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恨 풀렸을지 자신없어
아직 계속되는 '魔女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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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수십 군데 칼을 맞고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 이승복의 형 이학관씨의 증언은 몸서리쳐지게 생생하다. “숙제하고 있는 승복이 옆에 앉더니… ‘니 그러면 북한이 좋냐, 남한이 좋냐’ 물으니까 승복이가 ‘우리는 죽어도 북한은 싫다, 공산당은 싫다’ 이러니까 한 놈이 ‘악’ 소리를 지르더니 승복이 멱살을 잡고… ‘이 새끼, 공산당이 싫으니’ 아가리에 칼을 집어넣고 이렇게 찌르고 찌르고….” 이웃 최순옥씨의 증언은 더 처절하다. “…혀도 반쪽이 끊어졌어요. 입이 덜렁 떨어지고, 저승에 가서라도 어떻게 밥을 먹느냐고 그러면서 내가 끈을 묶었다….”
이 몇 장의 사진과 증언들은 ‘이승복 사건은 조작’이라는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의 집요한 공세가 얼마나 악의와 허구에 찬 것이었는지를 명료하게 입증한다.
1992년 ‘이승복 사건 조작설’을 처음 제기한 이른바 ‘언론개혁 운동가’들은 이후 ‘공산당이 싫어요’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자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기자는 현장에 가지 않았다”는 쪽으로 교묘히 쟁점을 바꿔 공격을 계속했다. 언론의 역할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현장에 갔느냐 안 갔느냐를 30여년이 지난 지금 따지는 것보다 이런 사실을 어떤 경로로든 신속히 취재해서 알린 공로를 칭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은 상식을 외면하고 ‘조선일보는 현장 취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도는 가장 정확했다’는 자가당착적 논리를 고집했다. 현장 취재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사진 원본 필름이 나오자 이번엔 “어디선가 얻었을 것”이라는 생떼를 썼다.
도대체 무얼 위해 그토록 ‘공산당이 싫어요’를 ‘허구’로 몰려고 애쓴 것일까? ‘공산당이 싫어요’를 없었던 일로 만들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을 리는 없으며, 입이 찢겨 마땅할 다른 불손한 말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조작설 최초 제기자는 한 잡지에 “이승복이 남겼다는 외마디 절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그 한마디에 4000만은 공산주의자를 ‘인두겁을 쓴 짐승’ 정도로 여겼고, 북한을 ‘철천지 원수’로 대해 왔다”고 썼다. 의문에 대한 답은 여기 있는 것 같다. 영양 실조로 배만 불룩 튀어나온 어린 아이들을 잔인하게 도륙한 만행을 부각시키는 것보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차단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믿었다면, 이 의문은 자연스레 풀린다.
장장 6년에 걸친 재판에서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다가 입이 찢겨 죽었다는 보도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판명됐다. 그러면 이제 이승복의 한(恨)은 풀린 것인가? 언젠가부터 슬며시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심지어 ‘가공 인물’이라는 모욕까지 받아야 했던 지하의 이승복은 이제 편히 쉴 수 있게 됐는가? 아직은 회의적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제2, 제3의 이승복들이 도처에서 핍박을 받고 있다. 북한은 민족 정통세력으로, 남한은 친일 숭미세력으로, 김정일은 식견 있는 지도자로, 역대 남한 지도자들은 반민족 독재자로, 국보법 합헌을 결정한 헌재는 기득권 야합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거대한 흐름이 지금도 수많은 이승복을 만들어내고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
이런 속에서 한 달 남짓 후면 그의 36번째 기일(忌日)이 온다. 이번 재판으로 그 불쌍한 영혼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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