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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전 2, 聖 김재준 이냐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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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 김재준 이냐시오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아버지이며
김진후 비오의 손자이다. 충남 면천땅 솔뫼에서 김택현의 삼형제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백부인 김한현에게 사학이라 하는 천주교 교리를 배운다. 솔뫼에서 유복한 이 가문이
천주교와 인연을 맺은것은 김재준의 할아버지 김진후 비오때 부터였다
처음에는 이단에 빠져 있던 김진후가 당시 내포의 사도라 불리던 이존창으로부터 천주교 이야기를 듣고
벼슬을 버리고 이단을 끓고, 외인 친구와도 절교하고 그는 마침내 50의 나이에 입교하게된다
1801년 신해년 박해에 잡혀 신앙을 용감히 고백하면서 그후 4~5차례 잡혀 문초와 고문을 격었고,
1805년 다시잡혀 해미병영으로 압송되어 신앙을 증거했으나 그를 처형하지않고, 석방하지도 않고
그대로 옥에 가두어 두엇다. 그는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감수해내며 열심히 수계하였지만, 결국 옥에서
10년만인 1814년 74세를 일기로 파란많은 일생을 마쳤다. 그렇지만 김재준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준 분은 할아버지 보다는 그의 큰 아버지였다. 김재준은 잡혀서 문초중 자기가 입교하게된 동기가
큰 아버지였음을 거듭 자백 한것을 보면 알수있다.
선교사가 입국하기 시작한 1835년경 김재준 일가는 정해박해를 피해 솔뫼를 떠나서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와 살고 있었다 ,보다더 자유롭게 천주님을 믿기위해 용인골(한덕골)배매실인 산중을 택하게
된것이다, 이어 아버지 김택현이 사망하자 김재준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처자와 함께 농사 지으며
살아갔다. 그러던중 프랑스 신부님이 입국하여 정하상의 집에 유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샤스탕 신부에게 이냐시오라는 세례명으로 성세와 견진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회장 직책을 맡아보며
교우를 열심이 권면하며 가르쳤다. 1836년 초에 모방羅 신부가 남부지방으로 내려가는 도중 김재준의
집(은이공소)에 들르게 되었다 .모방 신부는 김재준의 아들 재복(再福,大建,당시 15세) 을 보고
그의 제자로 삼기를 원하자 기꺼이 승락하게 되었다.
羅 신부는 김재복(대건)을 뱡인 사제로 만들고자 그를 마카오로 유학보내었다. 그후 배교자
김순성 유다스 고자질로 교우들을 잡으러 진천 지방으로 내려갔던 포졸들이 돌아오는 길에 용인에
들러 기해년 1839년 9월상순, 김재준을 잡아 서울로 압송한 그들은 고문을 가하는데, 관변측 공초에
의하면 그는 처음 심문에서 입교후에는 바쁜 가사일로 독실하지 못했고, 羅 신부가 아들 김재복(대건)
제자로 삼으려 함으로 마지못해 허락했고, 또 우매한 나머지 羅 신부의 말을 믿고 아들을 타국까지
보냈으며, 조신철(가룰로)을 통해 아들의 편지를 받아 보았다고 했다. 이렇게 그의 아들이 신부가
되기위해 외국에 나간 사실이 드러나자 .사단(事端)은 커지고 죄목이 극히 중해져 형벌이 한층
혹독해졌을 뿐더러 이와같이 중대한 사건은 포청에서 일임할수 없어서 의금부로 보내져 엄한
국문(심문)을 받게 되었다. 9월13일(음 8월 13일)심문에 이어 이튿날 혹독한 곤장에 김재준은 일시
배교하는 허약성을 드러낸다.
"지금에와서 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느냐?"
"어찌 생각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한즉 뉘우치고 한하는 마음이 없느냐?"
"지금에 와서는 추후로 뉘우칩니다."
이에 김재준이 시골의 한 우부(愚夫)로 사학(邪學)의 지려(砥礪,힘써닦음)한 일과 서양인의 내력을
알지 못한 것인데, 다만 몸만 심호할뿐 아니라 ,그 자식 까지 학도로 허락했으며 정하상과 뭉칠뿐
아니라 서양인까지 신방하기를 그치지 아니한 사실을 깨닫고 뉘우치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는 석방은 되지않고 형조로 보내지자, 그러자 옥에있는 교우들은 그의 죄가 얼마 큰가 하는것과
그러한 배교도 그를 놓아주는 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권고하며
"놓아주어 나가는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마십시요. 당신은 의심없이 처형 될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돌려 당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치명자로 세상을 마치도록 하십시요.
영생의 길과 갈바리아로 올라가는 길에서도 사람은 넘어질수가 있는것이요, 비록 신앙이 확실한
교우일지라도 그럴수가 있는것이요. 베드로는 용감한 사도였으나 한번 넘어졌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께서 돌아보시는 시선에 부딪치자 다시 일어났다." 이러한 충고에 김재준은..베드로와 같이..
배교하기 전보다 더 강한 자가되어 다시 일어났다 .그가 배교한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형관앞에
이르러 앞서 배교한 사실을 이렇게 취소했다
"서양인을 데려온것과 자식을 외국에 보낸것은 모두 천주를 공경하여 받들려는 까닭이었고 .
일심으로 심혹했으나 만사무석(萬死無惜)입니다."
이때 수차례 혹형을 당했으나 다시는 마음을 굽히지 않았다. 이분이 이토록 강건해지고 굳건한 신념을
굽히지 않을수 있었던것은 조선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아버지에게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용기를
주신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드디어 9월26일 조신철(가롤로)등 9위가 함께 서소문밖에서
참수치명(斬首致命)하니 그때 그의 나이 44세였다 .
이제 우리는 신앙을 위해 치명하신 김재준의 가문을 살펴볼 필요가있다.
할아버지 김진후(비오)가 1814년 순교한지 2년뒤, 큰 아버지 김한현이 순교했으며
23년후에는 김재준 자신이 순교하고, 7년뒤, 그의 아들 김대건 신부가 순교함으로써
32년동안 4대가 순교하는 비극과 영광을 함께한 신앙의 명가를 이룬 사실이다.
聖 김재준 이냐시오님 가문의 순교자는모두 9명이다 .
끝..
다음편은 聖女 김 데레사 (김대건 신부 당고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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