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북한 인권을 뜨거운 감자로 인식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지난해 유엔인권위원회의 북한 인권결의안 의결에 불참하고, 남북관계만을 강조하는 동안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주도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결국 올해 한국의 기권하에 유엔인권위원회는 더욱 강력한 북한 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또 미국은 의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최종 서명함으로써 공식 발효하게 됐다.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적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가 외교적 수사를 남발할 게 아니라 북한 인권문제에 전향적으로 접근했다면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주도할 수 있었다. 또 유엔과 미국, 유럽 국가의 인도적 지원과 협력을 적극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미국이 북한 인권 정책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본격적으로 대북정책의 중요한 카드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노무현 정부의 입지는 훨씬 줄어들게 된다. 결국 미국과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압력을 거부하지도 못하고, 북한 정권에 인권개선을 촉구하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과거 친북적 유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386운동권 출신들이 정당과 시민단체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노무현 정부와 호흡을 맞추면 맞출수록 대북정책에서의 주도권과 대외적 공신력은 떨어질 것이다. 1980~90년대 대학가 운동권은 김일성 사상이 풍미하던 시절이었다. 대학가 운동권 조직 대부분이 김일성파에 의해 장악돼 주체사상과 회고록, 북한 서적이 광범위하게 읽혔다. 김일성파는 김일성 신년사와 대남전선기구인 한민전의 발표 내용에 따라 한 해의 투쟁노선과 전술을 수립했다. 김일성과 한민전 노선에 누가 더 충실한가가 정책의 정당성과 혁명성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수령님.장군님.지도자 동지라 통칭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여기고 있었다. 북한이 남한에 있었던 것이다.
사회주의권 붕괴로 김일성파에는 인식 전환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들은 북한이 주장하는 '사상과 주체를 바로 세우지 못해 사회주의가 붕괴됐다'는 인식에 동의해 수령숭배와 주체사상, 우리식 사회주의와 자주노선을 지지했다. 이런 사람들이 친북적 유습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386운동권 출신 중 지금도 김일성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 중층적으로 형성됐던 김일성 숭배와 친북 성향은 사회.역사의식과 감정에 짙게 배어 있다. 필사즉생(必死卽生)이라 했다. 친북적 성향을 떨어내기 위해서는 과감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대북정책에서도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북한 정권의 과감한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동시에 자유와 인권신장을 요구해야 한다. 북한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유린의 행위는 빵만을 던져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김일성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은 한국과 북한 주민에게 참회의 눈물을 흘릴 만큼 사회정치적 부채를 안고 있다. 이제 인간의 생명을 귀중히 여겼던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내정간섭이나 남북관계 개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인간의 생명을 귀중히 여겼던 인권 정신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야 한다. 목전에서 죽어가는 형제들을 구출하는 일에 지금 나서지 않는다면 앞으로 역사와 민족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더 이상 독재자, 인권탄압 가해자의 편에 서는 잘못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솔직해져야 한다. 자신의 과오가 있다면 용서를 구할 일이다. 한때 김일성파였노라고 밝히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면 국민은 용서하리라 믿는다.
국민께도 부탁하고 싶다. 북한 주민의 생명과 자유.생존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후원자가 돼주셔야 합니다.
2004.10.21 18:49 입력 / 2004.10.22 09: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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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시론] 386, 북한 인권 외면 말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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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386, 북한 인권 외면 말아야
허현준 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위원 한총련 전 중앙집행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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