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 예수
벌써 한주일을 마감할 날이 되었네요.
아마 지금쯤이면 고 김 선일씨의 유해가 고향인 부산으로 가기위해 인천공항에 도착이 되었겠지요.
이번 한주는 흐린 날씨만큼이나 우리 한국민들에게는 슬픈 주였던 것같습니다.
오늘 고 김 선일씨 관련기사를 예전 직장의 후배에게 메일로 받았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해주더군요. 하여서,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렇게 옮겨봅니다.
남은 시간 정리 잘하시고 다음주에는 활기차게 시작했으면 좋겠네요.
고인은 우리 나라 나이로 서른 다섯살이었다. 외국어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그 두 가지를 조합해서 아랍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려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부유하지도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보통 가정의 말 잘듣는 아들이었으며, 이라크에서 직접 목격한 참상 앞에서 부시와 미국 정부를 혐오할줄 아는 똑바른 이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요컨대 목이 베이고 피가 튀겨 고통스럽게 죽어야할 이유는 찾을 수 없는 소박하고 선량한 인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두건을 쓴 이라크의 알-자르카위 대원들은,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는 그의 목을 베었다. 통보한 24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대였다. 별다른 망설임이 없었던 것이다. 김선일의 고국에 있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꿈과, 귀국해서 먹고 싶다던 김치와 자장면과, 제일 먼저 가고 싶다던 찜질방 같은 것들은 대원들에게는 별다른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서른 다섯 청년의 생기 가득한 육신은 그들에게는 단순히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고로,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괴물이다. 괴물들이 참수형을 집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처음부터 괴물로 태어난 것일까. 물론 그럴리 없다. 그들도 평범하고 모난데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하라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고,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장래 희망이 있었을 것이고, 저마다의 세계관이 있었을 것이며, 앞으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어찌어찌 바꾸어 보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본래는 사람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괴물로 변신했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고한 인명의 목을 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몬스터'가 되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이미 우리는 그 해답을 알고 있다. 가령 5월 19일 이라크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자. 무대는 한 결혼식장, 하객들은 신랑 신부의 백년가약을 축하하며 이라크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음산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둔탁한 굉음을 내면서 천지가 요동하기 시작한다.
결혼식장에 있던 하객 45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영화 [킬빌]의 결혼식 학살 장면은 장난처럼 보일 만큼 리얼하고 압도적인 살육이 벌어졌다. 다름아닌 미군의 미사일 공격이었다. "이라크로 잠입하려는 외국 용병의 은신처를 폭격한 것"이라는 부연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 자리에 널부러진 시신들은 여성과 어린이와 무기 하나 소지하지 않은 솜털 보송보송한 총각들이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지난 몇 년간, 아니 몇십 년 동안 이라크와 그 주변 지역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되풀이되었다. 이유도 없이, 죄목도 없이, 주변에서 친구와 부모와 가족과 친척과 연인이 하나둘씩 죽어 나간다. 괴물은 이 지점에서 탄생한다.
매일 거듭되는, 언제 그칠지 기약도 없는, 원인도 없고 죄과도 없고 대가도 없는 피의 불꽃놀이는 - 눈빛 초롱초롱하던 어린 아이를, 선량하던 청년을, 평범한 한 집안의 가장을 - 괴물로 만든다. 그렇다, 괴물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그들은 야만인이다"라는 조지 부시의 말이 들려온다. 내 귀에는 야만인이니까, 문명인이 아니니까 쉽게 괴물이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냉철한 이성을 지닌, 잘 교육받은, 기독교 신앙을 지닌 미국인들은 괴물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처럼도 들린다. 전혀, 그렇지 않다. 9·11 테러가 있은 뒤 미국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려 보라.
죄도 없는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퍼붓는 일을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증거도 없는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 지지고 볶고 때려 부수는 일을 정당하다고 했다. 쌍둥이 빌딩에서 죽은 사람 수의 몇십 몇백 배에 가까운 죄없는 아랍인이 죽어도, 그들에게는 정당한 복수이고 타당한 응징이다. 변명의 여지 없는 괴물이다. 여기에는 이성이고 문명이고 신앙이고 상관이 없다.
죽음이, 억울함이, 하찮게 여겨진 목숨값이, 그리고 가만 있으면 나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 미국인들을 괴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서서히 정신들을 차려가는 분위기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은 돌이킬 수가 없다. 사람으로 돌아온 헐크가 찢어진 옷가지를 수습해야 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조지 부시의 말마따나 잘 교육받고 높은 소득 수준과 발달된 문명 속에서 자라 냉철한 이성을 지닌 그 미국인들도 저렇게 괴물로 변할 수 있다면, 이제 한 죄없는 청년을 잃은 -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지 알 도리가 없는 - 우리들은 어떤가. 우리는 과연, 괴물로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2일 하루 동안 인터넷 게시판과 각종 여론조사를 휩쓴 분노의 얼굴들을 보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이미 괴물로 변하는 초기 증세가 시작됐다. 웃옷 단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스판 바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랍인을 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전투병 파병을 통한 응징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베트남전 시절의 무서움을 보여주자는 막가파식 선동도 있다.
급기야 어떤 여론조사에서는 파병 찬성 의견이 파병 반대를 앞지르기까지 했다. 우리도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피가 또다른 피를 부르건, 괴물이 또다른 괴물을 재생산하건, 일단 괴물이 되면 그런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되지 않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파병이 재건 지원을 위한 것이건 의료 복지를 위한 것이건, 그건 이제 알 바가 아니다. 이미 이라크는 한국을 적으로, 미국의 하수인으로, 처단 대상으로 인지되기 시작했다. 더 많은 한국인이, 수많은 한국군이, 그리고 63 빌딩이나 잠실 야구장까지도 목표물이 될 수 있다. 그로 인해 무고한 피가 흐르고 흘러 옷을 적시고 더는 흘릴 눈물조차 남지 않을 시점에, 우리 모두는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열차 폭탄 테러의 희생자 가족들이 한 것처럼, 참수된 미국인 아버지가 한 것처럼,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했던 것처럼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다. 그리고 그럴 수 없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소한, 괴물이 되는 것을 예방할 수는 있다. 그것은 지금 당장 이라크에서 했던 모든 사업과 전쟁 행위를 중단하고 즉시 철수하는 것이다. 김선일씨의 절규가 다시 한번 떠오른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던 그의 외마디 소리가. 나 역시 절규한다. 우리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