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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가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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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rbk2236] 쪽지 캡슐

2004-12-14 ㅣ No.76530

[만물상] 맑은 가난
오태진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지겠고// 무겁고 깨질 것 같은 그 독을 들고 아둥바둥 세상을 살았으니/ 산 죄 크다// 내 독 깨뜨리지 않으려고/ 세상에 물 엎질러 착한 사람들 발등 적신 죄/ 더 크다.’ 김용택은 ‘죄’에서 제 앞 가리려 살다보니 베풀기는커녕 이웃에 폐 끼치기 십상이었다고 뉘우친다. 네 탓만 하는 세상에서 드물게 착한 고백이다. 그런 반성에서부터 나눔과 베풂은 출발한다.

 

▶법정(法頂) 스님이 어느 여름 3년 가까이 곁에 두고 가꾼 난초 ‘유정(有情)’을 뜰에 내놓은 채로 외출했다. 장마 끝에 모처럼 햇살이 내리쬐지만 스님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 잎이 눈에 어른거려 결국 허둥지둥 돌아서야 했다. 그때 스님은 소유의 집착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절절히 깨달았다. 며칠 뒤 다니러 온 친구에게 난분을 줘버린 뒤 스님은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무(無)소유’를 말해 온 법정 스님이 엊그제 세밑 세상을 향해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아 자유로워진 상태, ‘맑은 가난’이 절실하다”고 했다. 스님은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을 눌러 어려운 이웃에 나눠주는 것을 ‘가난한 행복, 궁핍의 미덕’이라고 했다. 빈자일등(貧者一燈) 같은 사랑이다. 부처에 공양한 수만 등불이 바람에 꺼져도 가난한 여인이 정성으로 켜 올린 등불 하나는 오래도록 무명(無明)세계를 밝혔다.

 

▶감나무에 외롭게 매달린 까치밥은 우리네 시골의 빈자일등이다. 어르신들은 초겨울 배고픈 까치가 쪼아먹도록 감 몇 개는 따지 않고 남겨뒀다. 살림은 넉넉지 못해도 우리는 그렇게 더불어 살 줄 알았다. 우리 이웃의 딱한 사연을 담은 ‘이 겨울, 당신이 희망입니다’가 조선일보에 실린 지 열흘 만에 2500명이 1억2000만원을 보내왔다. 대부분 몇 만원이라도 돕겠다는 평범한 이웃들이다.

 

▶이달 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40대 공공도서관 직원이 1500만원을 기부했다. 감명받은 친구가 며칠 뒤 “경기가 나빠 사업이 어렵지만” 1000만원을 냈고, 또 다른 친구가 영수증을 대신 받으러 왔다가 2900만원을 냈다. 이 익명의 릴레이 기부를 이어낸 힘이 맑은 가난, 청빈(淸貧)이다. 공동모금회가 서울시청 앞에 세운 ‘사랑의 체감온도계’도 오늘쯤 50도를 넘어선다. 목표 모금액 981억원의 절반을 돌파하는 것으로, 작년 이맘때 33억원이 모였던 것에 비하면 10배 넘게 빠른 속도다. 나누는 행복은 깊은 불황 속이어서 더욱 크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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