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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백성들은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라를 구할 영웅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라를 전복시켜줄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라는 망하든 흥하든 관심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전란과 학정으로 수나라의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수 양제 초기 890만 호, 4,600만 명에 이르던 인구는 200만 호 수준으로 격감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먹고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흩어졌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도적이 들끓고 있었다. 여기에다 국방부 차관급인 병부시랑 곡사정이라는 고위관리가 고구려로 망명하는 일마저 발생했다. 나라꼴이 엉망이었다.
더구나 적국인 고구려에는 불세출의 영웅이 있었다. 바로 을지문덕이었다. 수나라에는 없는 영웅이 고구려에만 나타난 것이다. 불안한 일이었다. 수나라에도 영웅이 한 사람쯤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 양제는 고구려를 정벌한다며 무려 113만의 대군을 동원했었다. 겁을 주기 위해 200만이라고 부풀렸었다. 고구려로 출정한 군사들의 행렬이 960리에 달했다. 자그마치 400km나 되었다.
고구려의 영웅 을지문덕은 이 많은 군사들을 보고도 태연했다. 항복을 가장해서 수나라 진영을 직접 찾아왔다. 당당하게 행동하며 수나라 군사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돌아가서는 시 한 수를 보내와 수나라 장수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싸워서 이긴 공이 높으니 그만 그치기 바란다(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고 했었다.
살수 싸움에서는 30만5000의 군사 가운데 생존자가 2,700여 명에 불과했다. 99% 이상이 몰살당한 것이다.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모든 것이 을지문덕 때문이었다. 을지문덕에 버금가는 영웅이 나타나야 안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런 민심을 업고 이세민이라는 청년이 나타났다. 이세민은 자신의 부친 이연을 내세워 백성들의 ‘영웅을 기다리는 민심’을 적절하게 이용했다. 이세민은 우선 민심을 더욱 흔들어 놓았다. 태원 이북에 있는 모든 지역의 20~50세 남자를 징집, 고구려 원정에 투입할 것이라고 소문을 냈다.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은 수나라가 하루빨리 망하기만 기다렸다. 그래야 군대에 끌려가지 않을 것이었다.
이세민은 또 ‘강남에서 버드나무가 지고, 하북에서는 오얏꽃이 만발한다’는 노래를 퍼뜨렸다. 버드나무는 수 양제, 오얏은 자신의 이(李)씨 성을 의미했다. 수나라는 망하고 이씨가 정권을 잡는다는 노래였다. 돌궐에 사람을 보내 군사원조를 받아오기도 했다. 수나라를 무너뜨리면 보물과 비단 등을 넘겨주는 조건이었다.
준비를 마친 이세민은 군사를 일으켰다. 백성들은 새로운 영웅 이세민을 환영했다. 수나라 군사들의 저항은 미미했다. 장안에 입성해서 당나라를 건국했다. 수나라는 불과 38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도 어쩌면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민생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무능한 정권은 국민에게 실망감만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론조사 때마다 고건 전 총리가 최고의 지지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국민일보 조사에서도 고 전 총리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 29.8%의 지지도를 기록했다.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데도 ‘1등’이다.
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안정’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기간 동안 보여주었던 지도력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고 전 총리가 영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높은 지지도를 나타내는 것은 그나마 적합한 인물이 고 전 총리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일으키는 것뿐이다. 안심하고 먹고사는 것일 뿐이다. 고 전 총리에 대한 높은 지지도는 아마도 이런 민심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