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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구 선생님을 대신해서... 순교자 시리즈 聖 조신철 가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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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원 [dizimon] 쪽지 캡슐

2004-10-27 ㅣ No.73638

 聖 조신철 가롤로(1839년 9월 26일 순교) 

 

 정하상, 유진길 등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면서 목자없는 조선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노력하였던 사람이 조신철 가롤로로 9월 26일에 순교하였다.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의 남편이며, 성 최창흡 베드로와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의 사위이다. 


 조신철 가롤로는 강원도 회양에 살던 외교인 집안에서 1795년에 태어났다. 다섯 살 때에 모친을 여의고 얼마 안되는 재산마저 부친이 탕진하여 버리자 어린 그는 할 수 없이 절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몇 해를 생활하였다. 그 후 절에서 내려와 이집 저집으로 머슴을 살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북경을 왕래하는 사신의 하인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때 그의 나이는 23세였다. 정직하고 용감했던 그는 사신들로부터 여러 하인 중에 제일 신임을 받아 칭찬을 듣게 되고, 여러번 북경을 왕래하는 동안 모은 돈으로 아버지와 형제들을 먹여 살렸다.

 

 이 때 사신을 따라다니던 유진길과 정하상이 그의 착실함을 보고 그를 장차 조선 교회의 큰 일꾼으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에서 그를 어떤 신자집에 몰래 불러 며칠 동안 계속해서 가르쳤다. 비록 처음에는 쉽게 풀어주는 교리조차도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거듭하는 과정에 그는 성교의 도리를 깨닫게 되고 천주를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얼마 후 그는 유진길과 함께 북경으로 가서 신부님를 만나보고 세례와 견진과 성체를 받아 모시는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귀국 후 가롤로는 열심히 천주를 봉행하였고, 겸손하고 인내하며 애긍시사(哀矜施事)로써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며, 외교인들을 천주교에 입교시키는데 힘섰다. 또한 완강히 입교를 거부하던 아내를 권유하여 입교시켰으나, 불행히도 그 아내가 죽었다. 조 가롤로는 열심한 신자와 재혼하여 살았는데, 그 부인이 곧 최영이 바르바라이다.

 

 가롤로는 비록 비천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조선 천주교회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그 결과로 성직자들이 입국하여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조선말을 모르던 모방 신부 통역관이 되어 지방 전교 사업게 크게 이바지 하였다.

 1839년 봄, 북경에서 귀국하던 어느날 꿈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는데, 베드로 성인과 바오로 성인을 거느리고 타볼산에 나타나시어 "금년에는 순교하는 은혜를 너에게 주노라" 하시는 것을 두 번이나 보고 나서 그는 땅에 엎드려 감사드렸다. 서울에 돌아온 그는 이미 박해가 시작되어 몇 명의 신자들이 순교하게 된 것을 알고 그 신비로운 꿈이 오래지 않아 그에게 현실로 나타나리라는 것을 깨닫고, 아내에게 "우리도 천주님을 위하여 순교자가 됩시다"라고 말하며 서로 격려하였다.

 

 그 해 7월 어느날, 가롤로가 외출한 사이에 포교들이 그의 집을 습격하여 그의 가족과 셋방살이 하던 몇 사람을 잡아갔다. 마침 집에 돌아온 가롤로는 곧 그들의 뒤를 따라 포도청으로 달려가서 스스로 잡혀온 사람들의 가장이라고 말하여 고문을 받게 되었다. 포도대장이 그의 집에서 압수한 종교서적과 묵주, 성패의 유래를 물으니 가롤는 자신이 북경에서 구하여 온 것이라고 대답하였을 뿐 그 밖의 물음에 대하여서는 입을 다물었다. 이에 형리는 그의 팔과 다리를 묶어서 대들보에 매달고 닥치는대로 매질을 하였으나 역시 별다른 말을 듣지 못하였다.

 앵베르 범 주교가 잡히게 되자 가롤로는 그와 함께 신문을 받게 되었는데 줄톱질, 세모방망이 매질 등 온갖 형벌을 받았다. 이와 같은 혹형을 네차례나 당하였으나 그는 오직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가롤로의 이와 같은 태도에 놀란 재판관들은 어이가 없어 "저 사람의 몸은 살이 아니고 목석인가 보오"하며 서로 수근거리기까지 하였다.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잡히자, 가롤로는 이들과 함께 의금부로 보내져서 3일간의 고문과 매질을 받고 드리어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는 자기를 형장으로 싣고갈 수레를 타기 전에 옥리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국으로 먼저 가서 기다릴 터이니 모두 용기를 내어 따라오도록 하라고 나의 가족들에게 전해주시오"라고 하며 회색이 만면하여 출발하였고 가는 도중에도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서소문 밖에 이르러 수레 위의 십자가로부터 풀려내려질 때에 그는 많은 구경꾼들 속에 끼어 있던 외인 친척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미소로 인사한 후 45세의 나이에 참수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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