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2일 (월)
(녹)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자유게시판

8.15 성모승천대축일 퍄견성가를 '애국가'로 합시다.

스크랩 인쇄

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4-07-08 ㅣ No.68575

약 10년전인 1995년 8월 15일. 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 있었습니다.

그날이 바로 저가 가까운 망우리의 석재상회에 주문 제작하여서 대한항공 편에 싣고간 슬픈 조선인 "양칠성"씨의 화강암 비석을 자카르타 소재 한국대사관에 전달한 다음날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이 선합니다.

 

전라도 전주출신 양칠성이라는 사람이, 일제시대 자바섬의 포로수용소 감시원으로 징용을 갔다가 종전 후에 현지여인과 사랑에 빠져 귀국을 하지않고 그곳에 살았는데. 인도네시아에 독립전쟁이 나자 그가 게릴라부대를 조직하여 인도네시아 독립사에 기리 남을 공훈을 세우고 침략군(식민지배국 네덜랜드 육군)에 의해 1949.9월에 총살을 당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인 1975년. 양칠성씨 부대에 있었던 부하들이 인도네시아군의 장성으로 진급하여 그들 몇사람이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외국인 양칠성을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으로 추서하여 국립묘지에 이장해달라"는 진정서를 냈고

인니정부에서는 40명의 현지조사단을 현장에 보내 그의 전공을 일일히 확인하여 1976년 자바섬에 있는 '가루트국립묘지'에 양칠성씨를 위한 "외국인 독립영웅묘역'을 만들어 이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일제시대 때 창씨개명을 했기 때문에 "일본인 야나카와 시치세이(양천칠성)"로 묘비며 묘적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1980년 8월, 당시 인도네시아에 근무했던 제가 우연한 기회에 자카르타에서 그 내용을 알고 국립묘지에 가봤더니 KOMARUDIN 이라는 그의 회교식 인도네시아 이름 밑에 Yanakawa Shichisei, JAPAN. 이라 쓰여진 묘비가 얼마나 억울하던지 (죽어서까지 일본사람이 되어 있는 내 동포를 생각하니)

다음날부터 저는 인도네시아 정부를 상대로 "양칠성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다"라는 진정서를 내 짧은 영어와 인니어를 썪어 써서 발송하였고 주인니 한국대사관에도 수차례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인도네시아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나와서도 양칠성의 본적지를 확인하고 호적등본을 떼어 그것을 번역하여 시청앞에 있는 국제공증사무소에 가서 국제공증까지 받아서 인도네시아 국방성, 사회후생성, 외무성에 보내고 또 주자카르타 한국대사관, 우리 외무부 아주국, 심지어 여의도에 있는 인니대사관까지 찾아가서 백방으로 뛰었지만 역시 허사였지요.

인니정부는 묵묵부답이었고 여기서 밝히긴 부끄럽지만 우리 관계자는 "그 당시 창씨개명을 했으니 그렇게 된 걸 이제와서 어떻게 하느냐?"하는 말같지 않은 말을 해서 저를 분노케 했었지요.

 

1995년 광복 50주년 행사를 앞두고 중앙청 건물 돔이 크레인에 번쩍 들려 옮겨진 날

저는 주위친지들과 "양칠성 국적.이름찾아주기 시민운동본부'를 만들어 서울시에 사회단체 등록을 했고(그땐 그랬어요) 그 명칭으로 시민서명운동을 벌려 1주일만에 약 8천명의 서명을 받아 외무부와 청와대에 진정을 했고 이후 언론으로부터 조명을 받는 바람에 탄력을 받음으로서 그해 7월29일 인도네시아 정부로 부터

"인도네시아정부는코마루딘이 일본인 야나카와 시치세이가 아니라 한국인 양칠성임을 인정하며, 별첨 규격에 의한 묘비를 새로 제작(우리측이 요구하였음)해서 8월 15일까지 제출하면 1995.8.17 인도네시아 독립기념 50주년 기념일에 제막식을 거행할 계획임"을 외무부를 통해 알려왔고 우리측 인사의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8월 14일 자카르타공항에 도착하니 한국대사관에서 묘비를 인수하러 나왔더군요.

다음날, 8월 15일 아시다시피 성모승천대축일이 잖아요.

제가 사비를 써가며 15년 동안 애쓴 보람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싶어 자카르타 한국교민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전에는 교민성당이 없어서 현지인들과 함께 독일신부님께서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했었는데 그 해부터 부산교구 외방선교소속 한국인 신부님께서 그곳에 부임해 오셔서 임시 사제관으로 쓰시는 건물에서 150여명의 한국교민들이 모여서 성모승천 대축일미사를 드렸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강론말씀 중에 "성모님께서는 특별히 우리민족과 우리나라를 사랑하셨습니다. 조그만 나라에서 스스로 천주교리를 배우고 신부님을 모셔오고, 박해를 받아 수많은 순교자를 낸 한국이야말로 성모님으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 증표로 성모승천대축일이 우리의 광복절이며 대한민국 정부수립일 아닙니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엄축복을 주시고 미사가 끝날무렵 파견성가의 올갠 전주곡이 나가는데 그 신부님께서 갑자기

 

"잠깐. 연주 중지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성모승천대축일이며 또한 우리 대한민국의 광복절이며, 정부수립일입니다. 오늘의 퍄견성가는 우리 모두 애국가 1절을 두번 부르는 것으로 함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하셨습니다.

일순 장내가 잠시 웅성거리고, 드디어 애국가 전주가 올갠으로 나가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기리 보전하세"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애국가에 "하느님"이 나오는 걸 깜박 잊었던 사람들에겐

더구나 멀리 고국을 떠나있는 그들 교민들에게는

그 순간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던지 목멘 소리도 들렸으며 어떤 어린이는 특히 크고 우렁찬 목소리를 내더군요. 그리고 몇몇분의 눈시울이 함초롬히 젖어있고....

 

감히 사제님들께 건의 합니다.

성모승천대축일의 파견성가는 애국가로 해 주십시요.

 

P.S; 인도네시아 교육성에서는 초,중학교 사회과목 교과서에(2004년부터) "인도네시아 독립을 도와준 고마운 한국인 "양칠성" 이야기를 싣고 있습니다. 



143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68579 화백 운보님의 성화작품들... 2004-07-08 김광태
68576 친구여 (조용필)|1| 2004-07-08 김광태
68575 8.15 성모승천대축일 퍄견성가를 '애국가'로 합시다. 2004-07-08 권태하
68574 이윤석씨|3| 2004-07-08 양대동
68573 아 그러니까|1| 2004-07-08 양대동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