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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떠난 이들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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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떠난 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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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세상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하며 산다. 천주교 신자로서 사후세계의 하나인 ’연옥’의 존재를 믿고, 연옥 영혼들을 위한 미사와 기도가 그 영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늘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18년 전에 작고하신 선친을 위한 위령미사가 단연 많다. 또 내 조상들이며 이 세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인연을 맺은 분들의 영혼을 챙겨 드리는 일이 우선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 관계도 없거나 생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분들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일도 종종 있다.
특히 설날과 추석날 ’합동위령미사’를 봉헌할 때는 꽤 많은 이들의 이름을 ’미사예물봉투’에 적는다. 명절에는 매번 세 장씩의 미사예물봉투를 준비하는데, 우리 태안본당의 경우 예물봉투에 연령(煉靈)의 이름을 적을 수 있는 줄이 다섯 줄이나 된다. 봉투 세 장, 도합 열다섯 줄에 이런저런 분들의 이름을 적되, 가급적 이 세상에서 위령미사를 지내 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영혼들을 챙기곤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조상들을 위하여’라는 말을 적는다. 내 조상들은 외할머니만을 빼고는 한결같이 하느님을 몰랐거나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 있지 않았던 분들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내 조상들의 수효를 헤아리자면 수억만 명에 이를 테지만, 또 그분들 중에는 나름대로 경천사상(敬天思想)을 지니고 항시 하늘을 우러르며 사셨던 분들도 있을 테지만, 일단은 거의 모두 ’교회 밖’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말해 내 조상들이 하느님을 모르고 믿지 않고 살았다고 해서 모조리 지옥에 갔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들 중에는 불교 등의 종교를 신봉하고 일생 동안 착하게 살며 옳은 일을 많이 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착하고 의롭게 살았는데도 하느님을 모르고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두 지옥에 갔으리라고 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느님을 모르고 믿지 않은 것은 그들 탓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스도교가 미처 전파되지 않은 지역에서 사셨던 분들에게는 ’믿지 않은 것’에 대한 아무 잘못이 없다.
하느님을 몰라서 믿지 않았건 알고도 믿지 않았건 간에 모든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절대 악인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한결같이 구원의 가능성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났고, 지금도 사후세계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모르고 사셨던 모든 조상들의 영혼을 위해 내가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그 수많은 조상들의 영혼이 오늘의 후손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들이 머물고 있는 사후세계, 영혼을 정화하는 곳인 연옥에서 지상 교회의 미사와 기도의 덕을 입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무척 즐거워지기도 한다.
그들은 일단 ’교회 밖’의 사람들이었지만, 내가 봉헌하는 지상 교회의 미사와 기도로 말미암아 지상 교회와 연결되어 있는 ’정화 교회(연옥)’에서 이미 ’교회 안’의 영혼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연옥의 존재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지상 교회의 신자들이 정화교회의 영혼들(더욱이 하느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과 지상에서 대신 기도해주는 이들이 없는 외로운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2)
지난 18일(화) 저녁에도 두 분의 영혼을 위해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한 분은 지난 11일 새벽에 세상을 떠난 구상 시인이시고, 또 한 분은 지난해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실험실 폭발사고로 숨진 조정훈 연구원이다.
시인 구상 님은 ’세레자 요한’이라는 영세명을 갖고 평생 동안 천주교 신앙 안에서 살다 가신 분이다. 그분의 예술세계에는 튼실한 ’가톨릭사상’이 기조를 이루고 있다. 천주교 신자이고 유명인이었던 만큼 그분의 영혼은 지상 교회의 미사와 기도의 은덕을 자연적으로 많이 입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분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한 것은,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문상을 하지 못한 죄 때문이다. 문상을 하지 못하는 대신 미사를 봉헌하자, 위령미사 봉헌 한 번이 수백 번의 문상보다 나으리라는 생각도 한 탓이었다. 좀더 일찍 미사를 봉헌하지 못한 것은 지난 한 주일 동안 우리 성당 신부님이 ’사제 피정’ 관계로 성당을 비우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카이스트 실험실 폭발사고로 숨진 고 조정훈 연구원은 내 소설 동지인 조동길 공주대 교수의 아들이다. 카이스트 실험실 폭발사고 소식은 일찍 들었지만 숨진 연구원이 내 친구 조 교수의 아들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장례가 끝난 다음에서야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망연자실했는지….
본의 아니게 문상을 하지 못한 죄를 안고 살다가 고인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했다. 별도 미사 외로 지난해 추석과 올 설날의 합동위령미사에도 예물봉투에 그의 이름을 적었다. 앞으로 매번 그렇게 할 생각이다.
이번에도 그를 위해 별도 위령미사를 봉헌한 것은, 지난 13일이 그의 1주기였기 때문이다. 1주기 날에 미사를 봉헌하고 싶었지만 역시 우리 성당 신부님의 출타 관계로 그러지 못하고 어제 저녁미사를 택한 것이다.
시인 구상 님과 달리 조정훈 연구원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아버지 조동길 교수는 오랜 내력의 불교 신자다. 아들의 장례를 불교 법식대로 치르고, 49제며 100일 후의 천도제까지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조동길 교수는 내가 자기 아들의 영혼을 위해 성당에서 위령미사를 봉헌한 사실을 알고 무척 고마워했다. 나는 불교 신자였던 조정훈 연구원의 영혼을 위해 천주교 위령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것이 무척 다행스럽고 기쁘다. 그것 역시 하느님의 배려요, 이 세상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3)
내가 최초로 남을 위해 미사를 봉헌해 본 때는 1974년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창 시절의 청년이었던 나는 왕성한 전교 열의를 발휘하여 한꺼번에 네 명의 후배를 입교시킬 수가 있었고, 동시에 네 명의 대자들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동갑내기로 내 2년 후배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중 한 명이 폐암이라는 중병을 얻고 말았다. 신혼의 단꿈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고, 젖먹이 딸을 둔 처지였는데….
그 대자가 세상을 뜬 후 몇 달쯤 지났을 때였다. 밤에 잠을 자는데 누가 우리 집 문 앞에서 "대부님!"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대문 바로 옆방에서 자고 있던 나는 너무도 분명한 "대부님!"소리에 잠이 깨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꿈을 꾸었음을 직감했다. 내 꿈속에 그 죽은 대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직감했고, 꿈에서 본 그 대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대자가 우리 집 앞에 와서 문을 두드리며 나를 부르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고, 또 그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방을 나갔다. 굳게 닫혀 있는 대문을 열고 잠시 문 밖을 살펴본 다음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아침밥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께 꿈 얘기를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상기된 표정으로, "그 사람이 연미사를 드려달라고, 대부한테 그 청을 하려고 찾아온 겨."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교과서 공급업을 겸하는 읍내의 한 서점에서 일을 해주고 있었는데, 또 하루 트럭을 타고 오지 시골학교들을 돌며 교과서 건네주는 일을 한 다음 저녁도 먹지 못하고 허겁지겁 성당으로 달려갔다.
그때는 지금처럼 보기 좋게 인쇄된 미사예물봉투도 없던 시절이었다. 신부님께서 제의를 입고 계시는 제의실로 들어가서 우선 연미사 봉헌 뜻을 말씀드리고(미사 시작을 조금 늦추어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사무실로 달려가 봉투 한 장을 얻어서 급히 그 대자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제대 위에 예물을 올려놓았다. 그때 내가 봉헌한 미사예물이 300원이었나, 500원이었나…그 기억은 분명치 않다.
그 후 그 대자를 위해서 종종 연미사를 봉헌했고,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저런 사연으로 인해 겨레붙이나 인연붙이들은 물론이고, 겨레붙이나 인연붙이도 아닌 얼굴조차 모르는 이들의 영혼을 위해 연미사를 봉헌하는 일도 종종 있게 되었다.
(4)
경기도 안양에서 사시는 내 누님은 본당 신자 중에 돌아가시는 이가 생기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그 영혼을 위해 연미사 한 번씩은 꼭꼭 봉헌을 한다고 한다. 매번 미사예물을 5만원씩 넣고….
나는 축복미사든 위령미사든 미사예물을 누님처럼 5만원씩은 넣지 못하고 3만원씩 넣는다. 요즘은 애경사 부조금을 우리 고장에서는 대개 3만원씩 하기에 거기에 맞추는 셈이다. 미사예물도 애경사 부조금 정도 넣으면 내 형편으로는 많지도 적지도 않으리라는 생각이고….
천주교의 미사예물은 그리스도교 초기 신자들이 한데 모여 예절을 지낼 때 모든 참례자가 함께 나눌 빵과 포도주를 신자들이 직접 가지고 온 데서 유래한다. 시대가 바뀌고 조건이 변함에 따라 그 실물이 금전으로 대체된 셈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자들이 미사예물을 드리고 미사를 청하는 것은, 미사를 봉헌하고자 하는 이의 정성과 미사 지향을 확실히 하고자 하는 뜻이다. 그렇다고 모든 축복미사나 위령미사에 반드시 미사예물이 전제되는 것은 아니다.
천주교의 미사예물은 교구교회의 경우 정확히 교구와 본당과 미사를 집전한 사제에게로 3분의 1씩 나누어진다. 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생활비와 성무활동비(독신이기 때문에 대체로 적은 편이다)를 지급 받는 사제들에게는 이 삼등분 되는 미사예물이 부수입인 셈이다.
하느님께 봉헌된 것이기 때문에 대개의 사제들은 이 미사예물을 알뜰히 모아서 이런저런 뜻 있는 일에 활용한다. 가정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육신적인 일을 위해 쓰는 일은 거의 없다.
결국 죽은 이를 위한 위령미사든 산 이를 위한 축복미사든 내가 정성껏 미사를 봉헌하는 일은 일거양득이 된다. 남의 영혼이나 삶을 영적으로 돕는 일이 되면서 신부님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선을 하는 일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그 일석이조를 늘 생각한다. *
(040520)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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