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님께 드리는 글
-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이 땅의 양심도 울고있습니다.
암울했던 지난 세기..
이 땅의 고통 받는 모든 약자와
인권과 민주와 통일을 위해
그리고 이것들을 실천하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사표로 삼아
분단된 민족의 가슴앓이를 치유하고 어루만져 주셨던
고통 받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자 스승이신 추기경님께서..
아.. 오늘
이러한 추기경님의 평생의 올곧은 사표의 길은
마침내 슬픈 날로 그 종언을 告하고야 말았습니다.
아니, 하늘도 울고 땅도 우는
청천벽력의 뇌성으로
추기경님의 사랑을 받던 모든 약자와 실천하는 양심과
추기경님을 사랑하던 이 땅의 모든 백성의 가슴 가슴에
비수로 꽂혀 슬픈 선혈이 낭자하고 있습니다.
2004년 9월 13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예방을 받으신 자리에서
"국보법 폐지 반대의사를 밝히셨다"는 것이
정녕, 사실이며 추기경님의 진심이란 말인가요.
암울했던 지난 세기의
그 모습, 그 정의, 그 사랑, 그 올곧음도
쇠락하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급기야는 영롱한 영혼이 쇠락하고 말았단 것인가요.
우리는 분명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신독재와 5공군사독재의 폭압 속에서도
이 땅의 인권과 민주와 그리고 조국통일에 대한
추기경님의 애정 어린 사랑을
그 사랑은..
수차례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의사와 주장"으로 나타났었습니다.
지난 99년 8월5일,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양심수 석방과 국보법 폐지를 위한 캠페인'때
각계 원로인사 99인의 '인권선언'은 무엇이란 말인가요.
지난 2001년 2월21일, 성공회 대성당에서
'개혁쟁취를 위한 1만인 시국선언'을 갖고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밟힐 듯 선한 것을 아시나요.
"남남분열이 큰 걱정"이라는 추기경님의 말씀에서
일제 식민지치하에서 민족해방의 열망을 외면하고
대동아공영을 소리높여 찬양했던
육당 최남선이, 춘원 이광수가 다시 살아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북한이 원하는 게 남남분열이 아닌가"라는 말씀에서
이 땅의 민족해방과 자주적평화통일의 염원을 짓밟았던
반통일 수구세력의 구토 같은 냄새가 물씬 배어나는 것이
비단 저만은 아니라고 강변하는 피 토하는 심정을 느끼시나요.
만해 선생이
오늘 추기경님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그는 다시 ‘님의 침묵’으로
詩心의 독화살을 날릴 것으로 믿습니다.
추기경님, 들리십니까...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