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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제의 금싸라기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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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신부님을 생각해보면서 저는 오늘의 복음 성서에 대하여 색다른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치레로 입원하는 바람에 제가 주일미사를 본당공동체와 함께 할 수 없음에 대해서 마음의 부담을 지닌 것은 다분히 직분상의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가용 승용차도 없이 시간적으로 매우 제약을 받는 대중교통수단으로 그것도 자신의 본당 사목 직무를 다 수행하는 가운데 한밤중에 걸어서라도 저의 병실을 찾아 마음을 주고 간 그 친구 신부님은 직분상의 의무감에서 그리 한 것이 아니지요. 그 신부님의 마음은 직분에서가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온 마음이었지요. 그분이 계시는 시골 성당 동네의 전교생 28명이라는 초등학교 운동회에 어린이들과 시간을 함께 해주고 나서 그날 오후 늦게 먼 길 그렇게 저의 병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기서 저 자신의 마음과 그 신부님의 마음이 전혀 다른 모양새로 대비되어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직분 때문에 연연한 마음으로 본당 공동체와의 관계를 생각했습니다만, 그 친구 신부님께서는 병실에 있는 자기 친구와의 우정의 관계가 즉 사랑의 마음이 소중했던 것입니다. 따지고 보자면 사실상 그 신부님은 굳이 저의 병실까지 그 불편하고 먼 길 찾아 올 의무가 없습니다. 간편하게 전화를 하는 것으로도 우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허나 그 신부님은 “이 바람에 자주 못 보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그게 고마운 일이 아니겠나!” 하는 마음으로 밤길을 오고간 것입니다. 사목지의 바쁜 일 가운데서도 짬을 내어 먼 길 찾아온 그분의 그 ‘짬’은 그저 사소한 짬이 결코 아니었지요. 여기서 저는 오늘 복음서의 예수님 말씀 가운데 단 한 마디가 저의 가슴을 찌르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단 한 마디란 “부스러기”(루가 16, 21)라는 말씀입니다. 부스러기! 그것은 아무런 값어치도 없는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저 내어버리는 것일 뿐이지요. 헌데 내어버릴 그것마저 얻어먹지 못하는 처지의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들어 썩어가는 몸둥이로 부잣집 대문간에 쓰러져 그 집에서 버리는 음식 부스러기로나마 배를 채우려 했던 거지 라자로에게는 오로지 개들이 종기를 핥는 것으로 상대해줄 뿐이었지요(루가 16, 20-21 참조). 철저히 무시를 당한 처지입니다. 부자는 오늘 아모스 예언자의 질타를 당할 만큼 패악하고 비정하게 라자로를 아랑곳도 하지 않았지요(제1독서 아모 6, 1-7 참조). 그 부자에게 있어서 라자로는 그렇게 음식 부스러기만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라자로를 무시한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 중에 아브라함에게 호소했던 라자로의 손가락 끝의 물 한 방울은 라자로가 생전에 그렇게 간절해 하던 부자 식탁의 음식 부스러기에 비하여 그 값어치가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보다도 더 간절한 것이었습니다. 그 차이란 오늘 예수님께서 대변하여 들려주신 아브라함의 대답으로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루가 16, 26)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 건너려 해도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는 사실상 ‘부스러기’처럼 보이지도 않던 사이에 이미 놓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부자는 생전에 음식 부스러기 하나도 라자로에게 주지 않았지요. 그 부자의 마음에는 라자로가 음식 부스러기만도 못한 존재였지요. 그렇듯 부스러기 하나도 마음 써주지 않은 사이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마음과 마음 사이의 다리를 건너지 않은 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이란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루가 16, 31) 불신과 비정의 사이입니다. 그러한 사이에 물 한 방울인들 어찌 손가락에 찍어 건네줄 수 있겠습니까? 물 한 방울 손가락에 찍어 달고 그 멀고먼 마음의 구렁텅이를 건너려 한들 그 한 방울이 그 사이에 손가락 끝에 매달려 건네질 수 있겠습니까? 허나, 머나멀고 불편한 길에 없는 시간 짬을 내어 저의 병실에까지 건너왔던 친구 신부님의 마음과 그 얼굴은 결코 부스러기가 아니었습니다. 금싸라기였지요! 음식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는 시간에 놀러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정의 마음을 가지고 온 것이기에 그것은 금싸라기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전화로가 아니라 대면하여 육성과 눈빛으로 위로하고자 찾아온 그 얼굴은 예사 얼굴이 아니라 금쪽같은 얼굴을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로 오지 못하는 처지에도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발로 걸어 땀을 흘린 몸으로 밤중까지 피로를 무릅쓴 시간을 가지고 온 것이기에 그것은 부스러기 같은 짬이 아니라 금싸라기 같이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 친구 신부님의 그 고마운 방문을 받고나서 저 자신이 평소 사람들을 대하던 마음을 부끄러워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대하면서 직분 상으로가 아니라, 또는 사무적으로가 아니라, 그리고 또 부스러기처럼 버려도 되는 남는 시간으로가 아니라, 진정 금싸라기 같은 소중한 마음으로 그리고 작은 만남에서 금쪽같은 마음을 더 소중하게 담는 시간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거기에서 건너오고 건너가는 사람들의 사이가 이루어진다는 깨우침을 새로이 지녀야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모두 그렇게 깨우쳐지는 거기가 곧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아브라함의 품속에’(루가 16, 23 참조) 즉 하느님의 품속에 우리 마음이 함께 엮어지는 사이일 것입니다. 그러한 깨우침은 진정 저의 친구 신부님이 저에게 준 병실에서의 선물이었습니다. 부스러기인 것 같지만, 작은 사랑의 마음들은 결코 부스러기가 아니라 금싸라기 같이 소중하다는 깨우침 말입니다.(안면도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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