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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기독교의 위험하고 이상한 밀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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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구교형 교회개혁행동연대 사무국장(당시 분당 두레교회 목사.사진)이 지난 2002년 10월20일 개혁적 인터넷 기독교 매체인 <뉴스앤조이>에 게재한 것입니다. 2000년대 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수구언론과 기독교의 ‘밀월’ 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내용입니다. 글이 실린 지 2년이 지났으나 최근 기독교계의 움직임과 관련해 시사하는 면이 많아, 필자인 구교형 목사의 허락을 얻어 그대로 전재합니다.
조선일보와 기독교의 위험하고 이상한 밀월(?) 조선일보가 지금 기독교(특히 보수적 기독교)에 아주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는 신문, 방송, 인터넷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매체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 기독교(특히 보수적 기독교)의 입장을 변호해 줄 뿐 아니라, 심지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호와 찬사가 별로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우선 기독교 사회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이하 교회협)을 일부 진보적인 소수파만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치부해 무시하고, 그 대신 보수적인 한국기독교총연합(이하 한기총)을 한국교회의 대표라고 치켜세우며 편을 가른다. “한기총에는 현재 53개 교단과 16개 단체가 소속되어 있고, KNCC에는 8개 교단이 소속되어 있다.…내용적으로나 규모로 봤을 때 한기총이 기독교계를 대표한다.”(이근미, 월간조선 2001년 9월호) 교회협은 70-80년대 한국기독교의 인권과 반 독재운동의 맥을 잇고 있는 곳으로, 모든 시국문제에 재야의 입장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 왔으며, 이는 조선일보의 입장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기총은 일반적인 다수의 보수교단과 교회의 정치적·종교적 보수의 입장을 대변하므로 조선일보의 정서와는 더 좋을 수 없는 짝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반적인 일간신문이라고 하기엔 이상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기독교의 정신으로 시작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하고 기독교를 찬양한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그 출발이 하나님에 대한 기도로 이뤄졌고 최초의 공문서에 기도가 적힌 셈입니다.…누구보다도 건국에 공이 많았던 이박사가 그 공을 하나님에게 먼저 돌리는 겸허한 자세가 인상적입니다.…이승만 박사는 1948년 7월 24일에 있었던 제1대 대통령 취임사의 첫 문장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시작합니다.” “근대화 시기 한국의 기독교는 근대화에 필요한 직업 윤리를 확산시키는 한편으로 근대화에서 소외된 노동자, 빈민층을 돕는데 앞장섰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하나의 성역이자 센터가 되었습니다.”(조갑제, 월간조선 2001년 9월호) 분명히 국민일보가 아닌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 조선일보가 교회신문으로 바뀌었나? 그러나 이상한 점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모든 언론매체들이 한국기독교의 반사회적 태도라고 공격해 마지않았던 단군상 설치 반대에 대한 움직임조차도 유독 조선일보만은 지지한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이 이상한 편애의 이유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나타난다. 한국기독교단군상대책위원회 학술위원장 이억주 목사는 단군상과 북한의 연관성을 이렇게 말한다. “1993년까지 북한은 단군을 신화적 존재로 생각해 언급도 못하게 했습니다. 1993년 김일성 교시에 의해 가짜 단군릉을 만들기 시작, 1997년 완공했습니다. 북한은 더 이상 주체사상이 먹혀들지 않자 단군을 내세운 것이고, 통일이 되면 단군릉이 있는 평양이 도읍이 될 거라는 계산이 있었을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북한에 단군릉이 완공된 1997년부터 남한의 한문화운동연합에서 단군상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이근미, 월간조선 2001년 9월호, 145쪽) 다시 말해 조선일보는 북한이 자기 북쪽의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단군의 성역화 작업에 남한의 단군상 건립운동이 연결되는 것을 알고 북한 반대 차원에서 단군상 반대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 재평가를 통한 북한 반대 운동은 그것만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오래 전부터 신라 중심의 삼국통일의 정통성을 재확인하고, 고구려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향수는 의미없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북한이 자기들의 역사적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북방계인 단군조선-고구려-발해-고려의 계통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새삼스럽게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의 정당성을 소리 높여 외치는 진짜 이유는 역사적 고증 작업 차원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통일운동의 정당성의 근거로 삼고 싶은 것이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변화는 예측불허입니다. 만약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그 스스로의 모순 때문에 붕괴한다면 제3국이 그 공백을 이용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때가 오면 우리 대한민국은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의 결단에서 역사적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정순태, 월간조선 2001년 9월호) 그들의 역사와 세계에 대한 해석은 정말 독특하고 유아독존식이다. 조선일보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이며 월간조선 편집장인 조갑제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운명은 어떤 무대에서 노는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면이 강합니다. 김일성은 후진된 대륙문화권에서 기었고, 이승만은 선진해양문화권에서 뛰었습니다. 독재-미신-폐쇄-권력주의의 대륙성과 자유민주주의-개방-관용-과학-법치주의의 해양성은 지금도 한반도에서 격돌하고 있습니다.”(조갑제, 앞의 책, 61쪽) 그리고 그 선진해양문화로 미국과 일본을 들고 있고, 후진 대륙문화권으로는 러시아, 중국과 같은 나라를 들고 있다. 이러한 조갑제의 역사해석은 현재, 나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단순 무식성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갑제의 말처럼 좋은 면으로 본다면 해양세력은 진취적, 적극적, 모험적이다. 그에 비하면 대륙은 넓은 대륙을 연하여 있기 때문에 대체로 정체적이고 자기만족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말을 바꿔 말하면 해양세력은 바다로 둘러 쌓여 고립된 그들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훨씬 침략적이었고, 다른 나라의 유산에 관심이 많았다. 전통적인 해양강국이었던 영국이야말로 대표적인 식민지 침략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하였던 나라가 아니던가. 일본은 어떤가. 중세 이후 그들은 끊임없이 대륙진출을 꿈꾸었고(예: 임진왜란), 20세기에 들어와 일본이 중심이 되는 아시아 건설이라는 꿈을 위해 대동아 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이것은 오늘날 전통적인 우방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부터 비난을 듣고 있는 미국의 패권전략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큰 틀로 본다면 역사는 끊임없이 변해간다. 중요한 것은 그 나라와 민족이 지금, 현재 얼마나 인간성 회복과 역사발전에 충실한가이다. 똑같은 전쟁범죄국가이지만 독일은 자기반성과 역사검증에 충실하고 현재 국제사회에서의 자기역할을 비교적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독일과 일본의 지금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앞서 말한 조갑제의 “독재-미신-폐쇄-권력주의의 대륙성과 자유민주주의-개방-관용-과학-법치주의의 해양성”이라는 도식이 얼마나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멋대로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인지를 알 수 있다. 더구나 전체 인류사에 비추어 볼 때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근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서구 해양세력들이 세계를 제패했을 뿐, 그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중심은 아시아였으며 서구는 변두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선일보의 이상한 역사관, 세계관에 의외로 은혜받는 기독교인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특히 가슴아픈 일은 기독교계의 대표적 지성인 김진홍 목사마저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9·11테러 이후 설교를 통해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중국, 러시아 같은 대륙세력이 아닌 미국, 일본과 같은 해양세력과 손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최근의 미국의 패권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소장 국회의원들이 부시 대통령의 對北 발언에 항의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작성하여 美 대사관을 방문하려 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움직임은 국가 이익에 적합지 못한 움직임이라 생각합니다.…나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에서 우리 남한이 취할 태도를 다음의 다섯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줄서기를 확실히 하여야 합니다. 지난날보다 희미하긴 하나 아직도 세계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적으로 복지주의를 지향하는 열린 체제로서의 자유진영과 사회주의 내지 전체주의를 지키는 닫힌 체제 국가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하여야 합니다. 미국, 일본, 유럽으로 이어지는 개방사회 측의 가치관과 질서에 속하여 동맹관계를 맺어 나가든지 아니면 중국, 러시아, 북한으로 이어지는 폐쇄사회 측에 줄을 서든지 먼저 확실하게 선택을 해야 합니다.”(월간조선 2002년 4월호, 이근미, 인물연구 대담) 필자는 이 김 목사의 이 견해가 앞서 살펴본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의 주장과 너무 비슷하다는 데 놀랐다. ‘줄서기를 잘해야 산다’는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적어도 목사의 입에서 나올만한 설교는 아닌 것 같다. 더구나 김 목사 자신도 지금껏 하나님 앞에서 대의를 따랐지 줄서기를 잘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참 이상한 일이다. 이어서 그는 햇볕정책 자체는 지지하지만 그로 인해 국론이 분열된 것을 우려하며 현재 북한의 지원과 접촉은 북한정권 연장에만 기여할 뿐이라고 말한다. “…오라고 하지만 체제가 바뀌지 않은 한 안 가요. 들어가는 사람들이 이용만 당해요. 정권 연장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백성들이 불쌍하죠. 백성을 보면 밀어 줘야 하지만 지금은 가만히 놔두는 게 상책입니다. 체제가 망하든지 개방하든지 지켜봐야죠.…김대중 대통령이 파트너를 잘못 선택했어요.”(월간조선 2002년 4월호) 일리가 있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변하지 않는 한 접촉도 지원도 안 된다는 말은 망할 때까지 영원히 만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북한이 스스로 변하기를 기다리는가. 이것이야말로 너무 순진한 발상이 아닌가. 사실 필자는 굳이 김진홍 목사의 그런 견해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고 잘 생각해 보면 무슨 말에도 일리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슬프고도 위험한 것은 이러한 말을 다름 아닌 김진홍 목사가 했다는데 있다. 김진홍이 누구인가. 지금 온통 세상으로부터 ‘의식 없는 이기주의 집단’처럼 비치는 한국기독교의 현실에서 그나마 몇 안 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보여지며 교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대표적 기독교 지성으로 드러나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가 있음으로 그래도 같은 신앙인이라는 게 부끄럽지 않았다고 고백할 사람들은 단지 필자 뿐 아닐 것이다. 적어도 “김진홍 목사가 말했다면 옳다”고 받아들일 성도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논리가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편견과 강대국 패권주의에 물든 견해를 하나님의 지혜인 것처럼 설교하고 또 잡지를 통해 부연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의 견해가 조선일보의 악한 술수에 분명히 이용되고 있음을 한탄할 뿐이다. 다시 확인하건대 조선일보는 분명 의도적으로 기독교에 접근하고 있고, 그 사악한 밀월이 세상의 힘에 의지하여 기독교 왕국을 재건하려는 불순한 동기로 이어지고 있음에 가슴 아플 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조선일보가 기독교를 추켜세워 올려주는 정말 본심은 무엇인가. 마침내 조선일보의 대표적 논객 조갑제는 편애, 긍정, 지지를 넘어서서 본격적인 지시를 내리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기독교야말로 “사랑의 종교”라고 치켜올렸으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증오와 미움을 넘어 공격을 부추기고 있다. “사탄의 제자로서 스스로 우상이 되어 하나님에게 도전한 김일성·김정일 광신교를 한반도에서 제거해야 하는 임무는 기독교에 부여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조갑제) 그들은 월간조선의 기독교의 반공운동이라는 기획특집을 선정하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이렇게 제목을 뽑았다. “개신교 보수 교단의 반공궐기 움직임 내막-친북세력에 대항할 세력은 반공기독교뿐”(이근미) “1만명의 목사, 300만명 기독교인만 의식화되면 적화 막는다“ “한국 기독교의 주류 장로교단의 반공운동단체 설립 배경-반공기독교 세력의 행동 개시를 상징” 그리고 이러한 의도적인 편집을 총지휘한 조갑제 편집장은 마치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80년대 운동권의 행동강령 같은 흥분된 논조로 이렇게 자기의 속내를 밝히고 있다. “국민들이 색깔 싸움에서 이기려면 우리사회의 표현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국민들은 다른 표현방법을 개척, 개발해야 한다.…애국세력은 돈이 많은 편이므로 그 돈으로써 신문의 광고란을 사고 여기에 계속적으로 김정일 비판문을 게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애국 세력이 갖고 있는 단체들(기업, 학교, 교회, 성당, 사찰, 동창회, 동향회, 계모임)을 의식화시켜 김정일 타도 멸공 운동에 나서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조갑제, 앞의 책) 이것이 바로 조선일보의 의도적인 친기독교 정책, 보수 기독교계에 접근한 의도이다. 그리고 우연치곤 놀랄만큼 이런 조갑제의 시나리오가 많은 곳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조갑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 기독교는 반 북한, 반 김대중 운동이라는 자기들의 지상목표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전위부대로 선정된 것이다. 한국기독교의 존재 이유는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기독교 이용과 기독교 지도자들의 조선일보 활용이 이미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 2001년 8월 1일 미스바2001운동본부(총재 신현균 목사, 상임본부장 김한식 목사)는 서울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개최한 ‘미스바 비상구국기도성화’라는 것을 개최했는데, 여기에 연사로 초대된 사람들은 전형적인 현정부의 통일정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주자들이었다.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 강력한 반 김대중주의자 지만원 박사, 그리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측근실세인 황우여 의원 등이다. 미스바 구국성회라는 기독교 이름의 집회를 개최하면서 시종일관 현정부와 통일정책을 비난하는 주최측은 바로 조선일보와의 합작운동이었다. 연사 중의 하나였던 지만원 박사의 입에서 “경제 망해서 국민들이 하루빨리 김 대통령에게 돌팔매질하는 것이 자신의 기도제목”이라는 말을 듣도록 하는 게 과연 주님의 이름으로 개최된 구국기도회라고 할 수 있는가? 이에 앞서 7월 21일에는 한국교회 지도자급 인사 56명의 명의의 ‘정의구현실천협의회’라는 단체의 성명서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실렸고, 8월 17일에는 ‘시민과 함께 하는 대학생 연대’라는 조직이 광화문 부근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이 단체 대표를 포함한 대부분의 참석학생들은 서울 개포동 두레교회(담임목사 남용우)에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이상 뉴스앤조이 참조). 이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거의 비슷한 인사들이 주도가 되어 거의 비슷한 주장을 갖고 일련의 시위를 벌인 것이며 그 활동들은 조선일보와 연결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현정부의 통일정책은 친북, 용공행위다’, ‘언론사 세무사찰은 언론탄압이다’라는 것으로 그 동안 조선일보가 주장해온 것을 교회의 이름으로 복사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바로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이미 살펴본 월간조선 2001년 9월호에 한국기독교의 이름을 빌린 조선일보의 주장이 특집으로 실린 것이다. 조선일보의 기독교에의 유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간지로는 유례없이 특정종교 지도자를 광범하게 소개하는 단행본을 연이어 내 놓는다. 조선일보는 김장환 목사(수원중앙교회 담임/극동방송 사장)의 일대기를 그린 <그를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온다>와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목회자 25명의 설교를 묶은 <사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를 출간한다. 필자가 어떤 작업을 위해 참고하기 위해 뒤늦게 월간조선 2001년 9월호를 구입해 들쳐보는 순간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 기묘한 현상들을 발견하고서 필자는 너무나도 답답했다. 필자는 목사님들이 나서서 안티조선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미 지성인들 사이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선일보의 입장에 암묵적으로 무게를 실어주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법 한다 하는 양심적인 지식인 그룹들이 왜 유독 일개 일간지인 조선일보를 반대한다고 나섰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선일보는 단지 일개 일간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햇볕정책을 반대하고, 대북 지원 중단하고, 대북 강경정책과 친미정책과 보수회귀가 바로 한국기독교의 힘을 빌어 이루고 싶어하는 조선일보의 꿈이다. 조선일보가 유독 한국보수 기독교를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정치적, 문화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갖고 반공을 표방하는 한국기독교는 조선일보의 입맛에 딱 떨어지고, 최근 들어 대 사회적인 소외감에 시달려 오던 기독교의 입장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조선일보와 가까워지는 것을 결코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둘 사이에는 공감대가 많다. 종교적 보수성-문화적 보수성-정치적 보수성-과거 회귀에 대한 향수-반공주의 등. 그러나 대단히 슬프게도 이러한 불순한 연대는 지금 당장은 감정적 만족을 얻게 해 줄지는 모르나, 결국은 세상으로부터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보수-수구-과거회귀-위선-기득권’의 모습으로 굳혀주는데 기여할 것이고 기독교세 및 영향력 감소라는 추세에 가속도를 붙여줄 것이다. 지금까지의 필자의 말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간다면 월간조선 2001년 9월호를 통해 그 글들과 편집의도 등을 직접 확인해 보고 월간조선 사이트에 들어가 그들이 낸 도서들의 목록을 살펴 보라. 이 부분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고 싶다. 앞서도 말했지만 조선일보는 이상하게도 유독 일본과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그 어떤 좌익도 용납할 수 없고, 고위층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서슬이 시퍼런 비판을 아끼지 않는 조선일보는 유독 친일파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그 때는 누구나 어쩔 수 없었다. 이완용을 비롯한 이미 알려진 을사 5적 정도의 악질 친일파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파고드는 것은 민족화해와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바로 친일을 기반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신문재벌이기 때문이다. 올 3월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명단에 대한 이들의 반대논리는 참으로 기괴한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반대논리는 크게 보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정말 친일파 청산작업을 하려면 객관적인 학자들에게 맡길 일이지 왜 정치인들이 나서서 하느냐는 것이다. 이 말은 정치인들이 자기 정치적 의도에 따라 벌인 일이므로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럴 듯 하지만 이는 현실을 일부러 모른 척하는 속임수다. 사실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는 더 늦기 전에 친일청산 작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그들이 몸담고 있는 학계 역시도 친일파 또는 그들의 후예와 제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그 작업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오죽하면 죽으면서까지 친일청산 작업을 펼쳤던 재야학자 고 임종국 씨가 평생을 두고 펼친 친일파 명단 작업조차 조선, 동아일보는 물론 힘있는 사람 중 누구하나 거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학자가 해야만 수용할 수 있다는 말은 자기 과거를 숨기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 우선 이런 민감한 일들이 불거질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반대논리가 객관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도대체 어느 정도가 되어야 객관적인 것일까? 5,000만 명 가까운 한국인들 전부가 다 동의해야 객관적인 것인가. 천황폐하의 자손답게 학병이고, 징용이고, 군대위안부고 부르는 대로 나가서 충성하라고 외쳤던 사람, 신문 팔아 비행기고 군수물자고 닥치는 대로 헌납했던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부르는 게 무슨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한 일일까? 그러므로 객관성 운운하며 이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분명 속임수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도 말한다. “그 때 누구든 조금씩이라고 친일 안한 사람 있나? 이완용 같은 적극적 친일파야 청산해야 하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협조했던 것은 이해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말이다. 경중을 가려라? 물론 그 말도 옳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언론이라는 대중매체를 통하여 무고한 백성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 몰고, 전쟁 물자를 헌납한 사람들도 그것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말한다면 이완용과 을사 5적도 왜 할 말이 없겠는가? 이처럼 강압에 못 이겨 신사참배하고, 창씨 개명한 일반 백성들과 자기들의 친일행위를 동일시하려는 뻔뻔함이야말로 바로 속임수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뜻도 모르고 동조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필자가 말한 지금까지의 주장에 일리 있다고 공감하신다면 제발 조선일보를 끊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구교형 / 목사, 분당두레교회 2002년 10월 20일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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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202 | 묵주기도의 힘|3| | 2004-10-07 | 양대동 |
| 72200 | 조선일보와 기독교의 위험하고 이상한 밀월(?) | 2004-10-07 | 박정욱 |
| 72199 | 조갑제 "한나라당은 정당 아니다" 맹공 | 2004-10-07 | 박정욱 |
| 72198 | 성모님의 삶을 본받아 | 2004-10-07 | 양대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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