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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말고 ...일자리를 달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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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rbk2236] 쪽지 캡슐

2004-11-28 ㅣ No.75452


"그런 거 말고…일자리를 달란 말이야"
경제 르포 - 신용불량자들의 밤
김남인 주간조선 기자 artemis@chosun.com
입력 : 2004.11.27 09:33 57' / 수정 : 2004.11.27 17:25 45'


▲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상담 신청자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다,
11월 20일 오후 7시, 대학로 먹자골목에 자리잡은 삼겹살집. 수능을 끝낸 10대들과 동아리 회식하러 떼로 몰려앉은 대학생들로 발 들일 틈 없이 북적거렸다. ‘고추장 삼겹살 3500원, 고추장 불고기 3900원, 대학로에서 가장 싼 집’이란 메뉴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인에게 “저…, SB 클럽이 어디있죠?” 묻자 스무 명 정도 모여앉은 구석자리 테이블을 가리켰다. 대부분 30~40대 남성들, 악수와 통성명이 오갔다.

“아, 저는 ‘진**’이라고 합니다. 저번에 저한테 이메일 보내셨죠?”

“아~ 맞아요. 저는 ‘**자’입니다. 저 여기 제 명함…. 저도 한 장 주시죠?”

“아이, 신용불량자한테 명함이 어딨어요? 거 아픈 데 찌르시네.”

이들은 인터넷 신용불량자 카페 ‘신용불량자 클럽’(cafe.daum.net/ credit)의 회원들로 이 날은 클럽 정기모임이었다. ‘신용불량자 클럽’은 2000년에 처음 문을 연 국내 최대·최고(最古) ‘신불자’ 사이트로 회원이 6만8000여명에 달한다. 온라인상으로 고민상담·자료공유도 하면서 매달 오프라인 모임을 병행하고 있다. 이날 모임에 나온 회원들은 대부분 신용불량된 지 1년 안팎인 초보 신불자들, 서로를 인터넷 아이디로 부르며 서먹함을 소주로 달랬다. 그들 옆에 앉아 신분을 밝혔다.

“신용불량자들이 삼겹살 구워먹는다고 그러면 또 ‘도덕적 해이’라고 할 테지. 기자 양반, 그냥 가소. 기분이 딱 소주 한잔 하고 싶은데 술 마시면 술 마신다고 또 뭐라 그럴 것 아니오.”

강모(42·자영업)씨가 말문을 열었다. 술자리가 순간 웅성거렸다.

“툭 하면 ‘도덕적 해이’라지. 다 먹고 살자고 용쓰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남의 돈 떼어먹으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어딨어? 우리 입장이 돼봤냐고~.”

화제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신용불량자’ 폐지안에 집중됐고, 모인 사람 모두가 ‘신용불량’이란 용어에 원망을 쏟아냈다.

“잘한 일이야. 신용불량이라고 하면 우리가 무슨 인격이상자처럼 들리잖소. 믿지 못할 부류 같은 인상을 주고. ‘연체자’라든지 ‘금융거래변제지연자’라고 구체적인 이름을 붙이면 좋잖아.”

“용어만 바뀌면 뭐하겠어요? 말장난에 불과하죠. 분명, 신용불량자들을 가리키는 제3의 용어가 또 나올 거예요. 구제책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도, 제약이 풀리는 것도 아닐 테고.”

“신불자 구제책 실효성 떨어져”

정부가 신용불량자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8개월이 지난 지금, 배드뱅크를 설립하고(5월) 개인회생제를 시행했지만(9월) 국내 신용불량자의 수는 400만명에서 크게 줄지 않은 상태다. 각종 신불자 대책으로 올해 신불자 신세를 면한 사람은 41만명에 이르지만 작년 말에 비하면 5만8000여명 감소한 데 그친 숫자다. 신용불량자가 원금의 3%만 내면 소득여부에 상관없이 신불자에서 해제시켜주는 배드뱅크(한마음금융) 프로그램은 지난 5월 출범 후 15만명을 구제하는 데 그쳤다. 이날(11월 20일)은 배드뱅크 신청 마감일이었지만 모인 회원들 중 이 제도를 신청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이 5000만원 이상의 빚을 떠안고 있는 데다가(배드뱅크 수혜 대상자는 지난 3월 10일 현재 5000만원 미만 채무가 있는 신불자) “원금의 3%란 돈이 어디서 나오겠냐”며 지레 포기했다는 것이다. 4000만원 카드빚을 못 갚아 요즘은 일용직과 대리운전을 전전하고 있는 김모(34)씨는 “지금 하는 일로는 네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배드뱅크제는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양가 가족들도 불똥이 튈까 무서워 철저히 이들 김씨 부부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개인빚 15억원 이하의 신불자 구제책인 ‘개인 회생제’ 역시 9월부터 1개월 간 신청 건수가 1200여건에 불과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구직을 신청한 신불자 중 취업을 알선받은 수는 겨우 650명이었다.

“개인회생제 그거 절차가 왜 그렇게 복잡한 거야? 하루 종일 내가 하는 일이 세 갠데 그거 언제 쫓아다니냐고…. 변호사를 살래도 150만~200만원은 줘야 하는데 내가 그 돈이 있길 하나.”

“변호사 살 돈 있으면 밥 한끼 더 드세요. 여기서 얘기 듣고 스스로 하세요. 그거 신청하려면 가족 생계비보다 많은 수입이 있어야 하는 건 아시죠? 사채빚도 대상이 돼요.”

“카드사 추심원들이 매일 전화를 해서 ‘너 바보 아니냐’ ‘너네 부모랑 자식한테 빚 물려주고 싶으냐’ 별 말을 다해요. 자존심 상해서 한강물에 콱 뛰어들고 싶다니까.”

“추심원들이 오면 문도 열어주지 마세요. 쳐들어올 법적 근거가 아무것도 없거든요. ‘꼭 갚겠다’ 하고 돌려보내세요.”

고추장 삼겹살로 우선 허기를 채운 회원들은, 장기 신불자인 고참들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앉았다. 개인 워크아웃과 개인회생제는 어떻게 다른지, 개인 파산제는 어떤 경우에 이용할 수 있으며 불법 추심원들을 어떻게 돌려보내는지 등 즉석 질의 응답이 이뤄졌다. 초보자들은 손바닥만한 메모지를 펼쳐놓고 선배들의 ‘가이드라인’을 깨알같이 적고 있다. ‘방문 실태조사 착수서’ 등 관련 서류를 잔뜩 늘어놓고 자문을 구하는 회원도 있었다. 술이 한 잔 들어가 얼굴이 불콰해진 한 회원이 정권 탓을 하자 선배 신불자인 최모(45)씨가 맞받아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안돼요. 내 탓 아니라고 생각하면 빚은 왜 갚아요? 빚도 갚고 신불자도 벗어나셔야죠. 도덕적 해이가 그런 데서 시작하는 거라니까요.”

최씨는 위탁교육업에 종사하다 신불자가 된 지 2개월 반이 넘었다. 신불자 되면 인생 끝나는 줄 알고 돈 버는 족족 이자 갚는 데 쏟아붓던 중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에 덜컥 신불자 등록을 해버렸단다. “경기가 안 좋으니까 자영업자들은 죽어라 죽어라 하는 거예요. 아무리 돈을 안 써도 가게 문은 열어놔야 하고, 돈 갚으려면 예전보다 100만~200만원은 더 벌어야 하는데 그게 되나요.”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 장래를 생각해 개인 회생제를 신청했고 지금 심의 중이라고 했다. 통과되면 5년간 80만원을 꼬박꼬박 내야 한다. 매달 200만원씩 이자로 바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셈이다. 그는 “신불자들이 가슴에 응어리가 져도 풀 곳이 이런 모임밖에 없다”며 “초기에 이곳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나도 고마운 마음에 모임을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개인회생제를 신청한 회원 중 매달 일정액을 갚다 중도에 포기한 사람이 반수를 넘는다. 김모(여·26)씨는 개인회생제를 신청해 매달 60만원을 갚아왔지만 얼마전 여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단다. “동생이 다쳤다는데 그럼 병원비 안 대고 빚을 갚겠어요? 다른 데서 또 빚 끌어다 갚을 순 없잖아요. 회생제라는 것도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된다니까.”

“한순간 아차 했더니 개차반 된 거예요”

이날 늦게까지 공장일을 마치고 안산에서 올라온 임모(33)씨는 정부가 발표한 대책 중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가 사촌 형 공장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200만원, 그 중 195만원을 변제에 쓰고 있지만 1억5000만원이던 원금은 사채이자 때문에 2년 만에 10억원으로 불어있었다. 친구들과 장사를 하다 무리하게 사용한 마이너스 통장과 카드 돌려막기, 무엇보다 사채가 화근이었다.

“그 땐 돈을 안 막으면 다음날 물건이 안 들어오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개인회생제 신청해도 사채빚이 워낙 많아 추심은 계속 들어올 거고 저한텐 별 효과가 없는 셈이죠. 파산은 절대 안해요. 제 인생이 10억원짜리밖에 안되나요? 갚아나갈 거예요. 이미 전 원금의 몇 배를 갚았어요. 터무니없이 계속 따라붙는 이자는 합의를 봐야죠.”

그는 수입이 안정적인 자신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했다. 주민등록이 말소되고(대부분 빚에 몰려 행방을 감춘 후 채권자가 제기한 ‘채무자 거주지 확인요구’ 행정처리 결과 직권말소 당한 것) 카드사에서 추심이 들어오기 때문에 신불자들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못나간다는 것이다.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건 기본, 사업자등록도 불가능하니 장사도 못하고 자격증 시험도 칠 수 없는 게 신불자들의 현실이다.

임씨와는 달리, 역시 30대인 김모(33·일용직)씨와 손모(37·컴퓨터 수리공)씨는 자포자기 상태다. 손씨는 IMF 금융위기 때 회사에서 잘린 후 동료 3명과 IT관련 사업을 시작했다가 8000만원 빚만 지고 신불자 신세가 된 경우. 지금은 한 건당 1만5000원씩 받는 일용직 컴퓨터 수리일을 하고 있다.

“버젓이 4년제 대학 나와서 한순간 아차 했더니 완전 개차반된 거예요. 살길이 없거든. 제가 신불자 되고 반년간 어떻게 지냈는 줄 아세요? 가족들 일하러 나간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종일 TV보고, 식구들 들어오면 집에서 나가 PC방에 틀어박혀 있었어요. 지금은 하루에 3만~6만원 겨우 법니다. 난 결혼할 생각도 없고 인생에 대한 희망도 없어요. 아우~ 차라리 감옥에나 갔으면 좋겠어.”

김씨는 소주를 한 잔 들이켜며 “제발! 살길을 뚫어달라!”고 소리쳤다. 1년 전 신불자 등록되는 날 죽으려고 ‘약’까지 사왔었다는 그의 목에 핏대가 섰다. “신불자란 덫에 걸리면 일을 못하니까 빚 갚을 길이 막히는 거예요. 20대든 30대든 다들 그냥 드러누울 수밖에 없어요. 정부는 큰 선심 쓰듯이 (개인회생제를) 8년에서 5년으로 고치고 말아. 그런 거 말고 우리한테 일자리를 달란 말이에요. 일하고 싶고, 돈 갚고 싶다 이거야. 우리가 뭐 인간 쓰레기야?” 손씨나 김씨 모두 일체의 사회생활을 포기한 상태. 모임 나갈 돈도 없을 뿐더러 신불자를 무슨 똥친 막대기 보듯 바라보는 시선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카페 운영진 진모(30)씨는 7000만원 빚을 다 갚고 올해 초 신불자 신세에서 탈출했다. 그는 “2000년도 전후에는 카드를 개념 없이 쓰다 신불자 된 비율이 20~30% 정도였지만, 요즘은 경기가 나빠져 먹고 살려 발버둥치다 신불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소주를 하도 마셨더니 이가 빠졌어”

술자리 한구석에서는 카페 운영자와 회원 한 명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왜 대책이 없어. 난 돈 쓴 사람도 아니고 보증 잘못 섰다가 날벼락 맞은 건데….”

“아저씨, 할 수 없어요. 보증채무로 신불자가 된 경우에는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거든요.” “에잇~! 뭐 이따위야!”

회원인 변모(46)씨는 지난해 후배가 생활비로 진 카드빚 1500만원 보증을 섰다 신불자가 된 경우다. “갚을 수 있으니 도와달라”고 들러붙는 후배를 돌려보낼 수 없었다고 했다. 번역 일로 겨우 먹고 사는 형편에 돈을 갚아나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40대 중반에 신불자 신세가 되니 친구들에게도 “쪽 팔려서” 말을 못한다고 했다.

“오늘도 마누라한테 차비 얻어 나왔어요. 너무 억울하잖우. 내가 실제로 돈을 썼다면 말을 안 해. 돈 쓴 사람들한테는 각종 대책이 쏟아지는데 보증채무로 신불자가 된 나 같은 사람은 그냥 혀 깨물고 죽으란 얘기야. 신불자별로 분류도 하지 않고 한데 뭉뚱그려 탁상공론 펼치는 공무원들 참 문제라니까. 내가 이 나이에 소주를 하도 마셔댔더니 이가 6개나 빠졌어. 봐, 이거.”

김모(여·48)씨도 남편이 진 빚 때문에 5년째 원금 7000만원을 갚아나가는 중이다. 그녀는 현재 남편과 이혼한 후 대학생인 두 딸을 혼자 키우고 있다. “우리 애들 대학교육 다 시켜놓은 다음에 개인회생제 신청해야죠. 빚 갚으려고 우리 애들까지 죽어라할 수 있나요. 파출부든 대리운전이든 손에 피가 나도록 뛰는 거죠. 그나마 요즘엔 일도 없어요.”

밤 10시가 넘자 파장 분위기, 운영진이 자리를 정리하고 공지사항을 발표했다.

“혹시 신용회복을 미끼로 사기성 메일을 보내는 사람은 꼭 신고하시고요, 채무 회피하려는 질문 하는 회원들은 강퇴(강제퇴장)입니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 모임에서건 회원간 금전거래 안하는 건 기본인 거 아시죠? 다음달 정기 모임 때 뵐게요. 회식비 1만원씩만 걷겠습니다~!”

◈ 신불자 폐지는 어떻게?

금융기관 정보 취합해 대출 여부 결정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는 ‘연체자’로 바뀐다. 은행연합회가 금융기관으로부터 3개월 이상 연체정보를 받아 이를 ‘신용불량정보’로 관리하고, 이 중 연체금이 30만원을 초과하거나 연체건수가 3건 이상일 경우를 신용불량자로 등록해 이를 전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획일적인 등록제도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금융기관들은 앞으로 자체 정보와 민간 신용정보회사(CB)를 통해 다른 금융기관의 정보를 얻어 대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금융기관들이 연체자에게 ‘안 갚으면 신불자로 등록하겠다’는 식의 채권추심 수단을 쓸 수 없게 된다. 신불자로 등록되면 돈을 빌릴 수 없고 취업이나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신불자 등록’은 그간 채권추심 수단으로 이용돼 왔었다.

그러나 초기에 민간 CB를 통한 정보 공유가 안되면 금융기관들이 개인 대출을 줄일 가능성도 있다. 현재 민간 CB로는 한국신용평가정보, 한국신용정보 등 2개가 있고, 국민·삼성카드 등이 신규 민간 CB를 세워 내년 7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일부에서는 채무자들 사이에 돈 안 갚아도 문제 없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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