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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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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4-07-19 ㅣ No.69015

 

                                            30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 속에서




어제와 오늘 30년이라는 세월의 질감을 마음 깊이 느껴볼 수 있었다. 20대 청년이었던 내가 어언 50대 중년이 되어 있는 그 변화에도 불구하고, 30년의 세월이 실은 한 순간이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순간에 30년 전으로 되돌아 간 듯한 느낌이 오늘 아침에 참으로 명료했다.

어제 18일, 지난 30년 동안 미사를 지내며 하느님을 느끼고 하느님과 교감을 이루어왔던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교중미사'를 지냈다. 30년 동안 정들었던 성당이었고, 내일이면 허물어질 성당이었다. 마지막 미사를 지내며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우선은 내일이면 허물어지게 될 성당에서 30년 세월의 마지막 미사를 지낼 수 있도록 돌보아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했다. 며칠 전까지도 그것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7월의 셋째 주일인 18일은 농민주일이고, 나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대전의 한 성당에 가서 강론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30년 세월의 마지막 미사를 우리 성당에서 지내지 못하게 된 것이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농민주일의 '농민 강론'을 희망하는 대전 시내 성당들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래서 대전에서 가장 먼 곳에서 살고 있는 데다가 경작 농민이 아닌 나는 기존 20명의 강론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 사실을 통보 받는 순간 나는 하느님께 감사했다.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성당에 갔다. 내일이면 허물어질 성당에서 마지막 성가대 봉사를 하는 동료 성가단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머니의 모습도 담았고, 미사 복사를 하는 내 아들녀석의 모습도 담았다.

잠시 30년 전의 풍경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1957년에 지은 건평 40평 규모의 강당이 비좁고 불편하여 1974년 건평 70평 규모의 새 성전을 지었다. 교구에서 도와준 700만원에다가 신자들이 모은 176만원을 합해 876만원으로 지었다.

당시 애경사 부조금은 대개 300원이었다. 그때는 내 또래들이 결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부조금 액수를 명확히 기억한다.

애경사 부조금이 대개 300원이었던 그 시절 나는 성당을 짓는 일에 3만원을 내었다. 신자들이 모은 돈 176만원 중에는 내가 낸 3만원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1972년 군에서 제대한 나는 그 해부터 1975년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들에 부교재를 납품하는 장사를 했었다. 조금씩 돈을 벌어서 동생들의 학비를 충당하고, 그 돈을 모아 성당 짓는 일에 한 몫을 했다.

1974년 10월 7일 준공한 새 성전에서 첫 미사를 지내던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전례봉사로 '미사 해설'을 도맡아 했는데, 강당에서 미사를 지낼 때는 신부님도 전례봉사자들도 모두 육성이었다. 그런데 새 성전에서는 앰프를 사용하게 되니, 기분이 여간 산뜻하지 않았다. 제2대 대전교구장 황민성 베드로 주교님이 오셔서 축성식을 하고 잔치를 하던 풍경도 아련히 떠오른다.

성당은 언제나 내 생활의 중심적인 존재였다. 나는 매일 미사 참례하는 것을 내 생활의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고, 평일미사 참례는 거의 생활화되다시피 했다. 미사를 중심으로 내 생활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1956년부터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한 우리 태안교회는 8년 후인 1964년에 사제가 상주하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서산천주교회(현 동문 본당)의 공소에서 본당으로 분리 독립을 한 것이다. 또 그 후 10년만인 1974년에 새 성전을 지었다.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30년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그 성당에서는 우리 집의 중요한 일들도 많았다. 1977년에는 내 누이동생이 혼배 미사를 지냈다. 1986년에는 내 선친의 장례미사가 있었고, 이듬해 1987년에는 우리 부부의 혼배 미사가 있었다. 그리고 1990년과 91년에는 내 두 남동생의 혼배 미사가 있었다.

내 어머니의 칠순과 팔순 축복미사도 그 성당에서 베풀어졌고, 나로 인해 하느님을 믿게 된 많은 사람들이 그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내 아이들과 조카아이들이 세례를 받은 곳도 그 성당이었다.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과 1980년대 5공 시절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교중미사 전례봉사를 하면서 '신자의 기도(후에 '보편지향기도'로 이름이 바뀜)' 시간에 참으로 절절하게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갈망하는 기도를 올리곤 한 성당이었다.

1976년부터 80년까지 객지 유랑생활을 했던 동안을 제외하고는 30년을 거의 매일같이 대하며 살았던 그 성당 건물이 이제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다시금 새 성전을 건립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성당의 터가 무척 넓은 것과 관련하여 그 건물을 남겨서 보수를 한 다음 계속 사용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으나, 그 성당이 깔고 앉은 그 자리에 새 성전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결국 30년 연륜의 그 성당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교중미사 후에 있은 새 성전 착공식을 마침과 동시에 신자들은 30년 연륜의 성당 건물 안에서 모든 비품들을 꺼내어 다른 곳으로 옮겼다. 십자고상(十字苦像)을 비롯한 성상들과 제대가 철거되고 의자들이 모두 옮겨진 성당 안은 쓸쓸하고도 허전했다. 나는 잠시 30년 전의 성당 풍경을 보는 듯한 감회에 젖어들기도 했다. 30년 전 성당을 완공했을 때의 내부 모습 바로 그대로야. 나는 어느 모로는 30년 전으로 되돌아온 셈이고….

나는 오늘 아침미사를 지내러 성당에 갔을 때도 우선 30년 연륜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텅 빈 내부 모습을 한참이나 둘러보았다. 제의실과 고해소, 성가대석과 유아실 등을 돌아다니며 벽이며 창문틀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그리고 강당으로 들어가서 미사에 참례했다. 강당은 '친교실'로도 불리는 건물이었다. 어언 47년의 연륜을 안고 있는 건물이었다. 회의실, 기도 모임, 회식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는 장소였지만, 30년 전에는 미사를 지내던 거룩한 집이었다.

강당에서 미사를 지내며 나는 문득 3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에 젖어들기도 했다. 오늘이 30년 전의 어느 하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강당의 내부 모습은 옛날과 많이 달랐다. 일부를 나누어 조리실을 만들었고, 그 조리실 때문에 옛날의 정문이 없어진 대신 옆으로 출입문을 내었다. 또 신을 벗고 오르던 마루바닥이 시멘트 바닥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건물의 전체적인 모양새는 30년 전과 거의 같았다. 더욱이 그 건물 안에서 다시 미사를 지내니, 정말이지 30년 전의 그 세월로 되돌아간 셈이었다.

평일미사는 그 건물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주일 미사를 위해서 건물 밖으로 넓은 차양 막을 치고 의자들을 많이 놓았다. 여름철인 지금은 괜찮지만 겨울에는 다른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그렇게 올 일년을 보내면 새 성전이 지어질 것이다.

그리고 30년 전처럼 30년 후인 오늘 다시 미사를 지내게 된 이 건물도 새 성전 건립 공정에 따라 어느 날 마침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47년 전 강당 건물을 지을 때도 어린 몸으로도 노력 봉사를 했다. 어른들을 도와 삽질을 하고 리어커를 밀고 했다. 신자 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여서 나 같은 어린아이의 수고도 필요했다.

30년 전 성당을 지을 때도 많은 일을 했다. 애초엔 신을 벗어야 하는 타일 바닥을 1980년 신을 신은 채 들어갈 수 있는 시멘트 바닥으로 개조하는 공사를 할 때는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도록 해머를 휘두르고, 인평리 냇가에 가서 모래 삽질을 해야 했다.

이번의 새 생전 건립 공사까지 합하면 나는 평생 동안 우리 교회의 성전을 세 번 짓는 역사를 경험하는 셈이다. 그리고 세 번째 공사와 함께 최초의 건물과 두 번째 성당 건물이 사라지는 아쉬움을 안게 된다.

그 아쉬움 속에서 다시 한번 세월 빠름을 절감한다. 30년이 바람처럼 흘렀음을 실감한다. 30년 전으로 되돌아가서 다시금 미사를 지내는 강당 건물도 내년의 어느 날 사라지게 되면 우리 교회 안에 오랜 세월을 안고 있는 구조물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우람하고 아름다운 새 성전이 48년의 교회 역사를 안은 채 새로운 연륜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새 성전과 함께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그 속에서 또 새롭게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 무상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 무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게 하려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배려임을 다시 느끼고 깨달으면서…. *


(040719)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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