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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전 18, 聖女 허계임 (막달레나1772~1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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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女 허계임(막달레나)은 1772년 용인 외인 부모 집안에서 출생합니다.
또한 외인으로 시흥군 동면 봉천리에 살던 이씨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사는데,
이들은 기해년 7월 20일과 9월 3일에 순교한 이영희 (막달레나)와 이정희 (바르바라)입니다.
허 계임은 결혼 후 시누이 이매임(데레사)으로부터 신앙을 본 받으면서 비로써 천주교를 알게 됩니다.
그는 남편으로부터 아들 없음을 늘 구박받고 살면서도..
"나는 열심히 천주님만 믿다가 죽는 길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 합니다.
그러나 후에 남편의 성화에 양자를 들였고 며느리까지 맞아 드렸습니다.
남편은 완고한 외인으로 천주교를 몹시 싫어하여 허계임의 수계 생활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방해하려 합니다. 어느 날은 남편의 상상을 초월하는 난폭함으로 가족의 생명까지 위협하며
천주교를 믿지 말기를 협박하자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앞으로는 믿지 않겠습니다." 하며
결국 가족의 안위를 위해 굴복 함으로 목숨을 보존 합니다. 그후 이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후회하며
스스로에게 부끄럽게 생각하며 살아 갑니다. 그래서 그후로도 계속 남편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으나
더 이상은 굽히지 않고 열심히 수계 생활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남편을 입교 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결국 1838년 남편이 임종하게 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허사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어려운 형편에도 남편 몰래 신앙을 지키며 두 딸을 입교시킨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에 힘입어 두 딸( 이정희 , 이영희)이 훗날 장한 모습으로 순교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그녀는 큰딸 이정희 (바르바라)가 동정을 지키려 함에도 외교인 청년과 결혼 시키려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고 한양으로 가서 자유로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이는 그녀가 천주를 위해서 겪은 희생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후 허계임은 판공때가 되면 시누이와 함께 상경하여 딸집에 머물면서 성사를 받고 돌아가곤 합니다.
기해년(1839년) 봄에도 성사를 보기 위해 상경했을 때 마침 박해가 크게 일어 나면서
많은 교우들이 잡혀 갑니다. 허 계임은 박해를 피할 수 없음을 짐작하고 위주 치명 하기로
결심한 끝에 두 딸과 시누이와 함께 있던 교우 등 6명이 4월1일 모두 자헌 하기에 이릅니다.
그녀는 포청에서 천주를 배반하라는 문초 중 혹독한 형벌은 견디지만 그와 함께 갇혀
고문 당하는 두 딸과 시누이의 고통스런 모습에는 이루다 형언할 수 없는 아픔에 슬퍼 합니다.
마침내 1839년 7월과 9월에 먼저 두 딸을 차례로 주님의 품으로 보냅니다,
9월25일 "내일 네 어머니가 형장으로 끌려 나갈것이다." 라는 소식을 들은 아들은
그날밤 상경하여 다음날 어머니의 순교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 합니다...
9월26일 서소문밖네거리 사형장... 망나니가 첫 번째 칼을 내려 쳤지만 목이 떨어지지 않자,
다음 망나니가 다시한번 칼을 휘두르니 목이 떨어져 나갑니다,
聖女 허계임은 67세의 일기로 숨이 끊어 집니다.
끝 다음은 聖女 이매임 (데레사 1787~1839) 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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