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이 지나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작년만큼 길게 느껴진 한 해는 없었던 것 같다. 작년도 우리는 수십 년간 쌓여 왔던 사회적 요구가 일시에 분출되는 것을 목격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신행정수도 건설에 관한 논란, 소위 4대 법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날카로운 대립 등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터져 나오는 통제되지 않은 갈등은 국민을 혼란케 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준비되지 않은 ‘아마추어적 실험’도 범람했다. ‘바꾸자’는 구호는 그 자체가 절대선이 되어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21세기 한국판 인노켄티우스(마녀사냥 칙령을 발표한 교황)들은 이런 실험에 반대하거나 신중론을 펴는 사람들에게 ‘수구 꼴통’의 낙인을 찍었다. 교수신문이 채택한 바와 같이 작년은 黨同伐異(같은 무리와 패거리를 만들어 상대를 공격한다)의 해로 기록되기에 충분한 한 해가 될 것이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인간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행할 때일수록 기쁨에 넘쳐 철저하게 악을 행한다.”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자는 깨끗하고 정당하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부도덕하고 부정하다는 태도는 ‘열린사회’와 양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후한서에서는 이런 태도가 후한의 멸망을 촉진했다고 지적한다.
정초에 나는 여당의 한 의원과 저녁식사를 겸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운동권 출신에 모 대학의 학생회장을 지낸 경력이 있는 386세대 정치인의 전형이다. 그런 그에게서 나의 귀를 의심케 하는 인물평을 들었다. 수구 꼴통의 수괴(?)쯤으로 치부되는 야당의 한 노(老)의원에 대해 극찬을 하는 것이다. 즉, 그 분이 가진 특정 이슈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빼고는 공감하고 배울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논어의 자로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자왈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화(和)하되 동(同)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동하되 화하지 못한다’로 해석된다. 여기서 ‘和’는 ‘공존,’ ‘다양성과 상대에 대한 인정’을, ‘同’은 ‘비관용,’ ‘획일성과 상대에 대한 불인정’을 뜻한다. 나는 이 386의원으로부터 우리 정치의 앞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총선 이후 많은 국민들이 젊고 깨끗한 초선 의원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1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국민들로부터 또다시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자조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386정치인들이 보여준 것이라곤 소위 지나친 개혁 열정에 따른 강박증과 조급증, 그리고 여기서 비롯되는 헛발질(아마추어리즘)뿐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로서 386정치인들에게 감히 충고를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는 非可逆的(비가역적)인 변화다. 그대들이 진정 국가와 국민들을 사랑한다면 변화 자체보다는 ‘변화가 불러올 변화’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라. 도도한 세계사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하라.
2004년에는 신념을 앞세워 상대방을 인정치 아니하고(同而不和) 편을 갈라 상대방을 공격했으나(黨同伐異), 2005년에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는 않으나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여(和而不同) 상대를 아우르고 협력하여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 가기(萬黨親和)를 바란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그대들에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우리 정치의 희망은 그대들에게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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