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들이 많이 순교한 새남터는 사제로서 조선에 처음 입국한 중국인 주문
모 신부가 6년 전교 끝에 1801년 순교하면서 계속 선혈의 터가 되었다.
1846년에는 김대건 신부가 교우 현석문 가롤로와 순교하여 조선교회를 절망
속으로 떨어뜨렸다.
그 외에도 앵베르 범주교, 모방 나 신부, 샤스땅 정 신부 등이 기해박해 때 순
교하였고, 베르뇌 장주교, 브르뜨니엘 백 신부, 볼리외 서 신부, 도리 김 신부,
뿌르띠에 신 신부, 쁘니티꼴라 박 신 부가 병인년에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 찾아가는 길 |
| 국철 용산역에서 하차하여 한강 대교 쪽으로 800m쯤 가면 한강 대교 북단 교차로가 된다. 여기서 우측 길로 400m쯤 가면 철길 위로 과선교가 나타난다. 과선교 좌측 길을 넘으면 바로 새남터 기념 성당에 이른다. |
[ 참수의 형장 서소문 밖 ]
1801년 이승훈, 정약종, 최필공, 홍교만, 홍낙민,최창현 등 300명이 잡혀가 순
교하면서 서소문 밖 은 계속 교우들의 목을 자르는 형장이 되었다.
이곳에서 남녀 구별없이 혹형을 받고 죽었는데 특히 정약종 순교 후 38년만에
둘째아들 정하상 바오로가 신부 영입운동을 하다가 잡혀 참수되고 딸 정혜 엘
리사벳도 치명하여 서소문 밖 형장은 정씨 집안의 순교사가 피로 얼룩진 곳이
다.
| 찾아가는 길 |
| 지하철 1호선이나 4호선을 이용. 서울역에서 하차하여 서울역 쪽 출구로 나가 염천교를 건너면 바로 앞쪽이 서소문 공원이다. 서소문 공원 한쪽에 순교 기념탑이 서 있다. 지하철 2호선을 이용, 충정로역에서 하차해도 5분거리이다. |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직자가 매장되었던 와고개]
병인박해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베르뇌 장 주교, 백 신부, 서 신부, 김 신부, 뿌
르띠에 신 신부, 미카엘 박신부의 유해는 와고개에 묻혀 있었다.
이들 6명의 성직자는 왕궁의 호위병을 지낸 박순집 베드로가 어둠을 틈타 옮
겨와 매장함으로써 훗날 명동성당에 무사히 안장될 수 있었다.
와고개는 원래 기와와 벽돌을 굽던 곳으로 와서(瓦署)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구운 벽돌은 종현성당 (현 명동성당)과 약현 성당 및 용산 신학교 등 당시의
양식(洋式)건물을 건축할 때 사용되었다.
| 찾아가는 길 |
| 지하철 4호선을 이용 신용산역에서 내려 서울 체신청 직영 우체국(용산 우체국) 쪽으로 나가 우체국 좌측 길을 따라 250m쯤 가면 국방부 후문이 된다. 현재 국군 중앙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왜고개 사적지이다. |

[장안 순교자들을 내버리던 시구문 광희문(光熙門)]

1396년(태조 5년) 도성 8문의 하나로 건립된 광희문은 수구문(水口門)으로 불
린다. 박해당시 치명한 순교자들은 모두 광희문 밖으로 내던져졌는데, 그때마
다 문 밖은 굴러 떨어 진 시신이 너무 많아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순교자들의 시신은 그의 가족이나 친지에 의해 남녀 구별에 따라 옷을 달리
입히고, 동여매서 거적으로 싸는 정도로 겨우 매장되었다.
| 찾아가는 길 |
|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의 환승역인 동대문 운동장역에서 하차하여 한양 중·공고 쪽으로 나가면 학교 앞 길 건너편에 광희문이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