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굴절도 하느님 안에서는 풍요로움이고, 이 풍요로움이 단층의 직선을 만듭니다.
깊이 감사하면서 즐기시길....
사목, 2003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을 지은 이는 김승교, 변호사입니다. 깁니다. 그래서 2회에 걸쳐 올립니다. 아래.
국가보안법과 양심
김승교(변호사)
1. 들어가며
"요즘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는 사람이 있습니까?"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변호사들로부터도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자주 접하는 편인 나에게는 아주 뜻밖의 질문이지만, 그만큼 국가보안법의 존재가 우리들의 생활과 뇌리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음의 반증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치적·사상적 이유로 박해받는 사람들에 대해 무감해진 탓도 있을 게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반인권 악법을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국가보안법을 지적할 것이다. 그만큼 이 법은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대표적인 악법으로 지탄받아 왔고 국제 사회로부터도 수차 폐지 권고를 받아왔으며 악법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해묵고 식상한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이 법의 개폐는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가늠할 지표라 할 것이고, 참여 정부를 자처하며 새로 등장하는 노무현 정부에 있어서도 새 법과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낡은 법과 제도를 청산하는 것이 순서라는 점에서,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우리 시대에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2년 정기 국정 감사 자료에 의하면, 김대중 정부 출범 후 1998년부터 2002년 8월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통계는 다음과 같다. 1998년 입건 785명에 구속 465명, 1999년 입건 506명에 구속 312명, 2000년 입건 286명에 구속 130명, 2001년 입건 247명에 구속 126명, 2002년 1월부터 8월까지 입건 151명에 구속 92명으로 나와 있다. 과거 군사 정권 때보다는 많이 줄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매년 200명 가량 형사 처벌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법의 피해자가 국민 전체라는 점이다. 이 법의 과도한 기본권 제한과 운용상 무소불위의 위력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마저 심리적 분단선을 긋고 진보적 정치 활동에 대한 두려움을 깊이 새겨 놓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자유로운 사색과 활동을 억압하고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국가보안법의 악법성
국가보안법, 왜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국가보안법은 법률로서의 최소한의 형식을 구비하지 못하였다는 '위헌성'과 '법적 부당성'의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 성격과 내용이 반민주, 반민족, 반통일적 악법이라는 점에 있다.
1) 반민주 악법성
국가보안법은 그 태생, 제정 배경, 실제 운용 등 그 어느 것을 살펴보아도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가 독립 운동을 탄압하며 식민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해 온 치안 유지법이 탈바꿈한 것으로, 건국 당시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는 친미 극우 세력이 정권을 구축, 공고화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며 자주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의 진출을 막고 사상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로 제정된 것이다. 이에 국가보안법은 지금까지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을 뿐 아니라 정치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 투쟁, 통일 운동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의 진보와 발전을 저해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로막아 민주주의적 의사소통과 민주적 개혁을 탄압해 왔다. 국가 안보라는 미명 아래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거나 북한에 동조, 찬양한다는 딱지를 붙여서 말이다. 이 점에서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의 장애물로서 반민주 악법으로 기능하고 있다.
2) 반민족, 반통일 악법성
한편, 국가보안법은 반국가 단체라는 개념을 체계적쇓논리적 전제로 하는데 그 반국가 단체란 특히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칭쇓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1) 이와 같이 국가보안법은 특히 북한을 '적'(반국가 단체)으로 규정해온 것인데, 최근의 정세는 '북'을 '적'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의 논리적 모순과 현실적 모순을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 이후 남북 관계는 대전환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9차례의 남북 장관급 회담과 수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고, 경의선과 동해선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가 마무리되고 있으며, 다양한 부문의 각종 민간 교류도 날로 확대되고 있고, 지난 해 아시안 게임에서는 북의 응원단이 대거 내려와 전 국민적 관심과 호응 속에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일까지 있었다. 남북 관계는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남북 관계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북'을 '적'(반국가 단체)으로 규정해 둔 국가보안법의 논리적 모순과 실제적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곧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반국가 단체인 북한의 구성원들과 만나거나 전화, 팩스 등을 통해 소통하면 회합, 통신죄로, 반국가 단체인 북한 지역을 오가는 행위는 잠입, 탈출죄로, 북한의 체제나 실상을 미화하거나 단순 보도하는 경우에도 찬양, 고무, 동조죄로, 북한의 주장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단체는 이적 단체로 처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남북 당국 또는 민간의 화해와 교류, 협력이 있을 수 없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평화 통일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국가보안법은 국민 일반의 상식과 배치되고 남북 관계의 현실 적합성도 잃어버린 시대착오적인 법이고, 반민족적, 반통일적인 악법이라고 지탄받는 것이다.
3. 국가보안법의 법리적 부당성
국가보안법은 우리나라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 위배될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적정성 원칙에 반하고 다른 법률과의 관계에서 모순, 상충되는 등 법리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1) 헌법의 평화 통일 이념에 위배
헌법은 그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며 규정하고, 제4조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규정하는 등 평화 통일 이념 및 민족 대단결을 선언하고 있다. 곧 헌법은 북한을 평화 통일의 대상이자 대단결의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실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평화 통일의 대상이며 대단결의 대상인 북한에 대해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아니한 채 반국가 단체(적)라고 규정하는 것이므로 이는 헌법의 평화 통일 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평화 통일을 하자면 상대를 만나고 협의하여야 함이 당연한 전제임에도,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방문하고, 협의하고, 북한측의 사람을 만나고 하는 일들을 잠입 탈출죄, 회합 통신죄, 편의 제공죄, 찬양 고무죄 등 범죄 행위로 취급하여 처벌하는 것이니, 이는 결국 국민들에게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평화적 통일 노력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 점에서 국가보안법은 평화 통일 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되어 상위법인 헌법에 반하는 위헌 법률인 것이다.
2) 상충성
1992년 2월 19일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제1조에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 한다"고, 제5조에서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아니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국가보안법은 남북기본합의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남북교류협력법이 1990년 7월 15일 제정되었는데 이는 "남북 사이의 왕래, 교역, 협력 사업, 통신 업무의 제공 등"을 적용 대상으로 하며 반국가 단체인 북한과의 교류, 협력 등을 규율, 촉진하고자 하는 것이어서 국가보안법과 상충, 모순 된다. 이러한 모순으로 동일한 행위 유형이 양법에 다 저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어느 법을 적용할 것인가는 순전히 수사 기관이나 법관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한편, 남북한은 1991년 동시에 유엔(UN)에 가입하였는데, 이로써 남북한은 국제적 차원에서 국제법상 주권 국가로 공인되어 북한이 반국가 단체라는 논리는 국제법적으로도 더 이상의 존립 근거를 상실한 것이다. 또한 남한이 유엔에 가입함에 따라 조인한 국제인권규약(특히 B규약,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협약)은 헌법 제6조 제1항의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규정에 의해 국내법의 일부가 되었으며, 남한은 동 규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기간마다 정부 보고서를 제출하여 유엔의 심사를 받고 관련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대로 한국의 실정을 개선해야 할 국제법상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에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게 국가보안법이 국제인권규약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국가보안법의 개폐를 수차 권고하였는 바,2)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국제인권규약과도 배치, 상충된다.
3) 죄형법정주의 위배
죄형법정주의는 헌법 제12조 제1항 및 제13조 제1항 등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근대 형법의 대원칙으로서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 없다"는 원칙인데, 이는 근대 국가 태동기에 국가 형벌권의 남용과 자의적 행사로부터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의 역사 속에 형성되어 오늘날 문명국가 형사법의 최고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어떤 행위를 범죄라고 규정할 것인지와 그 범죄에 대해 얼마만큼의 형벌을 가할 것인지는 미리 성문화된 명확한 법률에 의해 확정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그 내용은 첫째, 관습 형법의 금지 원칙으로 죄와 형의 내용을 명확히 특정할 수 없는 관습법이나 사회 상규 등 불문법에 의하여 처벌하는 것은 금지된다는 것이고, 둘째, 형벌 효력 불소급 원칙으로 행위시에 처벌 법규가 없는 행위에 대하여는 사후에 제정된 법률에 의거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이며, 셋째, 유추 해석 금지 원칙으로 법률에 범죄라고 규정되지 않은 행위에 대하여는 그와 유사한 사항에 관한 법률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고, 넷째, 절대적 부정기형 금지 원칙으로 예컨대 단순히 '징역형에 처한다'는 식으로는 규정할 수 없고 형벌의 정도는 한정(예컨대 징역 5년 이상)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다섯째, 명확성의 원칙으로 무엇이 범죄인지를 정하는 구성 요건은 명확하여야 하고 그 해당 여부를 가리기 힘든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고, 여섯째, 적정성의 원칙으로 무엇을 범죄로 정할 것인지는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적정하게 규정하여야 하고 형벌의 정도 또한 그 불법성에 상응하는 만큼만 부과하여야지 지나치게 무겁게 부과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죄형법정주의의 여러 내용 중 명확성의 원칙과 적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국가보안법은 죄와 형벌을 규정하므로 죄형법정주의에 의하여 구성 요건이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구성 요건이 너무나 막연하고 불명확한 개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제2조의 '반국가 단체', '정부 참칭', '국가 변란', 제3조의 '수괴의 임무',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 제4조의 '국가 기밀', '기타 주요 시설', '기타 물건',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 제4조와 제7조의 '사회 질서의 혼돈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 '사실을 왜곡', 제5조와 제6조의 '지령', 제6조의 '협의', 제7조의 '찬양·고무·동조·기타의 방법의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한', '기타의 표현물', 제8조의 '기타의 방법', 제9조의 '기타의 무기', '기타 재산상의 이익' 등 국가보안법 규정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 규정의 불명확성, 추상성, 불법성은 더 이상 상상하여 만들어 내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대법원은 어떤 경우에는 법에 반하여 더욱 이를 넓히고 있다"는 지적까지 있는데, 이러한 불명확한 개념들로 인하여 어떠한 행위가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늠할 객관적이고 뚜렷한 기준이나 한계를 정할 수 없으며 결국 그 해당성 여부는 수사 기관이나 법관의 주관적·자의적 해석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로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 위헌 법률인 것이다. 예컨대, ① 검찰이 '성화 신국을 칭한 사이비 종교 단체(상제교)'에 대해 국가보안법 상의 반국가 단체로 기소한 사례,3) ② '아람회'를 구성, 활동하였다는 혐의의 관련자들 중 민간 재판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반국가 단체'로 처벌하고 군인 신분이어서 군사 재판을 받은 사람에 대하여는 '이적 단체'로 처벌한 경우로 동일한 단체를 '반국가 단체'라거나 '이적 단체'라고 하는 등 모순된 판결을 내린 사례4)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국가보안법 규정의 구성 요건이 불명확하기에 결국 그 해석이 법운용자의 자의에 맡겨져 있어 빚어진 단적인 예인 것이다.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함에 있어서는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적정하게 정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죄'라고 규정하는 것들에 정의 관념이나 실질적 측면에서 범죄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다수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죄를 적정하게 정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그 형벌의 정도를 그 불법성에 상응하는 만큼만 부과하여야지 지나치게 무겁게 부과하여서는 안 됨에도 국가보안법은 다른 형벌 법규(형법의 내란 및 외환의 죄 등)와 중복되는 처벌 조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행위의 가벌성의 정도에 비해 그 법정형을 매우 가혹하게 가중하고 있는데, 이는 죄와 형의 균형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더더욱 일정한 법익 침해나 구체적인 위험성이 없는 경우마저도 국가보안법 구성 요건의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한 개념들과 결합하여 엄청난 형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보안법에서 현재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죄만도 수십 개에 달하고, 실제로도 이 법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았거나 35년 이상 옥살이를 계속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에서 이 법의 과잉입법성(죄와 형의 균형성 상실)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죄형법정주의의 적정성 원칙을 위반한 위헌 법률인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양심 2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