳을 찾아가는 길이옵니다." "화란 땅은 어찌 가는고?" "예, 소생의 가친께서 돌아가셨다 하여 가는 길이옵니다." " 그래 언제 상을 당하셨기에 가는고?" " 예, 지난 달 초이렛날이라 하옵니다." "그래, 이미 초 중 장례를 치렀을 것이고 해가 저무니 내 집에서 오늘 밤 유하고 가면 어떠한고?" "예, 그렇게 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여 노인을 따라 들어 간 집은 40칸에 모두가 기와집이었고 노복들이 있는 당시 벼슬을 사임하여 낙향하고 있는 승지 원덕여 댁이었다. 원승지로 말하면 헌종, 철종 때 정약종, 정약전, 권일신, 철신 등과 같이 영세 입교 하였고 당시 남종삼, 홍봉주 등과 동교우 동직이요, 당시에 세도가인 포도 대장 이경하 하고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계해년 박해 때에 벼슬을 사임하고 직산 월경으로 낙향하여 살고 있으나 슬하에 과년한 따님이 있어 시국은 어수선하여 미구에 난리가 난다느니 천주교 박해가 있을 것이라느니 하는 풍문은 날이 갈수록 더 퍼져가고 과년한 따님을 여윌만한 신랑감은 외교인 집에서는 청혼이 많이 들어오나 교우들 집은 서로 상종을 끊은지 여러 해라 나서지를 안하고 원승지로서는 은근히 몸이 다는 때였다. 이런 즈음에 화란 땅을 찾아가는 도령 총각을 자기 집 안사랑에 유숙시키고서 자초지종을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씨는 무슨 성이며 관향과 나이 등을 세세히 물으니, "저희 성씨는 갖출 구자 구가요, 본은 능성이요, 파는 도원수공파인데, 도원수공이 16대 고조요, 저의 할아버지가 장단부사를 지내셔서 택호를 장단택이라 하옵니다. 제가 6살 때 모친을 여의고 나니 저희 아버지께서 가까운 일가 집 서울 구완석 집에다 맡기시고 아버지는 팔도를 풍류객으로 유람하시다가 지난 달 돌아가셨다는 파발이 왔다면서 저보고 고향으로 내려가라고 하시며 서찰과 노자를 주시기에 일행 사오십리 씩 걸어서 겨우 여기 당도하였습니다." 하는지라 원승지는 그럼 그 서찰을 보자꾸나 하여 그 서찰을 보니 가승과 장단공의 손자 然자 明자이니 고향에 가거든 잘 보살펴 주라는 편지였다. 원승지가 하는 말이 "이걸 가지고 고향에 간들 집안 종중에서 살려 주지는 않을 것이니 내 집에서 있게. 내 집에서 있으면 좋은 규수와 장가 보내서 집까지 주어서 살게 해 줄 것이니." 하는 것이었다. 생각하여 보니 고향 떠난 지 12년 , 서울 일가 집에서 틈틈이 공부 좀 했으나 고자 부모 형제 없으니 어디 간들 큰 대우를 받지 못할 바엔 이 집에서 살려 준다하니 잘 되었다하고 그 집에서 살기로 정하였다. 그런 후에는 원승지와 한 방에서 기거하면서 밤에는 천주교회 진리와 교리경문을 배웠다. 겨울 삼동 동안 경문을 배우니 조과 만과에서 부터 아타나시오 신경, 일비선종경, 오삼경, 삼십삼성경 등을 모두 배워 외우는 것이었다.
그 다음 해 병인년 이월에 내포 교우 이회장을 모셔다 따님 필로메나와 혼배를 하여 세속 혼인 예식을 함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신혼 한 달도 안되어서 서울에서 포도대장 이경하가 원승지에게 군란이 났으니 피하라, 당신을 잡으러 곧 간다 하는 밀서를 보내오니 원승지는 그 날 밤으로 노비들을 흩어 보내고 가족들만이 말과 소에다 중요한 가산만 싣고서 청양 북화라는 곳으로 피신하여 겨우 5개월 살으니 그 해 7월에 또 다시 밀서가 오기를 승지 영감이 청양 모처에 있다는 고발이 왔으니 곧 피하라, 우리가 잡으러 간다 한지라. 할 수 없이 가족이 흩어져야 한다 하며 원승지는 전라도 익산 땅으로, 큰아들은 덕산 땅으로, 작은아들은 은산 땅으로 흩어져 가기로 하고, 사위인 구 말딩 신혼 부부는 공주 화란 땅 고향으로 가 있으라 하며 구 말딩은 나귀를 세내어 태우고 원필로메나는 가마를 태워서 보냈다. 고향 땅에 와서 서울 구완석 대장 집에서 써 준 서찰을 종중에게 보이니 장단집이 손이 끊어져 양자를 하였는데 원손이 왔으니 양자는 파양하고 원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며 신주와 제기, 족보 교지 등을 찾아 주며 얼마간의 종중 땅을 부치게 하였다. 평생을 일이라고는 안 해 본 터라 모를 어떻게 심으며 밥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르는 젊은 부부는 그 때부터 고생이 막심하여 또 제사 때가 되면 교회에서는 제사를 금하는 고로 원필로메나는 꾀병으로 앓는지라, 집안에서는 흉을 보고 제사도 못 지내는 사람이 있느냐면서 와서 가르쳐 주나 하기 싫은 제사를 억지로 지내니 우스운 노릇이었다. 마지막에는 장단집이 망할 징조니 제사니, 신주니 상관도 말자고 해서 종중과 상종도 안했으며, 그런 중에도 벽에다 숯검정으로 + 자를 그려 놓은 그 위에 종이를 붙혀 놓고 밤중에는 종이를 열고서 신공을 궐하지 않고 성교를 봉행하였다 한다. 이렇게 8년을 살으니 원승지가 찾아 오셔서 이제는 나라에서 교회를 금하지 않으니 여기서 살지 말고 교우촌으로 이사를 하라 했다. 원승지는 그동안 무수한 고생을 했으나 가족들은 다 무사하여 고향에 와보니 가옥전답 등은 다 적몰하여 없어졌고, 노비들과 동네 사람들이 전곡을 거두어서 집을 지어 주고 생계를 도와주어 연명한다며 교우들이 사는 공주 소랭이로 이사를 가라 하는지라 할 수없이 소랭이로 교우를 찾아 이사를 할제, 제기와 신주를 구럭에 담아 가지고 오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개울물에다 띄워 보냈다. 그런데 어떻게 동네 사람들 눈에 띄어서 그 말이 퍼지자 종중 어른들이 찾아와서 천주학하는 놈은 신주도 모르느냐? 네가 조상을 모르는 개불상놈이니 일가도 아니다. 제사도 그래서 안 지냈구나 하며 노발대발하고 가더라는 것이다. 슬하에는 아들이 형제가 있어 네 식구가 교우들이 사는 소랭이로 찾아 왔으나 먹고 살 방도가 없는지라 산전을 일구어 조를 심으면 생계가 된다고 하여 산불을 놓았는데 때는 늦은 봄이라 나무가 타다가 산불이 붙어서 산을 수백 정보 태우고 묘도 많이 태우니 동네 사람들이며 묘지 임 자들이 와서 노발대발하니 거기서도 살을 염치가 없는지라 할 수 없이 문다라니라는 산골로(정안면 선성리) 다시 이사하여 목신(나무로 만든 신) 만드는 일을 도와주며 생계를 이어 나가니 오죽하겠는가? 그 중에도 자녀는 가르쳐야 한다며 큰아들(구낙서) 요셉을 서당에 보내니 아침에 조금 요기하고 저녁에 돌아오면 나물 죽을 조금씩 먹으면서 서당에 가면 다른 애들은 점심을 싸 가지고 와서 먹으나 요셉은 점심 때가 되면 개천에 나가 찬물을 실컷 마시고 세수하고 점심이 끝나야 서당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 원 필로메나가 어찌나 엄하신지 경문을 어디까지 배워라 하고 정해주면 그 날 거기까지 반드시 외워야지 만약에 못 외우면 아침을 굶기니 밤에 자다가도 잠만 깨면 신공을 외우고 식전에 일찍 일어나서 외워 가지고 어머니 밥하는데 가서 합격되어야 아침을 얻어먹었다 한다. 그런고로 돌아가실 때까지도 조과 만과 매괴는 물론 일비선종경, 오삼경, 삼십삼경까지도 매일 궐하지 않고 염하시고 만약에 바빠서 못하게 되면 길을 가면서도 큰 소리로 신공을 하시며 다니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 원 필로메나가 그렇게 가난한 중에도 아들들을 엄히 가르치니 어머니 명령이라면 불로 들어가라면 들어갔지 어기지를 못하였다 한다. 그런 중에 또 교우를 찾아서 용수골(문검리 부락) 이라 하는 곳으로 이사를 하니 슬하에 아들이 삼형제인데 벌이는 없고 봄부터 여름 내내 나물만 캐다 먹고 살아가는데 집도 없어서 남의 집 헛청에다 방을 하나 만들고서 거기서 살았다. 그 해 겨울에 집주인이 식전 새벽에 마당에다 벳불( 목화로 실을 만들어서 옷감을 만드는데 풀을 칠해서 말리는 불)을 놓았는데 그 불이 집으로 번져 새벽잠 을 자는 데 불타는 소리가 나서 깨어보니 벌써 온 집이 다타는지라 몸만 겨우 빠져 나오고 가산 집물은 다 타버리니 그 중에도 천주교 책, 족보 교지 등이 다타니 말딩은 양반 타는 것이 제일 아깝다 하시니까 원 필로메나는 천주님이 다 타는데 양반이 아까워! 하시더라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엄동에 화재를 만나니 어떻게 살까?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흙담을 쌓고 나무를 베다가 집을 세워 주었다. 허나 말이 집이지 눈비나 겨우 피하는 움막이었다 한다. 그 중 원 필로메나는 태중인데 먹지 못해 부황이 나서 전 몸이 뚱뚱 부었다하니 어찌 측은하지 않으리오. 봄에 산나물을 캐러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며 두어 발짝 가다가 아이고 아이고 하며 나물을 뜯어다가 연명하였다 하니 오죽하였겠는가. 그렇게 앓는 몸으로 산고를 치르니 어떠하였는지. 그해 음력 7월에 세상을 뜨니 나이 삼십 육세요 아들 삼형제를 세상에 두고 숨을 거두며 이 아이들을 열심한 교우로 키워서 천당에서 꼭 만나게 하여 주오. 하고 임종하였다 한다. 그 후 말딩은 어린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갖은 고생을 하며 혼자 살아도 예모를 지키며 천주교를 봉행하며 육십이 넘도록 목신을 만드는데 토요일 밤에는 목신 만드는 기구를 다 치우고 주일날은 옷을 갈아입고서 종일 성경이나 경서를 보지 다른 일은 아무리 바빠도 안 하였다 한다. 한 번은 병이 나서 어찌나 호되게 앓는지 자손들이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하루밤 사이에 병이 완쾌되어서 자손들이 이상히 여기고서 어떤 연고냐고 물으니, 밤에 하늘 높은 곳에서 한 줄기 광채가 비치며 점점 내려오더니 온 몸에 반짝이는 광채를 발하며 성모 마리아가 내려 오셔서, "말딩아, 말딩아, 너는 세상에서 고생도 많이 하고 할 일도 다 하였으니 이제부터는 목신 만드는 일을 그만 두고 삼년 동안 편안히 살다가 내게 돌아 오라." 하시고는 가셨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는 목신 만드는 일을 일체 안하다가 삼년 후 세상을 뜨셨다 한다. 이는 기이한 이야기다. 그 후 아들 삼형제가 이런 말들을 여러 번 하시며 "우리 어머니는 너무나 불쌍하게 살다가 가셨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삼형제가 장성 후 자손들을 많이 두시어 삼형제 손 아들이 9명, 딸이 6명인데, 그 아들 아홉 명의 손이 아들이 24명, 딸들은 더 많으며 그 손들이 무수히 퍼져 나가니 사제가 4명, 수녀가 3명, 수사 2명, 동정녀 2명 등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자녀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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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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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483 | 성서학교 테잎안내 | 2004-04-01 | 김명희 |
| 64482 | 첫 첨례6 첫 금요일 | 2004-04-01 | 김근식 |
| 64479 | 은총이 강물처럼 흘렸다(2) | 2004-04-01 | 구본중 |
| 64478 | 니가 수사냐? | 2004-04-01 | 김평안 |
| 64477 | 전자개표기=도깨비방망이 | 2004-04-01 | 이은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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