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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전 4, 聖 정하상 바오로,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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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구 [xhak59] 쪽지 캡슐

2004-09-24 ㅣ No.71654

1편 이어서......

 

7살이었고 누이동생 정정혜(엘리사벳)는 다섯 살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유소사 (세실리아) 께서는 남편(정약종 아우수스티노)과 큰 아들(정철상 가롤로)이

 

치명하면서 국가로부터 가산도 모두 몰수되고 호구지책도 마련할 길이 없게되자,

 

친척인 어느 외교인의 도움으로 고향인 양근땅, 마재로 내려와 귀양중인 숙부 다산 정약용의

 

집에 의지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도 일가 친척들에게는 천주교를 믿어 집안이 풍지박산이

 

났다하여, 온갖 구박과 학대를 받고 외인들에게는 천주학쟁이들 이라하여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힘겨운 생활을 근근히 이어갑니다. 그들의 집에는 박해로 인해 성물은 물론,천주교 서적이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그런 어려움 중에도 어머니(유소사)께서는 구전(口傳)으로 정하상(바오로)과

 

정정혜(엘리사벳)에게 기도 생활과 교리를 철저히 가르치십니다. 어느덧 정하상 바오로는

 

20세의 타고난 신덕과 튼실한 청년으로 장성하자 홀로 한양으로 올라와  여교우인 조증이 바르바라

 

(남편,聖 남이관 세바스티아노)집에 머물면서 신유박해로 거의 소멸 되다 시피한 교회를

 

어떻게하면 다시 일으켜 세울수 있을까?  궁리 끝에 ...그는 교회를 다시 재건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이제는 성직자를 모셔와야 한다고 판단 합니다. 이미 우리 교회 신자들은 주문모 신부님 (1801년,

 

辛酉迫害순교, 새남터)으로 부터 하느님의 성사를 맛보앗기 때문에 이제는 초기처럼 평신도들

 

만으로는 교회를 일으켜 세울수가 없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그는 양근 출신으로 신유박해(辛酉迫害)

 

로 고초를 당하시고  함경도 무산으로 귀양가 있던, 아버지 친구분이시며 한학자이신 조동섬 (유스티

 

노)을 찾아가 성직자를 모셔오는 일을 의논하고 부족한 교리 지식을 지도 받은 뒤, 한양으로 올라온

 

정하상은 마침내 1816년 ,중국으로 들어가는 동지사(冬至使) 사신들중 어느역관(譯官)의 하인복색을

 

하고 북경에 들어 갑니다. 그는 북경성당에서 구베아 신부님(북경주교)으로부터 성사와 견진,

 

성체까지 모시고, 조선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신부님을 파견 해주실것을 간절히 요청 합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 교회도 어려움에 처한 상황은 조선교회나 별반 다를게 없었던 사정이라

 

신부님 파견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 옵니다. 그렇지만 정하상 바오로는 결코 좌절 하지않고 

 

실망하지 않습니다.,그후 매년 북경을 방문하여 성직자 모셔오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합니다,

 

한편으로는 성직자를 모실 집을 한양에 마련 하시고 고향 마제에 계시던 어머니(유소사 세실리아)와

 

누이동생 (정정혜 엘리사벳)의 거처를 그곳으로 옮기도록 합니다,
 

그후 1823년 북경행 때에는 역관인 유진길(아우구스티노)과 마부인 조신철(가롤로)이 천주교에

 

입교 하면서 정하상에게는 큰 도움이 되어 줍니다, 무려 5천리나 되는 북경길을 수차례에 걸쳐

 

드나 들면서 북경 교구와 로마 교황청에 편지와 탄원서를 끈질게 보내는 눈물겨운 노력 끝에

 

마침내 큰 성과를 보게 됩니다, 당시 교황님이시던 그레고리오 16세 께서는 이들의 서신을 받아 보시고

 

감격스런 모습으로 조선땅이 있는 동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시며 강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후 교황님께서는 주교도 신부도 없는 척박한 박해의 땅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하느님을 증거하는

 

조선 신자들을 생각해서 조선에 특별히 교황청 소속의 대목구를 설정해 주시는 영광을 내려 주십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조선 교회가 아니. 조선이라는 나라가 온 세계에 알려지게된 걔기가 됩니다,

 

이는 교회사 적으로나 정치적,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일 입니다, 당시 조선은 중국

 

동쪽의 작은 변방으로 중국의 속국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교회사적으론 조선이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는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라고 할수 있을것 입니다,

 

이때가 1831년의 일 입니다.....

 

3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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