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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복음 묵상. 류해욱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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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복 [mariserapina] 쪽지 캡슐

2004-12-05 ㅣ No.75911

 
길


나 야훼가 말한다
예로부터 있는 길을 물어보라
어떤 길이 나은 길인지 물어보고
그 길을 가거라(예레 6,16)

성서에서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닌 인생 자체
삶의 방향이며 양식이나니

여정의 길목에 서서
물어야 하리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지나온 길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나아갈 길에 시선을 두어야 하리


그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나니

그분을 따라 걷노라면
푸른 초원을 만나기도 하고
맑은 샘물을 발견하기도 하지

거친 광야를 지나는 것도
그분의 배려
우리의 신앙을
순수하게 정화시키기 위함이라네


일년을 마감하는 이 달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한 구절을 가지고 기도하기로 해요. 요한 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지요. 이 구절 중에서도 ‘길’이라는 한 단어에 머물며 기도의 길로 들어서기로 해요.
기도는 그분을 만나는 단순한 길입니다. 기도를 잘하기 위해 복음의 많은 구절이나 내용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때때로 어느 한 단어가 마음속에 깊이 와 닿으면 그 단어만으로도 깊이 기도할 수 있지요. 이제 여러분 각자 ‘길’이라는 한 단어를 두고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이나 이미지 안에 머물러 보십시오. 그리고 그 체험을 주님과 함께 나눠 보십시오.
여러분이 기도하시는 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저 역시 제가 그분과 함께 걸었던 길을 나눠 보겠습니다. 사실 이런 기도에서는 제가 여러분을 기도의 길로 안내할 것이 특별히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분의 이끄심으로 걸어온 나의 길

저는 지난여름 영신 수련에 의한 30일 피정을 하였습니다. 영신 수련은 네 주간으로 되어 있지요. 첫째 주간이 끝나는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제가 머물고 있던 ‘스승 예수 피정의 집’에서 약 5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라파엘의 집’까지 다녀오는 긴 산책을 하였습니다. 멀리 산 위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의 상징으로 세 손가락을 펴고 계시는 스승 예수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길이다.”라는 말씀을 가슴에 담고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분이 저와 함께 걷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덕에서 일출을 바라보았습니다. 산 안개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은 보름달을 바라보는 월출과는 또 다른 장관이었습니다. 마치 산 안개를 뚫고 태양이 곧장 제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지요. 안개에 싸여 떠오르는 해는 밤의 끝자락에 새로운 시작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예수회 이후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많은 사건들이 떠올랐지만 그냥 지나가도록 두었습니다. 저에게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며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도 그리 중요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분노하고 성토하던 사건들이 하나의 삶의 과정이었음이 느껴지고, 그 안에서 궁극적으로 주도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셨음이 다가왔습니다.
고(故) 김승립 신부님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에 참 좋아했던 신부님이셨지요. 그 분의 죽음이 제게 준 상실감이 참 컸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은 어쩌면 당신의 몫을 제게 맡기고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당신은 천국을 너무 그리워하여 이승에 머물기보다 천국을 염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오리가 날아가는 모습도 보이고 길가 흰 집 옆에 있는 나무에서 여러 마리의 딱따구리들이 나무를 쪼고 있었습니다. 이름 모르는 아름다운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안개 사이로 다가오는 산들의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나 같은 바보는 시를 쓰지만 나무는 팔을 들어 하느님을 찬미한다.”라고 읊은 조이스 킬머의 시구처럼 이른 새벽부터 나무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었습니다.


길은 인생의 여정

길을 따라 고개를 넘고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서 왔습니다. 이 길이 나의 인생 여정을 상징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천천히 아주 낮은 오르막을 따라 쭉 올라왔다가 고개를 넘고 다시 고개를 넘고 천천히 낮은 내리막을 내려가는 이 길이 나의 인생이라면, 나는 지금 어디 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분명 다시 내려가는 길목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디쯤 가고 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느껴지며 거기에 마음을 두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다.”고 하셨는데 정말 내가 그분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제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길”은 성서에서 시편 작가나 예언자들이 인생을 비유하여 사용하였고 이냐시오 성인이 즐겨 사용하던 이미지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자신을 길을 따라 걷는 나그네, 또는 순례자라고 불렀지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순례의 여정을 걷는 나그네길입니다. 새벽 산책을 하며 언덕에서 걸어왔던 길을 돌아볼 수 있었고, 다시 돌아오면서 갈 길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제게는 하느님이 베풀어주시는 은총으로 느껴졌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있는 그 길이 그저 발 닿는 대로 가는 방랑의 길, 목적 없는 방황의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끄심을 통해 이어지는 저의 인생길로, 또 그분의 길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길, 이 여정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내려가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시냇가를 지날 때 물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언자들이 “메마른 땅에 시냇물이 흐르게 하리라.”고 외쳤던 희망의 메시지가 귓가에 울려오는 듯 했습니다. 시냇물은 결코 멈추지 않고 흘러갑니다. 흘러가기 때문에 흐르면서 서서히 정화됩니다. 저의 인생길도 저 시냇물처럼 깨끗하게 흐르게 하리라고 자신에게 속삭여 주었지요. 고이면 썩기 마련이지요. 시냇물이 흐르듯 흐르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새 삶의 길로 오시는 주님

주님과 함께 걸었던 저의 길 묵상을 나누며 여러분의 길에도 축복을 드립니다. 우리 함께 지난 한 해 그분과 함께 걸었던 길을 돌이켜보고, 새 삶의 길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도록 해요.

여정의 길목에 서서
물어야 하리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지나온 길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나아갈 길에 시선을 두어야 하리
그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나니


류해욱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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