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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사슬과 생명수호(적그리스도인:참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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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정 [verdiana1] 쪽지 캡슐

2004-05-09 ㅣ No.66830

먹이사슬과 생명수호(적그리스도인:참그리스도인)

 

 

동물들의 세계와 인류를 보면 작은 먹이사슬을 통해 살아 있는 무엇인가를 잡아먹으며 생존을 한다.

 

그것은 바다이든 육지이든 공중의 하늘이든 먹이사슬을 통해 지구 안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것을 생명이라 할 때,

우리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식물과 더불어 곤충과 동물까지도 우린 생명이라 규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가 생명을 수호하게 되면 이 동식물까지 수호를 해야하는 입장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아 있는 인간과 임산부 안의 태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물과 식물까지도 우리가 보호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린 이 자급자족하는 먹이사슬의 구조라는 자연의 질서, 우리에게 주어진 질서에 대해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까?

 

또한 사람들이 원하는 질서란 공존이다.

어느 한 사람도 해침이 없이 동등하게 함께 사는 것인 것이다.

 

그런데 우린 인간사회에서도 먹이사슬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경제니 자본이니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하고 어떤 체제를 가지고 있던 우린 세계가 강한 것에 먹히는 구조가 있다는 것을 변명할 수 없다.

 

전쟁이란 무력을 통해 힘없는 자가 당하는 구조도 우리가 늘상 봐오는 사건중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가 최대한 살아 있는 것을 온전히 지켜야 하는 이 공존에 대한 갈망이 유감스럽게도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 것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이의를 제기하게 되는 이 인간의 논리!!!

 

동물의 세계에서 아름다운 사슴이 잽싼 표범에게 잡아 뜯기어질 때 비명이 절로 나오고 슬픈 현실을 애도하지만, 우린 사슴의 뿔을 잘라 우리의 약으로 쓰는 것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상어나 고래들에 물고기가 먹히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우린 그 물고기를 불쌍하게 여기건 여기지 않건 우리의 식탁에 올리는 것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던 시절로 부터 그것들을 끔직한 일로 받아들이고 인간이 인간을 보호하게 된 오늘날에도 우린 무기를 통해 서로를 살상하는 것을 멈추진 않고 있다.

 

우리가 아는 자연의 질서안에 존재하는 같은 종류 안에서도 싸움이 존재하고 살상이 존재하는 이 지구상의 먹이사슬이 인간안에서도 존재하는데, 우린 최대한 그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 생명을 부여하여 그것을 보호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그것이 끝내 지켜질 수는 없는 것일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추적하여 앙갚음하고 마는 이 구조는 결코 먹이사슬과는 또다른 무엇이 있는 것 처럼 여겨진다.

 

생명에 부여된 본능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는 반응하는 감정과도 같은 그 본능은 우리에게 먹이사슬과 같은 자연의 이치와 같은 지음받은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그런데 신의 아들은 오셔서 우리에게 업그레이드 된 대안을 제시한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남에게 대접 받고 싶은대로 남에게 대접하여라.

자신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 글들은 강한자가 약한자를 먹어 치우는 먹이사슬과는 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바로 약한 사람에 대해서도, 또한 앙갚음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도, 또한 자신과 무관한 사람에 대해서까지도 사랑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함으로써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 사랑은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 우리 자신이 자급자족을 하면서도 자연속에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에게 신이 부여하신 공존의 질서를 확립하고 지켜 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새하늘 새땅이라 일컫는 새로운 축복된 세상을 열 수 있는 것이 아닐지......

 

새하늘 새땅을 인간이 열 수 없다면 신이 직접 열어 주시겠지만, 신의 뜻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들을 통해 그 축복된 선물을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성서에서 일컫는 십이만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간절한 공존에 대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인간 특유의 어리석음은 (신께서 동물과 인간의 먹이사슬이란 본능을 넘어선 업그레이드 된 정신적인 생명을 우리의 코에 불어 넣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참 깨달음을 결코 깨닫지 못하여 새하늘 새땅을 결코 얻어내지 못하는 대열에 속할 것인데, 이것이 바로 축복과 축복받지 못한자의 차이가 될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가 염원하고 바라는 공존, 그것은 자연의 질서를 무시하지 않지만, 그 질서보다 우월한 정신적인 생명을 통해 이어받을 수 있는 새세상인 것이다.

 

참 생명이란 숨을 불어 넣어주신 아담이란 첫 인간 바로 인류후반기의 예수라는 첫 인간에 의해 업그레이드 된 사랑의 실체가 드러남으로써 인류가 사랑이란 숨(호흡)을 얻어 내는 것을 말 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생명은 살아 있는 모든것의 조화를 구축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들에 사랑이란 참 생명을 불어 넣음으로써 진정한 호흡을 시작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생명의 수호운동의 참 모습일 것이다.

 

누군가의 죄의식을 일깨워 죄책감에 짓눌려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 사랑이란 생명을 전달하여 줌으로써 비로소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새로운 세상에 초대하는 것이 바로 참 생명을 수호하는 것 아닐지......

 

참 그리스도인은 죄를 통해 새생명으로 인도하지만,

적 그리스도인은 죄를 통해 마지막 남은 양심에 걸려 죽게 만든다.

 

예수라는 분이 죄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살려 내셨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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