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그 성격이나 특징을 스스로 참여정부라고 명명하였다. 참여정부의 참 뜻은 모든 국민의 정치참여를 보장하고 권장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정책결정에 반영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정치는 여론정치라는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수준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대다수 국민의 일반의지에 따라서 정치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바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것을 새삼 거론해야 할 입장이 되었다. 정부가 민심의 소재를 잘 파악하여 국정에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지름길이라는 사실도 일깨워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참여정부는 국민여론을 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에 일관성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 차별성과 모순이 발견된다. 여론 평가의 잣대가 이헌령 비헌령이다. 정부여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여론, 정부여당에게 유리한 여론, 젊은층의 여론, 좌파적 성향의 여론은 높게 평가하고, 그것을 진정한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 정부여당에 불리한 여론, 원로들의 여론, 보수적 성향의 여론은 무시하고 폄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입맛에 맞으면 국민여론이고, 그렇지 않으면 수구 꼴통들의 반개혁적 정부 발목잡기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코드여론은 진정한 여론이고, 반코드 여론은 여론 취급을 하지 않는다.
예컨대 지난 9월 초 1,000여명이 넘는 각계 원로들의 “국보법폐지, 수도이전, 과거사청산 중단 촉구” 시국선언에 대하여 정부의 고위인사는 원로들과 유신을 연계시키고 원로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지난 10월 초에도 경찰추산 10만여 명의 시민이 시청 앞 광장에 모여 국보법 사수를 외쳤다.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최대 규모의 정권 반대 집회다.
그런데 이를 두고 여당의 어떤 인사는 “꼴보수들의 집합”이니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측을 “반민주”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탄핵반대 촛불 시위 등은 진정한 민의라고 높게 사면서 정부정책을 반대하는 집회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가?
보수 원로인사들은 집단행동을 통하여 이익을 표출하는 노하우가 젊은 좌파적 성향의 인사들에 비하여 뒤 떨어질 것이다. 보수 원로 인사들은 사이버 여론을 주도하는 N세대와 비교할 때 민심 표출과 집약의 기술적인 방법이 서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수 원로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표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국민은 누구나 재산, 납세액, 소득, 직업, 신분, 성별, 종교, 이념 등에 구애받지 않고 1인1표를 행사하는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표에 대하여 등가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인이든 원로든 보수층 인사든 그들의 주장이나 요구가 국민다수의 여론이라면 젊고 좌파적인 성향의 목소리와 똑 같이 대접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적과 동지로 나뉘어 권력게임을 하는 측면이 강하다 하더라도 같은 나라 같은 국민을 누구는 중요한 국민이고, 누구는 무시해도 상관없는 국민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코드가 맞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는 여론 취급을 하지 않고 코드가 맞으면 맞장구를 치는 일이 참여정부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아전인수 격으로 여론을 팔고, 어떤 경우에는 여론을 깔고 뭉개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모습은 참여정부의 기본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 구미에 맞지 않는 여론이라도 뱉지 않고, 입에 쓰더라도 국민 다수가 원하면 존중할 줄 아는 것이 민주정부의 참 모습이 아닌가?
홍 득 표(인하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