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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와 면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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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서 [icando] 쪽지 캡슐

2004-04-27 ㅣ No.66459

어느덧 실업자 또는 백수가 된지 며칠있으면 사개월이 됩니다.

조금 모아논 돈과 실업수당으로 그럭저럭 보내왔습니다.(웬지 우울모드로 가는듯)

여기저기 직장을 알아보기도 하고 전부터 알고있는 사람들과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지만 딱히 수가 나는 건 아닙니다. (아직 배가 덜 고픈듯)

나름대로 생활의 습관을 잊지않기 위해 아침이면 모처로 출근하여 책을 보다가

시간이 되면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집에서 쉽니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전과 같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많이 늦는편이지요.)

 

당연히 사람들과의 만남이 없으니 용모에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답니다.

수염이 많이 자라는 편이 아닌지라 이삼일이 지나도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남자인지라 삼일이 넘어가면 제법 길어있답니다.

뭐... 볼만하게 자란다면 기르는것도 고려해보겠지만 전혀 그렇치않아

삼일이 넘어가게되면 꼭 밀어야합니다...

 

제 면도기... 누군가에게서 선물받은지 칠년이 넘어가는 전기면도기입니다.

이젠 힘이 다한듯 전기를 꼽아야만 동작하는 물건이지요.

힘도 많이 약해지고... 가끔 청소를 하지만 처음처럼 깔끔해보이지는 않는답니다.

 

어제 아침...그러니까 월요일 아침이 되겠군요.

목요일에 어디를 다녀와서 금요일부터 면도를 하지않고 집에서 지냈습니다.

아침에 나가려고 보니 제법 많이 자랐더군요.

낡은 면도기를 집어들어 전원을 꼽고 면도를 시작했습니다.

남자들이라면 대개 느끼시겠지만 아침면도는 참 기분을 상쾌하게 하지요.

윙~~~ 하면 돌아가는 면도기와 카카카카~~~ 하며 짤려나가는 소리를 듣고있노라면.

그리고 면도가 다된 턱을 손으로 쓰으윽 쓸어보는 기분...해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기분좋은 마무리를 기대하며 면도를 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

 

면도기가 끼리릭 소리를 내더니 멈추는겁니다.

멈추기만 하면 다행인데 깍던 털들이 면도기에 끼어 빠지지 않는 겁니다.

처음에는 면도기를 턱에서 떼보려고 했는데 아프더군요. 털이 끼어서...

 

바로 욕실문을 닫았습니다.

혹시나 식구들중 누가 볼까봐...

 

그리고 차분히 거울을 보며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잠시후 고민을 포기했습니다...

 

거울에 비추어지는 제 모습이 너무나 우스웠기 때문이었지요.

면도기를 턱에 매달고 있는게 한편의 엽기 사진이였습니다.

 

전원을 뽑고 스위치를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여 보고

다시 전원을 꼽아 스위치를 움직이고....

그러기를 몇번했더니 다행히도 다시 작동하여 나머지 작업을 마쳤습니다.

 

당장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로 하나 사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참았습니다. 면도기가 불쌍해서...

 

면도기가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적당히 경력도 올랐고 주인의 턱수염이 어떻게 자라는지 어떤 면도기보다 더 잘 알고있고

어떻게 해줘야 구석구석 잘 깍기는 가도 알고 있는데

 

오래되어 디자인이 구식이고 신형보다 기능도 부족하고

나이가 먹어 힘도 딸리는데 주인이 버리면 어떻게하나....

이런 고민을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당분간은 오래된 면도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대신 청소를 자주 해줘야겠지요. 그리고 햇볕이 나면 일광소독도 한번 해주고...

 

그리곤 아주 힘이 다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제 케이스에 넣어 옷장위 구석에 올려놔야지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 아들이 자라서 취직을 하게되면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빠가 젊어서 쓰던 면도기라고...

그냥 이렇게만 말해줘야지요.

 

날씨가 봄날씨같지 않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뱀다리 1. 굿뉴스 자유 게시판이 저에게 제일 편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신변잡기를

          올리니 맘에 안맞는 분이 계시더라도 편하게 봐주십시요. 감사합니다.

 

뱀다리 2. 전에 쓰던 군대에서 성당다니던 이야기의 마무리를 하고는 싶지만 웬지

          진도가 안나가네요. 언젠가는 모두 다 마무리 하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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