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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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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철 [hl1ye] 쪽지 캡슐

2004-05-22 ㅣ No.67222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십자가를 안테나로!

  아마 지금도 저희 7남매에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저희 작은 외삼촌이 뽑힐거라고 생각됩니다. 어릴 때 외삼촌을 얼마나 좋아하고 따랐던지 군에서 외삼촌이 휴가를 나오시면 외삼촌을 따라다니려고 외삼촌이 화장실에 가면 외삼촌을 놓칠까봐 저희도 따라 들어갔으니깐요. 그리고 나중에 외삼촌이 장가를 갔을 때는 눈치(?)도 없이 그 신혼집에 7명이 하루씩 교대로 가서 자고 밥을 얻어먹고 돌아오기도 했지요. 그런데 아직도 저희들이 모이면 이야기하곤 하는 미스테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외삼촌이 총각시절 화장실에서 막 나오시면 외숙모랑 데이트를 가는데 저희가 따라가려고 문앞에서 7명이 지키고 있었는데도 깜쪽같이 외삼촌이 사라지신 것입니다. 화장실의 작은 환기구로 빠져나가셨나? 아니면 냄새나는(푸세식이라 ^^*) 아래로 내려가셨나?  외삼촌을 놓친 저희들은 멍하게 하늘만 쳐다보다가 "외삼촌, 외삼촌..."하며 대성통곡을 한 일입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저희들의 협박에 못이긴 외삼촌이 마침내 그 승천(?) 비결을 공개하셨는데 그것은 저희가 보초교대를 하는 틈을 이용하여 영광의 탈출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 승천축일입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떠난 영광의 탈출 기념일일까요? 아니면 외삼촌을 따라다닌 저희들처럼 당신을 졸졸 따라 다니는 제자들을 피해 멀리 하늘로 올라가신 날일까요? 물론 둘다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에녹, 엘리야처럼 승천하시면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더 이익이 되는 위로자, 협조자이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의 실현을 위해서 사랑하기에 떠나신 날입니다. (창세 5, 24 : 2열왕 2, 11; 요한 14, 2; 20,17; 사도 1,9-11; 에페 1, 20-21; 4,8-10 참조)  따라서 더이상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하늘만  멍하게 쳐다보고 있거나 저희들처럼 외삼촌이 떠났다고 통곡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잘 준비하는 지혜를 가져야겠습니다. 참고로 가톨릭신문에 예수님 승천에 관한 좋은 글이 있어 퍼드립니다. 가브리엘통신

 

 

                    <승천은 새로운 강림>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사실은 크리스천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확신과 희망을 안겨 주게 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리스도와 같은 승천의 영광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승천은 이 다음 우리에게 돌아올 영광의 예표요 보증인 것입니다.

 

  성서에 보면, "사람의 아들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니 7,13). 유대인들은 모두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성서학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내용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지는 않습 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하늘에 떠 있는 어떤 장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의 승천을 말한 작가는 복음사가 루가뿐입니다. 루가는 사도행전과 루가복음 두 권의 책을 썼는데 루가복음은 예수님의 승천으로 끝을 맺고 있으며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 사실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루가는 예수님의 승천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 영광의 예수님은 먼 나라에 계셔서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이 이별된 것이 아니라 새롭고도 더 완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은 이별의 슬픈 장면이 아니며 새롭게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만나는 기쁨과 은혜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승천’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승천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당신의 모습을 감추신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체험할 수 없는 먼 거리로 가신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오셔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승천은 떠나심과 동시에 새롭게 찾아 주신 사건입니다.

 

   얼마 전에 자녀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떤 자매님이 찾아와서는 이야기 끝에 주님은 자기를 버리셨다고 했습니다. 너무도 고생이 많았고 너무도 서운함이 컸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오해입니다. 주님은 우리 생애의 어느 한 시기도 떠나신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해도 그분은 우리를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지옥의 문턱을 넘어서기까지는 하느님은 항상 우리에게 희망을 갖고 계시며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힘들거나 어려운 때, 그리고 슬프거나 외로울 때 주님의 현존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높은 산을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승천 대축일에 산이나 들에서 야외 미사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념이지 산이나 들만이 주님을 만나는 장소는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선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으면 그분은 또 보여 주시고 우리가 그분을 부르면 또 그 분이 우리에게 대답을 주십니다. 어떤 장소와 시간도 구애받지 않으시고 원하는 시간마다 원하는 방법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어떤 형제가 예수님을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했지만 늙어 죽을 때까지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도 않았고 또 사랑하시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을 때 신부님께 그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그러셨습니다.

 

  "평생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속에 사셨으면서도 하느님을 못 보았다고 하십니까? 자, 여기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하며 성체를 영해 주시는데 형제는 그때 비로소 주님의 현존을 체험했다면서 지나온 생에 대한 감사와 회개를 눈물로써 고백했다고 했습니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아버지 좀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하셨습니다. 우리도 사실 살아 계신 예수님을 보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을 꿈속에서라도,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예수님의 승천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의 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존재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하느님만의 특별한 존재 방법으로 우리 앞에 계실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뵙지 못하는 것은 다만, 우리의 마음과 신앙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승천의 믿음을 활짝 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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