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더보기
2026년 11월 8일 (일)
(녹)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자유게시판

국가중심세력’의 새벽

스크랩 인쇄

양대동 [ynin] 쪽지 캡슐

2005-01-05 ㅣ No.77344

‘국가중심세력’의 새벽
오늘 우리 앞엔 새해를 맞이하며 나눴던 덕담의 여운을 며칠이나마 더 즐길 수 없는 현실과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100년전 을사늑약의 국권상실을 불러온 한반도의 국제정치 구조, 60년전 광복과 함께 몰아닥친 좌우이념의 대결구도, 그리고 한국전쟁과 빈곤. 이 모든 것을 극복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모를 국가적 분수령을 맞이하고 있다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진단과 예측을 피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의 집권 22개월은 어떤 성적표를 우리에게 내놓았는가. 한 정권의 왜곡된 역사관, 세계관, 국정운영 방식이 짧은 기간안에 나라를 어떤 지경에 빠뜨리고 있는가를 우리는 지금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근·현대사 100년만에 또다시 최대의 국가적·민족적 시련이 바로 올해에 닥쳐올 개연성이 있다는 절망적 관측에서부터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새해 새벽,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는 것은 설령 한 정권의 실험주의·모험주의가 쓰나미(津波·tsunami)처럼 공격을 해온다 해도 결코 유실되지 않고 나라를 버텨주는 ‘국가적 인프라’가 대한민국 안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늘이 대한민국에 축복을 내려준 것이다. 수십년동안 절치부심했던 세력이 햇볕으로 나와, 우리의 국가정체성, 역사적 정통성을 뒤집으려 하고 있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는 나라로 이미 성장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80년대에만 왔다 해도 우리는 지금 훨씬 취약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서구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으로 무장된 엄청난 숫자의 경제인력 군단, 침묵속에서 국가의 내일을 생각하는 공직사회·군·검찰·경찰, 그리고 용기있는 지식인, 시민과 언론이 좌파·친북·맹목적 반미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버텨주고 있다. ‘국가중심세력’이라는 국가적 인프라가 쓰러지지 않고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계가 놀라운 변신을 했다. 역대 정권 시절 권력에 약했던 경제계가 이 정권에 저항하면서 성장엔진작동을 중단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은 국민 모두 격려해야할 일이다. 우리가 제2의 남미나 필리핀이 될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은 우리 경제에 경쟁력을 갖춘 수많은 기업이 존재하고 있는 점이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체질과 맞지않는 정권을 잇달아 만나면서 오히려 더 많이 해외로 나가 자력갱생의 길을 뚫는 끈질긴 생존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 정권이 공직사회를 휘어잡기 위해 코드인사로 시종했지만 전체 그림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공직사회라는 ‘바다’는 자신들 위에 떠 있는 코드인사라는 ‘배’들을 마음대로 요리하고 있다. 바뀌는 척만 하고 있을 뿐 공직자 각자를 지배하는 국가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신념과 전통은 더 강화됐다. 이들이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아마추어들로 가득 찬 청와대가 들으면 뒤로 넘어질 것이다. 군의 명예와 존재의 이유를 훼손시키려는 ‘공작’들이 난무했지만 군심(軍心)은 잘 버텨왔다. 후발 민주국가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군의 괄목할 만한 변모다.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지난 연말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것도 한나라당이 선방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군·검찰·경찰이 침묵 속에서도 “정권은 유한하다. 우리가 나라를 지키자”는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국보법 폐지에 찬성하지 않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 역대 정권시절처럼 정권의 의도를 읽은 정치 공무원들이 국보법 폐지를 경쟁적으로 외쳤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북핵문제도 외교통상부나 통일부 직원들까지 나서서 ‘민족동맹’을 고창하는 세상이 됐다면 나라의 위기가 더 깊어졌을 것이다. 여기에 시민세력의 저항과 반발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나라를 지켰다.

그러나 ‘국가중심세력’은 올해 더 큰 역할을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 북핵문제는 평화적 해결로 끝나게 된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고, 경제는 어디까지 더 추락할지 모른다. 새해 아침은 ‘국가중심세력’의 시대적 책무가 무엇인지 다지고 또 다지는 새벽이 되어야 한다.

윤창중 / 논설위원


9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