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로 입술을 닦은 주씨는 고무장갑을 끼고 기지개를 켜더니 수조에서 팔딱거리는 곰장어 4마리를 꺼내 들어 다시 도마 위에 펼쳤다. 도마 앞에는 그녀가 새벽부터 껍질을 벗겨낸 곰장어가 수북이 쌓여 오지도 않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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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상황은 돌변했다. 1998년 부산시청의 이전과 함께 부산의 중심이 자갈치 시장이 있는 남포동 일대에서 서면과 해운대 등으로 옮겨간 데다, 백화점과 대형 할인마트가 잇따라 들어섰기 때문이다. 부산의 신발산업 특수를 대표하던 인근 공장들마저 문을 닫으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찾던 단골 손님 중에도 발길을 끊은 이가 많다.
그래서인지 억척스런 아지매들의 터전인 자갈치시장에 예전에 없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아프다”며 가게를 닫더니 아예 나오지 않는 아지매들이 늘어난 것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자갈치 아지매들만큼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억척스레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넘겼는데, 올해만큼은 그게 안 되네요”라고 연방 기침을 하며 주씨가 말했다.
수정상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주씨는 요즘 하루 50㎏의 곰장어도 채 못 팔고 있다. 전성기의 20분의 1 수준이다. 가게 점원과 물차 인부 인건비, 시장 신축 부담금 등을 내고 나면 요즘엔 앉아서 한 달에 많으면 수백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그동안 모아놓은 여유 자금은 최근 3년 사이 거의 동이 났고, 은행 융자까지 1억원 가까이 졌다. 다섯 자녀 중 셋을 시집·장가 보내서 크게 돈 쓸 때는 없지만 자칫하면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팔아 치워야 할 형편이다. 주씨는 “30년 넘게 자갈치에서 번 돈을 지난 3년간 다 까먹었다”며 “그래도 자갈치 아지매는 씩씩해서 물러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갈치시장엔 요즘 지상 7층 지하 2층 연면적 7776평 규모의 현대식 상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주씨를 비롯한 자갈치 아지매들의 마지막 희망이다. 그녀는 “멋지고 깔끔한 상가를 새로 지어서 젊은 손님, 외국 손님들 많이 끌어오고 싶다”고 했다. 수조 바닷물을 레이저로 살균·여과하고, 겨울·여름철에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장치도 만들고,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쇼핑몰도 개설해 다시 한번 자갈치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보겠다는 것이 자갈치 아지매들의 계획이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포기하면 안 되지요. 죽일라 캐도 살겠다 우기면 사는 게 사람이잖아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를 본 주씨는 깜짝 놀란 듯 “어이쿠” 소리를 내며 “아지매들이랑 김장하러 가야 한다”고 나섰다. 그녀는 지난 9월부터 자갈치 아지매들의 자원봉사 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김장 300포기를 담아 관할 구청을 통해 지역 내 독거노인 등 불우이웃들에게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어려워도 함께 나누고 살아야지. 그게 사는 기라. 오늘은 오늘로 만족하고 내일은 내일로 다시 시작하고….”
“가입시더(갑시다)!”라고 주씨가 크게 소리쳤다. 대여섯 명의 자갈치 아지매들이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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