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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민노당의 전직 수사 출신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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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일수 [paulk] 쪽지 캡슐

2004-04-18 ㅣ No.65751

민노당 비례대표 의원 중 특이한? 경력을 지닌 분이 있습니다

전직 수사 출신 국회의원. 수도원에 들어가고 나오게 된 계기가 특이합니다^^

농민이 미워져서 수도원 들어가고 농민을 사랑해서 수도원을 나오고...???!!!

39세때에 14년 연하의 아내를 만난 계기등도 재미있습니다.

 

프레시안이라는 (자칭) 인터넷 대안언론이라는 곳에서 퍼왔습니다.투표 끝났으니 문제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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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6번. 강기갑(52세) 전농 부의장

 

  2003년 10월 31일. 당시 김대중대통령이 경남도청을 순시하고 있었고, 이 자리에는 도민 2백60명이 초청되어 오찬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이런 자리는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밥을 다 먹은 털보 농민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돌발발언을 하려하자,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그를 끌어내고 만다. 도민 간담회에서 민생의 직언을 제지당한 털보 농민. 그는 끌려가면서 사태의 부당성을 항의한다. 바로 이 털보 농민이 강기갑이다.

 

  경남 사천 출신인 강기갑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71년부터 현재까지 줄곧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얼마 뒤 허리를 다쳐 2년 정도 쉬는데 집에서 농사는 돈이 안되니 다른 일을 주선해 주기도 했는데, 이 때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농사를 짓기로 한 것을 살아오면서 제일 잘 한 일로 꼽는 강기갑이다. 역시 그는 천상 농사꾼이며, 농민이다.

 

  76년부터 카톨릭 농민회에 가입한 그는 이 때부터 농사일과 농민운동을 병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농민운동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는데, 이 때 많은 사람들이 농민운동을 그만두고 떠난다. 실망과 좌절에 빠진 강기갑은 이 때 "농민들이 너무 미워지는데 그런 마음으로는 도저히 운동을 할 수 없어서" 수도원에 수사로 들어가 버린다. 그렇게 들어간 수도원에서 강기갑은 87년 마침내 농민에 대한 감정의 앙금을 지우고 다시 삶의 터전이 농촌으로 돌아온다.

 

  91년 수입개방이 결정되자 많은 농민들이 상경투쟁을 벌였는데 불과 몇 분도 안돼 끌려간 경찰서 유치장에서 그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유치장에서 수인사를 하던 도중 서른 중반을 넘긴 많은 청년(?)농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기갑은 그 길로 바로 ’농촌총각 결혼대책위’를 만들어 자신이 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다. 이게 대박이었다. 많은 농민들이 그의 결혼대책위를 찾아 왔고 또 그만큼 많은 쌍(130여 쌍)이 맺어졌다. 39살의 노총각이었던 강기갑 역시 이 때 평생의 반려자 박영옥을 만나 32번째로 결혼식을 올린다. 나이 차이는 무려 14살.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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