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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신도가 깨어나야 사제도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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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자 [socho] 쪽지 캡슐

2004-12-22 ㅣ No.76873

<<권두 인터뷰 -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 호인수 신부>>

신도가 깨어나야 사제도 깬다

한국 가톨릭은 한때 시대의 어둠을 비춰주는 등불이 되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정면에서 맞서 이를 극복하려는 소금의 구실을 했다. 가진 자보다는 박탈당한 자 편에 서
고, 권력보다는 억눌림의 편에 섰다. 그래서 가톨릭은 소외된 이들의 벗이고 그중에서 명
동 성당은 쫓기는 자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은 요즘 많이 달라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회경제적 모순과 대결하
기 보다는 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당파적인 정치를 이끌기 보다는 정파적 이해에 매몰
되고, 사회적 약자 보다는 가진 자의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것이다. 때문에 
요즘 한국 가톨릭은 짠 맛을 잃은 소금, 불 꺼진 등불에 비유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성장
신화를 이룩한 개신교 대형교회의 물질주의나 규모 만능주의로 흐른다는 지적도 있다. 
“어제 오늘이 아니예요. 가톨릭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주교들의 면면도 그렇고, 그를 보
좌하는 교구청 신부들도 그렇고 한쪽으로만 귀가 열린 느낌이예요.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북간의 민족적 모순, 사회경제적인 계층간 모순 그리고 정치적인 구제도의 잔재 등이 
온존한 상황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된 선진적 틀을 갖추고 있다면 모르겠습니
다만 한국 가톨릭은 아직 수구적 입장을 취할 때가 아닙니다.”
인천 상동 성당 집무실에서 만난 호인수 신부의 입에선 자주 ‘고민’, ‘걱정’이란 말이 튀어
나왔다. 사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혁파하고 이 땅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고자 
했던 신부들이 한국 가톨릭 안에서 따돌림 당한 지는 오래됐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 1세
대인 함세웅 신부가 잠시 평화방송, 평화신문 사장 구실을 한 게 최고직이었다. 사제단 출
신 신부 가운데 주교 품에 오른 이는 없다. 사제단의 젊은 신부 가운데에도 교구청에서 주
교를 보좌하며 교구청의 우편향에 제동 걸 사람도 별로 없다. 대개 주교들로부터 먼 거리
에 있다.
“이런 구조로는 한국 가톨릭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들의 편에서 싸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제단이나 교구별 정의평화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교구
청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일을 하기가 쉽지 않죠.” 
...................... 또 이 법의 인권유린 소지와 
이 법을 근거로 광범위하게 진행되온 인권유린 사례들은 지금도 우리나라를 인권후진국
으로 따돌림 받게 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지목하는 몇 안 되는 소문난 악법으로 꼽히고 있
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고, 한때 그 폐지를 위해 힘을 실어주기도 했던 한국 가톨릭 지도부
는 지금 존폐 논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내심 존치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체면상 
그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이들과 
맞선 상징적 인물로 존경받아왔다. 

“김수환 추기경이 바뀌었다고들 말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김 추기경
은 옛날부터 매우 보수적이었어요. 정치적이기도 했고요. 독재와 맞서 싸울 때 사제단 신
부들과 이돈명, 유현석 변호사 등 평신도 지도자들이 잘 보좌한 탓에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이 김 추기경의 본래 모습일 수 있지요.”
김 추기경의 ‘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이민우 총재에 대
한 태도였다. 1986년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대세를 이루고 있을 때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전두환 정권이 추진하던 의원내각제 추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로 인해 개헌 추진은 
혼선을 빚고, 신민당은 쪼개졌다. 이때 김 추기경은 몇몇 사석에서 이 총재를 가리켜 “참
으로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이 돼야 나라가 편해진다.”고 말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김 추기경과 유럽을 함께 여행했던 신부들은 그가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훌륭한 분이 되었으니,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도와줘야 한다.”는 요
지의 말을 하다가 동행하던 신부들에게 ‘이제 그만 하시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한
다. 최근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씨를 공공연히 지지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
다. 그래서 이씨를 떨어지게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유감이 사무
쳐 있고, 그런 정치적 앙금이...... 문제나 각종 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으로 드러나
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만 하셔도 될 텐데, 요즘은 정치인들처럼 언론에 거론되지 않으면 심심한가 봅니다. 언
론 타기를 좋아하면 안 되는데. ...... 문제에 대한 발언도 그런 차원 같아요. 신학
적 입장보다는 정치적 입장에서 하는 소리죠. 그런 법을 정당화해주는 근거는 성경 속 어
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법에 대해서는 앞장서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요청만 
있을 뿐이죠.”
김 추기경은 1988년 서경원 의원이 밀입북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신고하지 않았
다. .......... 불고지죄를 범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가톨릭을 길들이는 차원에
서 김 추기경을 기소하지 않았다. 그때 유일한 야당이었던 평민당 김대중 총재는 불고지
죄 등의 혐의로 안기부 소환조사를 받았고 불구속 기소를 당했다. 때문에 몇몇 신부들은 
그때 김 추기경이 불고지죄로 다만 며칠이라도 감옥엘 갔다 왔어야 했다고들 말한다. 그
러면 노 대통령 등이 아무리 미워도 ............필요하다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을 것
이라는 이유에서다.
“인권은 하느님이 주신 고유한 권한입니다. 누가 어떤 이유로도 침범할 수 없어요. 종교인
이라면 인권유린을 해도 된다고 말해선 안 되죠. 성서에는 어디에도 그런 근거가 없어요. 
그런 제도는 앞장서 혁파해야 한다는 요청만 있을 뿐이죠. 성직자는 성서에 입각해서 판
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나, 당파적 성향에 따라 사회적으로 발언
하고 행동해선 안 되죠.” 
이런 현상은 사제중심주의 아래선 언제나 나타날 수 있다고 호 신부는 말한다. 그만큼 교
구장이나 주임신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교구장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사제들에 
대한 인사는 물론 사목 방향도 결정한다. 그리고 사제들은 교구장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 교구장과 신학적 소신 혹은 사회적 관심사에서 다른 의견을 보일 경우, 언제
든 소환당할 수 있다. 
“80년대 인천교구장으로 외국인 신부 나길모 주교가 있을 때 인천교구는 사회운동에 깊숙
이 간여했죠. 이명준씨 등 운동권 인사들이 주보를 만들었는데, 당시 인천교구 주보는 베
스트셀러였어요. 없어서 배포를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두봉 주교가 안동교구장으로 있을 
때 안동교구는 양심세력의 상징 구실을 했죠. 그리고 사제들의 중론을 존중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섰던 윤공희 대주교 등 몇 분 말고는 우리 주교 가운데 기억에 남는 분
이 별로 없어요. 교구장의 품성과 자질에만 의존해선 가톨릭이 발전할 수 없죠. 사제와 수
도자 평신도가 세 축으로 굳건히 서야 합니다. 지금은 나쁜 의미에서 권력집중 현상은 더
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호 신부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평신도운동이다. 현재 각 교구가 추진
하는 평신도운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교구 평신도운동은 말 잘 듣는 평신도, 전도 열심히 
하는 평신도를 육성하는 차원이다. 그러나 호 신부의 평신도 운동은 사제가 독점하고 있
는 교도권을 신도도 공유하자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은 성경과 교리에 대한 해석권
이 사제에게만 주어져 있다. 사제의 권위는 모두 이 권한에서 비롯된다. 평신도는 신학을 
공부할 수도 없거니와 공부해도 쓸데가 없었다. 가톨릭 대학교의 교수는 신부여야 하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그저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인도되어야 하는 어린 양’에 머물러 있어
야 했고, 사제는 이들을 지도하고 이끄는 ‘목자요 아버지’ 구실을 한다.
“가톨릭에선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신학은 성직자와 수도자의 전유
물입니다. 평신도가 신학을 알면, 사제가 전횡할 수 없고 터무니없는 설교도 할 수 없습니
다. 민족적 문제나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도 신학적 근거를 찾아 사제로 하여금 나서게 할 
수 있습니다. 사제만 쳐다보는 평신도가 있는 한 가톨릭은 쇄신될 수 없어요.”
호 신부는 그래서 10년 전 인천교구 신부들과 우리신학연구소를 발족시켰다. 처음엔 평신
도가 모든 걸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해 신부들은 발족시키기만 하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이사장도 소장도 모두 평신도가 맡았다. 올해로 10년째다. 그러나 평신도만으로 운영하다
보니 후원자들이 잘 나서지 않았다. 자력갱생 한다지만 후배 양성, 평신도 교육 등 주요 
사업을 확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올해 법인으로 등록하고 후원회도 결성했다. 이제 신
부가 이사장을 맡아도 평신도운동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을 정도로 연구소의 운영은 자리
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호 신부가 이사장직을 맡았다. 
“다른 신부들은 싫어했죠. 독점적인 권리를 나누자는 것이니, 또 성경 해석과 관련해 평신
도가 시시콜콜 나서면 귀찮아질 게 뻔하니 당연한 반응이죠. 그러나 신부들에겐 한계가 
많습니다. 대부분 사람들과 달리 신부는 혼자 삽니다. 사회에서 일정하게 떨어져 삽니다. 
세상에 대한 체험이나 정보가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살아있는 복음을 전하기 힘든 형
편인 것입니다. 매냥 고리타분한 교리 강좌로 흐를 수 밖에 없고요.” 
연구소는 10년 사이 유급직원도 5명으로 늘었고, 전문적인 연구분야를 갖고 있는 비상임 
연구위원이 28명이나 된다. 성당에 평신도 교리 교사를 위한 신학강좌가 만들어지면 교사
를 지원하기도 한다.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신부들의 교리강좌에 대해 비평도 한다. 지
금까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성당에 평신도협의회가 있지만 그건 본당신부의 자문기구에 불과합니다. 이들의 의견은 
주임신부가 수용하지 않으면 끝입니다. 따라서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성직자의 의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평신도들이 나서서 바꾸게 해야 합니다.”
교구에선 이 연구소에 대해 주교단 산하로 들어오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연구소쪽은 거부
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 대해서도 주교회의 산하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천주교인권위
는 이를 거부했다. 
“일단 사제단 산하 기구로 흡수되면 사제들의 심부름이나 하는 기구로 되어 버립니다. 평
신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거죠. 이런 기구는 외국에도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
습니다. 교회가 게으름과 안일의 나락에 빠지는 것을 막는 평신도운동의 모범이 되도록 
주교단이 이 연구소를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호 신부는 1976년 인천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이듬해 김병상 신부의 구속에 항의하
는 성명서를 대표집필 했다가 구금된 것을 시작으로 그는 노동자 재야활동가 대학생들과 
함께 격동의 70~80년대를 보냈다. 80년대 지역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인사연)은 그와 김정택 목사, 제정구, 이명준, 이호웅 등이 결성한 것이었
다. 현재 환경운동연합의 뿌리인 공해문제연구소도 최열 소장과 그가 힘을 보태 출범시켰
다. 
첫 본당신부로 발령받은 고잔동 성당에선 한국화약 노동자들과 함께 지냈고, 부평1동 성
당에 있을 때는 교구에서 가톨릭노동청년회를 맡겼다. 이후 그가 맡은 본당은 김근태, 김
문수 이호웅, 김도연, 이우재 등 인천지역 운동가들의 근거지가 되곤 했다. 86년의 5․3사
태는 북주안 성당에 있을 때 맞았고, 북주안 성당은 최류탄이 쏟아지던 주요 전장의 하나
였다. 
87년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민주화세력의 분열을 지켜본 그는 백령도 성당으로 떠났다
가, 90년 김포 성당으로 돌아왔다. 94년 제물포 성당을 맡으면서 평신도운동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주목해 우리신학연구소 창립에 앞장섰다.

곽병찬 / 편집장
공동선 통권 59호【인터뷰】『 신도가 깨어나야 사제도 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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