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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전 6, 聖女 정정혜 (엘리사벳1796~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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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구 [xhak59] 쪽지 캡슐

2004-10-02 ㅣ No.71959

聖女 정정혜 엘리사벳은 1800년 6월에 박해를 피해 아버지(정약종)를 따라 고향 광주를 떠나

 

한양으로 피신해 왔을 때 그의 나이 겨우 네 살이었습니다. 한양에 올라온 정정혜는 어머니(유소사)와

 

오빠 정하상과 함께 주문모(周文謨,중국)신부에게 영세를 받습니다,

 

이듬해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 모두가 붙잡혀 아버지와

 

큰오빠 철상(가롤로)은 순교 합니다, 어머니와 어린 아이들은 석방되지만 이미 가산이 몰수되고

 

가난으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비참한 생활로 지내지만. 그러나 정정혜는 모친의 모범적 신앙인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운 시련중에도 그의 신앙을 보존합니다.

 

그러면서 차츰 빈궁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가난을 딛고 용렬히 일어나

 

바느질과 길쌈으로 생계를 영위하는데 어머니에게 큰 도움이 되어줍니다.

 

이같은 그의 착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패가망신이 된다고 천주를 저주하고 천주교를 적대시하던 친척들

 

마저 감동을 주어 친척들을 천주교에 입교 시킵니다. 가난보다 더 쓰라린것은 마재로 피신해 온지 얼마

 

안되어 사랑하는 언니를 잃고,그때부터 남은 모녀는 가난뿐 아니라 외로움 마저 참아내야 했습니다

 

정정혜는 어려서부터 아주 총명했고 의지가 강했으며, 일찍이 동정을 지킬 결심을 굳게 하였지만

 

서른살 쯤에는 한때 마음이 약해져 강렬한 유혹의 굴레에 빠집니다.그는 유혹을 이기기위해 성인들이

 

사용하고 또 하기를 권고한 방법 즉, 기도와 대재와 편태(鞭笞)를 사용해 끝내 갈망한 승리를 얻습니다

 

정정혜는 오빠 정하상이 공드리는 선교사 영입문제가 잘 풀려  전교 신부님들이 조선에 이르기를 진심

 

으로 천주님께 간구합니다. 마침내 앵베르 주교와 두분(모방, 샤스탕)신부가 입국하자 기쁨에 넘친

 

마음으로 자기집에 모시며 정성드려 그분들은 보살핌니다. 교우들이 자주 그의 집에 모이자 정정혜는

 

그들을 가르치며 권고하여 극빈한 자 에게는 애긍시사를 하는데... 앵베르 주교는 그의 대해

 

"정정혜는 참으로 여 회장 자리를 맏을 만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와같은 신앙과 신심에도

 

불구하고 박해가 일어나자 정혜는 두려워하면서 "내게는 과한 짐이 될까봐 무섭다."고 고백합니다.

 

주교가 박해를 피해 한양을 떠나 시골로 피신해 갔을 때 정정혜는 오래 전부터 순교를 예감하고 어머니

 

와 오빠 정하상과 함께 애써 교우들를 위로玖?옥에 갇힌 이들에게는 음식과 의복을 장만해 주면서

 

순교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마침내 1839년 7월19일 어머니와 오빠 정하상과 같이 체포됩니다. 이들의

 

순교에 대해서는 전편(정하상, 유소사)에서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이하생략 ....

 

여기서 우리는 정정혜의 문초록을 살펴 보겠습니다.

 

문초록의 일부분이 보존되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재판관이 물었다

 

"네 남편은 어디 있느냐?" ......."저는 시집 간 적이 없습니다,"

 

"어째서 아니 갔느냐?".........."저같이 영락(零落)한집 딸을 누가 아내로 삼으로 하겠습니까?"

 

다음에는 포청으로 압송되어 포장 앞에 끌려나갔다.

 

"네가 천주학을 한다는데 참말이냐?"........"그렇습니다"

 

"누구에게서 배웠느냐?"............"어려서부터 어머니한테서 배웠습니다"

 

"천주를 배반하라."............ "그것은  할 수 없습니다"

 

"네 오라버니를 죽이기로 결정했다.,,그러나 네가 한마디만 하면 너도 네 어미도 다 살려주마,"

 

"여기서 내가 살려면 천주를 배반해야 할 터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포장은 그의 저항을 꺽으려고 극도로 잔학무도한 형벌을 가했으나 그는 문초를 당할 때마다

 

무수한 곤장(320도)을 맞습니다,...그러나 그는 대답 하기를..

 

" 천주를 배반 한다는 말은 저에게서는 절대로 들을수 없을 것입니다"

 

이토록 혹형 중에도 그는 조금도 흩으러지지 않는 평온한 마음으로..

 

그의 육신은 천주님께 온전히 봉헌 할수 있도록 성모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11월7일에 형조로 옮겨 문초 중 다리에 곤장을 세차례나 맞았으나 안색조차도 변하지 않는

 

그의 무감각 한것에 그 연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천주의 특별한 은혜로 장하(杖下)의 죽음을 면했습니다.

 

이제 구세주께서 받으신 괴로움이 얼마나 컸던가를 조금이나마 깨달았습니다."

 

옥에 갇혀있는 동안 정정혜는 기도와 묵상을 계속하며 함께 갇혀있는 교우들을 격려하며 위로합니다.

 

혹독한 문초끝에 끝내 사형이 선고되어 1839년 12월 29일 정정혜는 서소문 밖 사형터로 떠나면서 옥중

 

교우들에게 흉년으로 살아 갈길이 막연한 교우들을 특별히 기도 가운데 기억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처럼 그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일을 죽는 순간까지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그의 애긍심은

 

어찌 말로써 형언 할수있을련지요 ,,,서소문 밖 형장으로 끌려가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리는 수레위

 

십자가에 매달려서도 기도와 묵상을 그치지 않습니다. 마침내 형장에 이르러

 

영광스러이 칼을 받고 동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차지하니 聖女 정정혜 (엘리사벳)의 나이 43세였다.

 

끝..

다음편은.. 聖 앵베르(주교, 라우렌시오)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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