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어제(8일) 총 33명의 피붙이 겨레붙이 인연붙이 및 친지들에게 띄운 '가족 메일'입니다. 굿 뉴스 게시판 여러분께 제 근황을 전할 겸 참고로 보시도록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공덕사에서 절밥을 먹다
†. 사랑·평화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모두에게.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어서 가을의 '쾌청'을 시샘하고 있는 날씨일세.
오늘은 <과거사 정리, 그것이 왜 필요한가>라는 이름의 글을 하나 쓰려고 하네. 역시 잡문이긴 하지만 상당히 긴장이 요구되는 작업이어서 다소 중압감을 겪기도 하네. 그 작업을 하기 위해서 호흡 조절을 할 겸 이 편지부터 먼저 쓰기로 했네.
어제는 오전에 태안장로교회와 태안문예회관과 태안 조계종 공덕사를 방문하는 일을 했네. 11월 14일(주일) 저녁으로 변경 확정한 우리 태안 본당 '40주년 경축의 밤' 행사와 관련하는 일 때문이었네. 원래 11월 6일(토요일) 저녁에 행사를 갖기로 하고, 태안장로교회 찬양대와 공덕사 찬불대, 그리고 태안군합창단을 초청하는 협조 공문을 만들어 내가 지난 9월 23일 직접 세 곳을 다니며 전달하는 일을 했는데, 날짜 변경에 따라 다시 한번 방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네. 태안군합창단에는 김명식 단장(도서출판 <한솔기획> 사장)과 다시 통화를 했네.
★태안장로교회 방문 이야기
먼저 오전 10시경 태안장로교회를 방문했네. 옛날 1970년대 중·후반 서울에서 노동자 생활을 할 때 종로 5가 기독교회관 2층 대강당에서 매주 열리곤 한 '박정희씨의 회개를 위한 금요기도회'에 자주 참석하곤 했지. 그때 개신교 형제들과도 잘 어울렸고…. 그 동안 이런저런 일로 개신교의 예배에는 여러 번 참례한 적이 있지만, 태안장로교회 방문은 지난 9월 23일이 처음이었고, 사무실 안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교회 관계자와 오래 얘기를 나누어보기는 어제가 처음이었네.
태안장로교회 사무실에는 부목사님과 내년에 목사 안수를 받을 전도사로서 사무장 역할을 하고 있는 분이 함께 있더군. 그런데 나이도 먹은 사람이 정장을 하고 갔는데도, 부목사라는 분이 그냥 앉은 채로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더군. 내 얼굴을 기억하는 전도사 사무장님은 왠지 다소 경직된 표정이었고….
나는 남제현 당회장 목사님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여서(<태안신문>에 오래 같이 글을 쓴 인연으로 태안군의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만나게 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처지여서) 남 목사님과 만나기를 바랐네. 하지만 남 목사님이 출타 중이어서 부목사님과 대면을 하려고 했더니 그는 급히 가야 할 데가 있다면서 곧 자리를 피하더군. 그런데 부목사라는 젊은 양반이 사무실을 나가면서 손님에게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더군. 그런 무례야 누구에게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게 혹 천주교 신자에 대한 적의 때문이 아닐까 싶어 괜한 불안감을 갖게 되더군.
결국 전도사로서 사무장 일을 하시는 분과 마주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네. 나는 어느 정도 화술이 있는 편이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조리 있게 할 수 있었네. 처음에는 다소 경직된 표정이었던 그분도 나중에는 밝은 표정이 되어서,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끝까지 '담소(談笑)'를 유지할 수 있었네.
나는 주일 낮 예배와 저녁 예배, 두 번의 예배 참석이 의무로 되어 있는 개신교 형제님들의 사정을 잘 알면서도 우리가 14일 주일 저녁으로 날짜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던 고충을 설명하고, 우리 행사가 종교행사가 아닌 문화행사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특히 우리 행사에 불교 신자들도 참석하는 것에 대해 개신교 쪽에서 거부감을 갖지 않고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설득을 했네.
"천주교 행사에 개신교 찬양대가 와서 하나님 찬양노래를 한 곡 들려주고, 태안 성당 40주년을 축하하는 노래도 하나 불러주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겠습니까. 이런 기회에 불교 찬불대의 찬불 노래도 하나 들어보고 그들의 축하 노래를 듣는 것은 또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 사실이 지역사회에, 또 다른 지역에도 널리 알려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지역의 종교계를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보겠습니까. 훗날 태안장로교회에서 비슷한 행사를 할 때 우리 태안 성당 성가대를 초청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들 외에 내가 과거 흙빛문학회장 시절 만리포 장로교회 주일 예배에 초청 받아 가서 강론을 했던 일, 천주교의 성당들 중에는 개신교의 목사님이나 불교 스님을 초청하여 주일 미사 때 설교나 설법을 듣는 일도 종종 있다는 얘기도 했네. 우리 신부님이 직접 오셔야 하나 현재 대전교구 사제 피정 중이시라 내가 대신 왔다고 하니 그 전도사님이 '피정'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표하셔서 피정에 대한 설명도 해드렸네. 또 천주교 사제들의 은퇴 시기, 은퇴 후의 생활, 성당 사무장들에 대한 처우 등에 대해 관심을 표해서 두루 설명을 해주었네.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내 소설가 신분도 밝혀지게 되고, 문학에 관한 얘기를 하다보니 놀랍게도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 분이 나의 처녀 작품집인 1984년의 <신화 잠들다>를 들어본 기억이 있다고 하시더군. <신화 잠들다>가 평론가들에 의해 그 해 일간지들의 문학결산 총평에서 그 해의 수확 중의 하나로 꼽히긴 했지만…. 벌써 20년 전의 일일세.
나는 마지막으로, 내년에 혹 태안장로교회(현재 '노회' 교회이므로)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시게 되면 꼭 연락을 해달라고 했네. 꼭 참석해서 축하를 드리겠다고…. 그리고 우리 천주교는 주임 신부님과 사무장이 누구보다도 긴밀한 사이여서 신부님이 사무장의 의견을 많이 수용해주신다는 말과 함께 현재 태안장로교회 사무장 일을 하시는 전도사님이 목사님과 장로님들께 말씀을 잘 드리면 우리 행사에 태안장로교회 찬양대를 보내 주시는 일은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다는 말을 하니, 그 분이 웃으면서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고 하시더군.
이렇게 해서 현재로서는 우리 본당 '40주년 경축의 밤' 행사에 태안장로교회 찬양대가 참석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 같네. 내가 우리 본당 초유의 큰 행사에 준비해야 할 일도 많으니 가급적 참석 여부를 빠른 시일 내에 알려달라는 부탁도 했고….
★태안 조계종 공덕사 방문 이야기
태안장로교회를 나와 곧바로 조계종 공덕사로 갔네. 사찰 앞에 차량들이 많았는데 법당 안에서 한창 예불이 진행되고 있더군. 어느 돌아가신 분의 49제가 올려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공덕사를 나와 태안문예회관으로 갔네. 나를 꼭꼭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담당 직원 윤광재씨를 만나 11월 14일로 변경 확정된 우리 행사의 내용을 대략 설명해주고, 대공연장 '사용일 변경 신청서'를 작성해 주었네. 그들은 쉬는 날인 일요일에는 행사를 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공덕사로 가서 법당 가까이에서 49제 예불 장면을 자세히 보았네. 공덕사를 안에 들어가서 자세히 보니 법당이 꽤 규모 있고 아름답더군. 고향에 몸을 놓고 오랜 세월 살면서도 우리 동네(동문리 읍내권)에 있는 공덕사의 법당을 보기는 처음이라는 사실에 괜히 면구스러워지는 느낌이 들더군.
오늘 49제의 주인공은 남면 당암리(천수만)에서 낚시가게를 운영하던 아무개(49세)씨. 멍텅구리배(바다 한 곳에 고정적으로 떠 있는 엔진이 없는 배) 위에서 낚시를 한 사람들을 배에 태워 데리고 나오는 일을 하다가 배가 암초에 부딪치는 순간 뱃전에 머리를 부딪쳐서 뇌진탕으로 사망을 했다더군. 이윽고 49제가 끝날 즈음 유족들의 오열하는 소리를 듣자니 마음이 슬퍼지고 숙연해져서 나도 모르게 성호를 긋지 않을 수 없었네.
49제를 마치고 법의를 벗은 주지스님이 나를 보고 반가워하시더군. 대뜸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태안 성당 행사에 기꺼이 참석을 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나는 고마움을 표하고, 날짜 변경 사실을 말씀드리니 또 걱정 말라는 대답.
오래 있을 필요가 없어서 곧 나오려고 하니 주지스님이 내게 점심 식사를 하고 가라고 하시더군. 그러잖아도 배가 고픈 참에 식당에서 여러 불도님들이 식사를 하는 것을 보니 목구멍으로 꿀꺽 침이 넘어가더군. 곧 주지스님, 또 한 분의 스님과 한 자리에 앉아 절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네.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절밥을 먹어본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 고등학생 시절 해인사에 가서 절밥을 먹은 이후 수십 년만이지 싶고….
밥이 하도 맛이 좋고 고기 없는 음식들이 한결같이 맛깔스러워서 절제가 기본인 당뇨 환자가 포식을 했네.
★기타 사항
*태안군합창단은 오늘 전화로 확인을 해보니 참석이 어려울 것 같네. 단원 중에 개신교 신자들이 많고 또 목사 사모들도 여럿이어서 주일 저녁 예배를 놔두고 어딜 가느냐는 의견에다가 더욱이 불교 신자들도 함께 하는 행사에 어떻게 참석하느냐는 의견도 없지 않아서 일단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고 하네.
*연기군 전의면에 있는 대전가톨릭대학교 안의 '정하상회관'에서 지난 월요일부터 대전교구 사제 피정이 진행되고 있네. 좀 전에 우리 신부님에게서 내게로 전화가 왔네. 우리 대전교구 부교구장이신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도 함께 피정을 하시는데, 오늘 오전에 피정이 끝나면 우리 신부님이 유 주교님께 우리 본당 '40주년 경축의 밤' 행사 계획을 말씀드리고 주교님 참석을 부탁드려 보겠다고 하셨네.
일년 전에 다음해의 스케줄을 모두 잡아놓고 그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시는 주교님께서 예정에 없던 행차를 해주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일 주교님께서 참석하신다면 11월 14일 오후 6시에 1부로 주교님 집전의 경축 교중미사를 지내고, 7시부터 2부 경축의 밤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을 짜야할 것 같네.
주교님께서 참석하셔서 경축 교중미사를 집전해주신다면 정말 금상첨화가 될 것 같네. 이 글을 쓰면서도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네.
*소설가 권태하 사돈형님으로부터 며칠 전에 의미 있는 메일을 받았네. 현재 캐나다에서 말년을 보내시는 노 사제 고종옥 마태오 신부님에 관한 내용일세. 부분적인 사항이긴 하지만 그것을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이 편지에 동봉을 하겠네. (권태하 사돈형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 아내가 엊그제 '통일연수'를 마치고 태안의 동료 교사들과 함께 승용차 편으로 내려왔습니다. 제가 서울에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돈형님 내외와 우리 부부의 합석을 소망하신 사돈형님께 감사합니다.)
*어제 웹사이트에 올린 <교회 때문에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교회와 역사》10월호에 게재된 <신앙심과 분별심의 조화>)가 오마이뉴스에서 조회수 1만을 넘고 있네. 지난번 편지에 첨부파일로 보낸 <추석을 돌아보며 갖는 감회들>이 미국 세레나의 경우 바이러스 감염으로 자동 차단되어 열어볼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다시 보내지 않을 테니 내 홈피나 손쉬운 사이트에서 읽어보기 바라네.
<과거사 정리, 그것이 왜 필요한가> 잡문 작업은 오후에 해야 할 것 같네. 오전에 이 편지를 쓰던 도중 몸을 움직이기도 해서….
이만 줄이네.
(041008)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