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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성폭행 수사 “인권무시” 들끓는 분노
여경 조사신청권 묵살…경찰 “물 흐렸다” 폭언 충격
경찰의 미온적인 수사를 규탄하는 네티즌의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여성부가 사태 파악에 나서는 등 밀양 집단 성폭행사건이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1일 네티즌들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 경찰의 피해자 보호 소홀을 규탄했다. 또 여성부는 13일 조사단을 파견, 진상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처럼 성폭행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폭언이 이루어지는 등 성폭행 피해자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기 때문.
지난 7일 울산 남부서는 밀양지역 고등학생 41명을 강간 및 금품갈취 혐의로 검거, 13일까지 12명을 구속하고 29명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신원노출 ▲여경을 배치하지 않은 점 ▲경찰이 피해자에게 폭언을 행사한 점 ▲가해자 가족이 피해자를 알아보고 협박한 점 등이 드러나면서 경찰과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울산 남부서 관계자는 “서에 여경 수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조사능력을 갖춘 여경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성 관련 수사를 여경이 조사하도록 하는 ‘여경조사신청권’ 제도는 수사능력이나 효율성보다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도입된 것이어서 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하게 됐다.
더욱이 수사를 맡았던 한 경찰이 피해자에게 “너희들이 꼬리치며 좋아서 찾아간 것이 아니냐, 나도 밀양 출신인데 너희들이 밀양 물 흐렸다”고 폭언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나 경찰의 성의식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피해자를 알아본 가해자와 부모들은 경찰서에서 피해자에게 “어디 잘사나 두고보자”라는 협박까지 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협박이란 고의성이나 범죄 구성 요건이 있어야 하는데 가해자 부모들이 감정적인 상태에서 욕을 하니까 놀란 것”이라고 해명했다.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울산 남부서는 여경을 배치하고 폭언을 행사한 경찰관에 대한 징계 방침을 밝혔지만 네티즌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촛불시위로 이어졌고 여성부가 현지 사태파악에 나섰다.
이번 사건은 가해자들 중 일부가 ‘죄책감이 없다’고 말하는 등 성폭행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어 학교 성교육 문제도 도마 위로 올랐다.
울산여성의전화 등 울산지역여성단체들은 “그 아이들에겐 (집단강간이)유희이자, 놀이였으며 자신들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며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지 못한다”면서 학교 성교육 실태조사와 철저한 성교육 대책을 촉구했다.
김랑행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밀양지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성적 위주의 교육을 반성하고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되짚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동과 여성을 위한 변론을 펼쳐온 강지원 변호사가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 무료변론을 맡았다. 강 변호사는 변론을 맡아달라는 네티즌들의 요청이 빗발치자 11일 무료변론을 맡기로 하고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과 함께 오는 15일 울산으로 내려가 진상을 파악키로 했다.
강 변호사는 “피해자가 국가에 고통을 호소했는데도 보호에 만전을 기하지 못한 것은 심각한 인권피해이며 성폭행 사건의 나쁜 선례”라며 적극적인 변론을 펼칠 뜻을 밝혔다.
인권보호 무능한 언론
언론은 지난 7일 새벽 41명의 고등학생이 울산 남부서로 줄줄이 검거되어오자 앞다투어 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비공개 수사 원칙을 천명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명으로 적은 보도자료를 배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넷에 올린 보도자료와는 별도로 언론사에 전달된 보도자료에 피해자의 성이 적혀 있었던 것. 이 때문에 피해자의 학교 교사들과 친구들이 피해자의 신분을 눈치채게 됐고, 언론의 인권보호에 대한 무지와 경찰의 미숙한 대응으로 피해자 보호 원칙은 깨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기자는 “경찰서에 40여명의 고등학생이 끌려오는 게 흔한 일이 아닌 만큼 언론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대부분의 언론이 A모, B모 등 비공개 원칙을 지켰지만 일부 언론에서 실제 성을 보도했고 학교에서 누가 안 나오더라는 말이 퍼지면서 피해자 학교 교감이 전학을 시켜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네티즌 “한심한 경찰” 규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에 분노한 네티즌 200여명은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경찰의 피해자 보호 소홀을 규탄하는 촛불시위를 벌였다.
사건이 알려지자 사이월드 등 포털사이트에는 ‘밀양 성폭행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가해자와 무관한 남녀학생까지 사진, 미니홈피, 연락처 등이 공개되는 등 부작용이 일기도 했다. 가해자의 여자친구로 지목, 연락처와 미니홈피가 공개된 한 여성은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죽고 싶다’는 글을 미니홈피에 남겼다.
인터넷을 통한 이런 무차별적인 비난이 또 다른 인권문제를 일으키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지 말자’는 자성이 일었고, 성폭력 사건에 미숙한 경찰을 규탄하는 촛불시위로 승화됐다.
성폭행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는 경찰의 미온적 수사를 경계하고 성폭행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살아있는 성교육이 됐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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