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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티칸(바티칸이란 점치는(vaticinia)고지(高地)란 뜻을 지니고 있다.) 대성당은 네로(Nero)황제(54-68년)의 경기장으로부터 북쪽 언덕받이 위에 콘스탄틴 대제(大帝, 272-337)가 4세기에 세웠던 대성당 터에 서 있다. 이 대성당 바로 밑은 초세기의 이교도 공동묘지였고, 이 무덤들 사이에 베드로 사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로마 제국에서는 노예라도 자기 무덤을 가질 수 있는 권리와 어느 누구도 타인의 무덤을 범해서는 안된다는 신성 불가침의 로마법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러한 법적인 보호도 못받는 역적으로 취급받았다. 따라서 성 베드로의 유해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이교인 무덤과 비슷하게 꾸며놓고 신자들끼리만 알고 그곳으로 성묘를 다니며 기도하곤 하였다.대성당의 심장부가 되는 이 무덤을 둘러싸고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건물들이 세워졌다.
사도 성 베드로가 순교한 지(67년경)얼마 안되는 2세기 초엽 사도의 무덤 위에 가이오 신부가 이교인 무덤과 비슷하게 다시 기념 묘각을 세웠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종교자유가 인정된 이후 콘스탄틴 대제는 초라하게 땅 속에 묻혀 있던 사도의 유골을 거두어 특별히 마련한 돌궤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기념 묘단을 만들어 그 돌궤를 보존하기 위해 무덤 위를 덮었다. 그 무덤을 중심으로 지은 대성당을 교황 실베스떼르(Sylvester, 314-335)1세가 326년 11월 8일 성대하게 축성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는 콘스탄틴 대제 기념 묘단과 거의 같은 높이로 그 주위를 대리석으로 덮어 성직자석으로 꾸미고 새 제대를 크게 지어 그 기념묘단을 덮었다. 교황 갈리스도(Calixtus, 1119-1234년) 2세는 다시 더 큰 제대를 만들어 기왕에 있던 제대를 덮고, 교황 클레멘스(Clemens, 1592-1605년)8세는 새로운 대성당 건축을 계속 하면서 다시 더 큰 제대를 세워 덮었으니, 이 제대가 바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세워진 대성당은 1,200년 동안 존속하였으나 붕괴될 위험이 있었다. 성년을 맞이하여 보수, 증축할 필요성이 생겨 교황 니꼴라오(Nicholas, 1447-1455) 6세 때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그의 죽음으로 중단 되었다. 1506년 교황 율리오(Julius, 1503-1513년) 2세는 대성당을 허물고 새로 짓도록 명하였다. 브라만떼,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폰티나, 베르니니, 마데르노 등 당대의 거장들에 의해 작업이 이어진 끝에 1626년 11월 18일 콘스탄틴 대제 때 세워진 대성당 이후 1,300년만에 교황 우르바노(Urban, 1623-1644)8세가 새로운 대성당을 축성하였다.
이 대역사는 120년만에 끝났다. 그러나 광장과 그 외의 부분들은 1700년 초까지 공사를 계속하여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광장 주위의 기둥들은 1656년에 시작하여 11년 후인 1667년에 완성되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과 예술이 총 발휘되어 옛 묘소를 영예롭게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의 고고학 발굴로 그 묘소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왔음이 고증되었다. 여러 과학적인 연구를 토대로 교황 비오(Pius, 1939-1958)12세와 교황 바울로(Paulus, 1963-1978년) 6세는 현존하는 유해가 사도 베드로의 것임을 재차 공식 선언하였다. "정말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재발견 되었는가? 많은 작업과 여러 가지 연구의 최종적인 결론은 ''그렇다''는 답변입니다. 사도들의 머리이신 베드로의 무덤이 과연 재발견되었습니다."(비오 12세, 1950년 크리스마스 메세지)
"예, 그렇습니다. 그분의 무덤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지극히 존경하올 유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역사적 고증이 성립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 자리에 계십니다. 문헌, 고고학, 방증, 그리고 논리 등의 분석이 우리에게 이 사실을 입증해 주었습니다."(바울로 6세, 1978년 6월 29일자 연설)
(1)베드로 대성당의 내부

성전에 들어서면 우선 한 사람이 일한 듯이 모든 게 잘 균형 잡혀 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관까지의 총 길이는 230미터, 둥근 천정까지의 높이가 136미터, 가운데 통로 끝에 있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의 상은 날개 길이가 1.5미터이며, 성전 안에는 6만 명이 서 있을 수 있다. 성전의 가운데 통로 바닥에는 세계 유명한 성당의 길이를 표시하고 있어 성 베드로 성전의 크기를 짐작할 수가 있다. 가은데 홀에서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예수부활 대축일이나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 때는 가운데 좌석을 배치하여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여기에 앉아서 미사참례를 한다.
넓다란 현관으로 들어서면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다섯 개가 보인다.
(2) 교황 제단
중앙 회중석과 양편 주랑이 교차하는 지점, 대성전 중심이 되는 곳에 교황제단이 놓여 있다. 고백의 제단이라 불리는 여기서 교황이 미사를 집전한다. 일찍이 성 베드로가 피로써 신앙고백을 하였고, 그 뒤 모든 세기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이 제단은 베드로 사도의 무덤 바로 위에 세워져 있다. 갈릴리의 어부였던 베드로에게 바쳐진 영광은, 제단 위에 세운 베르니니의 거대한 구리기둥 천개(Ciborium), 그 위로 치솟은 미켈란젤로의 웅장한 원형 천정, 그리고 천정(Cupola)받침 둘레에 새겨진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태오 16, 18)는 예언 말씀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그후 여러 차례 제대를 새롭게 덮어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2천여년 전에 묻혔던 베드로 사도 무덤의 중심과 그 제대의 중심은 한번도 변경되지 않고 수직선을 유지했다. 미켈란젤로의 웅장한 원형 천정의 외부 꼭대기 십자가는 베르니니의 천개 중심을 통과하여 베드로 사도의 무덤과 수직선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 꼭대기의 십자가는 대성전 가운데의 중앙탑(오벨리스크)꼭대기의 십자가와 정동향으로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이는 최후심판 때에 동쪽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믿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의 유해를 비롯한 초대 교회 건축의 위치가 정동향으로 되어 있다.
 미켈란젤로의 웅장한 원형 천정. 베르니니의 거대한 구리기둥 천개(Ciborium).
베르니니의 청동의 천개는 판테온의 천장을 덮었던 청동으로 만들어 졌으며 나선형(꽈배기)의 원주가 받치고 있는 이 제단은 교황님의 제단으로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있다.
-제단 주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성녀 헬레나, 성 론지노, 성 안드레아의 거대한 석상이 눈에 띈다. 성 안드리아 상 아래에 지하 묘소(Crypta)로 내려가는 층계가 있다.(맞은편 성 론지노 상 아래에도 입구가 있음.) 그리로 내려가면 성 베드로의 묘소는 물론 여러 교황들, 우리가 들어 익히 아는 현대의 교황들, 비오 12세, 요한 23세, 바울로 6세, 요한 바울로 1세의 묘소 앞을 지나 대성전 옆으로 나오게 된다.
-중앙 제단에서 현관을 향하고 보면 왼편 머리에 고대의 성 베드로 동상이 보인다. 여러 세기를 두고 무수한 순례자들이 스다듬고 입맞춤에 오른 발은 밋밋하게 닳아져 있다. 우측 주랑은 제 1차 바티칸 공의회(1870년)회의장으로 쓰였다.
-그레고리안 경당을 지나면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제대에 이른다. 가톨릭 신자들은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믿음을 이곳에서 새롭게 한다. 금을 입힌 감실이며 천사상은 베르니니의 작품이며, 제단 위에 있는 성삼위(聖三位) 그림은 대성전에 소장된 유일한 유화다.(다른 그림들은 모두 모자이크이다.)
-다음에 성 세바스띠아노의 제단과 비오 11세와 12세의 기념상을 차례로 지나면, 순례의 발걸음은 삐에따(La Pieta)상 앞에 서게 된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조각품, 깊은 영감을 주며 영혼을 매료시키는 이 대리석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1499년 그의 나이 24세 때 조각한 이 작품은 그의 젊은 시절의 대표작이다. 동정녀의 얼굴에서 아들의 주검을 안은 어머니의 고뇌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엄숙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모습을 아주 젊게 조각한 것은, 모성애는 결코 늙을 수 없고 또 영원한 동정녀임을 표시하고자 했다 한다.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있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완성된 그의 작품을 보고 놀란 사람들이 밤 사이에 성모님의 가슴에 두른 띠에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얘기도 있다. 원래 이 제대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께 봉헌된 것이다. 이 작품은 미켈안젤로가 25살이 되기 전의 1500년 대희년을 위해 조각했다.
이 성전에서 그림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가 완전에 가까운 모자이크이다.
(3) 성 베드로 광장
성 베드로 광장은 광활한 타원형으로, 멀리서 보면 넓은 사다리꼴의 공간이 둘기둥과 궁전의 지붕 사이에 뻗쳐 있고 마데르노(Maderno)가 조각한 전면이 우뚝 솟아나 보인다. 궁전의 옆부분은 반원형으로 도리아식의 회랑이 네 개씩 줄을 지어 있다. 이 거대한 건물에는 모두 284개의 기둥과 20미터 높이의 88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대리석으로 142분의 성인의 상이 지붕위에 세워져 있다.
이 역사적 대업은 알렉산델(Alexander, 1655-1667) 7세의 명령으로 베르니니가 1656년 - 1667년 사이에 완성한 작품이다. 성 베드로 광장은 전 세계 백성을 인자하게 두 팔에 안고 있는 전 인류의 어머니인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성 베드로 광장 한 복판에는, 이 광장에서 제일 오래된 기둥처럼 세워진 오벨리스크(Obelisk)가 있다. 네 마리의 청동제 사자의 호위를 받으며 서 있는 이 오벨리스크는 높이가 25.88미터인데 칼리골라(Caligola)황제가 그의 경기장을 장식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지금의 모습대로 세우는 데에 4개월이 걸렸고 9백명의 인부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 첨탑은 성 베드로 사도가 순교했던 네로 황제의 원형 경기장에 장식되었던 것으로, 교황 식스또(Sixtus 1585-1590년)5세가 현 위치로 옮겨왔으며, 교황 알렉산델 7세의 출신 가문 인장으로 꼭대기를 장식했다. 맨 꼭대기의 십자가가 퍽 이나 인상적이다. 이 오벨리스크 위에는 에수님의 십자가의 일부분이 보존되어 있다.
교황 식스또 5세의 명으로 1586년 이곳으로 옮겨온 이 오벨리스크 양옆에는 14미터 높이의 분수대가 있는데, 각기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다. 오른쪽 것은 1615년 마데르노가, 왼편 것은 1677년 베르니니가 만들었다. 두 개의 분수와 오벨리스크 사이엔 광장의 중심부를 나타내는 둥근 대리석판이 놓여 있는데, 이 곳에서 보면 네 줄로 된 기둥이 하나로 보인다.
많은 순례자들과 로마인들은 주일 정오에 교황님의 강복(降福)을 받기 위해 이 광장에 모인다. 특히 1월 1일, 성지주일, 부활주일, 그리고 성탄절에는 더욱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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