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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전 27, 聖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1792~1839)완결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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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이어.. 이러한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거둬 중국인 여항덕(파치피코)신부가 입국(1833년)을 하게 됩니다.
박종원의 비상함과 열심함은 여(파치피코) 신부에게까지 알려지게 되면서. 여항덕(파치피코) 신부는
그를 내포 지방에 파견해 그곳의 교우들에게 교리지식을 가르치도록 합니다. 이러한 박종원의 박식한
교리지식은 그곳 교우들로부터 천주께서 보내신 탁월한 교회 지도자로 존경심으로 따르자,
앵베르 주교님께서도 이러한 박종원의 재능과 덕행을 인정하여 그를 서울 회장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이에 박종원은 이 중하고 위험스러운 자리인 회장직을 성심껏 이행 하려고 열성을 배가합니다.
또한 많은 외교인을 개종시키고 주일이면 교우 집을 두루 찾아 다니며 모든 교우들이 성사를 무난히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권면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교우들만이 아니라 외교인들까지도 박종원의
공적을 높이 평가받아 기해년(1839년)에 박해가 일어나자, 곧 그의 명성이 드러나게 되어 피신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는 피신 중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밤이 되면 감옥을 찾아가서 잡힌 교우들의
동정을 살피며,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면서 서로의 교감을 나눕니다. 이와 같은 그의 필사적인 노력은
이 무렵 순교자에 대한 상세하고도 많은 사실이 후세에 많이 알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겁니다.
이후 8개원 동안 피신해 다니던 끝에 결국 10월 26일 포졸에게 붙잡히고 뒤이어 아내도 (고순이 바르바
라) 체포 됩니다. 부부는 함께 문초를 받으면서 용감하게 이겨 냅니다. 감옥 안에서도 박종원은
예의 마음 씀씀이와 박식한 교리 지식으로 갇혀있는 교우들은 물론 포졸들 조차 감동을 시킵니다.
포졸들은 그의 전교 솜씨를 듣기 위해 "오늘은 이선(박종원의 애칭)의 교리 애기를 들으러 가자." 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박종원은 포청에서 수 차례에 걸친 심문중 혹독한 고문으로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함에도 박종원의 마음은 평화롭고 오직 오,주님을 향한 열의많이 간절하여
조금도 그의 신념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10여일 후 형조로 이송되어 모진 매질이 가해집니다.
박종원은 문초중 살이 떨어지고 뼈가 허옇게 드러나 유혈이 낭자 했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습니다.
결국 부부(박종원, 고순이)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아내가 먼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 치명합니다.
박종원은 부인이 순교한 후에도 한달 남짓 더 오랜 시련을 겪는데 (양력)1월 11일과 13일 두번에
걸쳐 마지막으로 형문을 다시 받습니다. 이에 박종원은 죽기를 맹세하고 배교를 단호히 거부했을 뿐
아니라, 천당과 지옥은 엄연히 존재 할 것이며. 또한 제사는 헛된 예식이어서 미사와 기도로서 대신
할 수 있음을 당당하게 호교 합니다. 붙잡힌지 4개월......
1840년 1월 31일(양력) 다른 6명의 교우들과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치명 합니다. 그의 나이 48세.... 끝...
다음은 성녀 고순이(바르바라 1797~1839)편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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