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3일 (금)
(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자유게시판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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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자 [socho]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74526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 파블로 네루다

     

    어디에서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사는 것일까.

    어디에서 소금은
    그 투명한 모습을 얻는 것일까.

    어디에서 석탄은 잠들었다가
    검은 얼굴로 깨어나는가.

    젖먹이 꿀벌은 언제
    꿀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

    소나무는 언제
    자신의 향을 퍼뜨리기로 결심했을까.

    오렌지는 언제
    태양과 같은 믿음을 배웠을까.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뿌리들은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까.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고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이 부르는 노래는 무슨 곡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

    왜 나뭇잎은 푸른색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파블로 네루다는 자신의 시와 정치 사상을 통해 동시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작가였다. 그는 고국인 칠레에서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았고, 폭 넓은 일반 독자층으로부

    터 평범한 삶의 찬양자이자 국민적 정체성의 창시자로서 존경받았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어느

    판자촌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라 마을명을 정하고, 그의 시집 제목을 따라 비포장도로명을 붙이기도

    했다.

    칠레 밖에서 볼 때도 네루다는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번역되는 시인으로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소설에서 그랬듯이 그 지역의 특징적인 목소리이자 전세계적인 영감과 영향력의 원천

    으로서 라틴아메리카 시에 크게 기여했다.

    네루다는 무려 2천 페이지 이상의 30권이 넘는 책을 출판하며 시적 발전을 이룩했는데, 그 발전은

    20세기의 개인적 방랑과 시적 표현의 역사를 잘 반영해준다. 다른 어떤 시인도 그만큼 재주가 많거

    나 다차원적이지는 못했다.

    네루다는 격렬한 주관적 연애 서정시에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치를 다룬 서사시까지,

    또 일상적인 사물들에 대한 오드 즉 송시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현상을 탐구와 의미의 강력한

    형태로 외관상 굴절시켰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대학에서 철학·문학을 수학하였으며, 1927년부터 양곤·스리랑카·싱가포르

    등지의 영사를 역임하고, 1934년부터 1938년까지 마드리드의 영사가 되어 R.알베르티 등의 전위시

    인과 교제하였다.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이 있어 시작(詩作)에 착수, 근대주의적인 《황혼의 노래

    Crepusculario》로 문단에 데뷔하고, 1924년에 발표된 《20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絶望)의

    노래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n desesperada》에서 그의 독자적인 시경(詩境)을 개

    척하였다.

    그 후의 작품 《무한한 인간의 시도 Tentativa del hombre infinito》 《열렬한 투석병》을 거쳐,

    최고의 작품이라고 주목되는 《지상의 주소 Residencia en la tierra》(1931)에 이르는 과정에서

    카오스적인 요설(饒舌)로 존재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초현실주의적 시인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스페인내란 이후의 상황 속에서 점차 정치적 자세를 첨예화시키게 되었다.

    그러한 예는 《제3의 주소 Tercera residencia》(1945)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1944년에는 공산당에 입당하여 정치활동에 몰두했으나 후에 다시 일상적인 친밀한 세계를 노래하

    게 되었다. 이 밖의 작품으로는 《커다란 노래 Canto general》(1950) 《기본적인 오드 Odas

    elementales》(1954~1957) 등이 있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파블로 네루다는 철도노동자인 아버지 호세 델 카르멘 레예스와 어머니 로사 바소알토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죽었으며, 2년 뒤 가족은 남부의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테무코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재혼했으며, 네루다는 계모를 친어머니

    처럼 사랑하였다. 뒤에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여 "조국의 개척지인 ''머나먼 서부''에서 나는 삶과

    대지, 시, 비 속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그는 1910년 테무코 남자국민학교에 들어가 1920년 중등과정을 마쳤다.

    1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일부는 나중에 학생잡지에 실렸으며 처음에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고 가명을 썼다. 1920년부터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으며, 1946년에는

    법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12세 때 칠레의 저명한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을 만나 위대한 고전작가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이들은 그가 진로를 선택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투적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한 탁월한

    이론가 장 그라브의 저서를 번역했다.

     

    100편의 사랑 소네트 (문학동네 2002/5)

    실론 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 (문학과 지성사 2000/08)

    추억 (녹두 1994/05)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민음사 1989/01)

     

    영화 <일 포스티노>

    파블로 네루다가 칠레의 압정을 피해 이탈리아에 망명해있던 시절을 다룬 영화 

    실제로 그가 이탈리아에 망명해 있을 무렵 이탈리아 당국은 칠레와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네루다를 추방하려 했지만 이탈리아 민중들의 열렬한 반대에 부딪쳐 추방을 포기했고,

    네루다는 계속해서 이탈리아에 머무를 수 있었다.

    *네이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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